믿음이라는 근사한 태도

당신을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

by 조이아

기말고사 국어 시험은 마지막 날이었다. 답을 나눠주고 나서 소동이 있었다. 학생들 여섯 명이 교무실로 몰려와서 두 문제의 답에 대해 토론을 한 것이었다. 마침 다른 학년의 시험이 끝나지 않았기에 교무실로 들어갈 수도 없고 복도에 서서 학생들의 말을 듣고 있자니, 교장 선생님께서 교장실을 내어주셨다. 얼음물도 내어 주시고,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에 앉으라고도 해주셨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의기양양했다. 전교 1등 하는 아이와 그 반 반장, 옆반 모범생-국어 코디-이 이 문제는 어떻고 저렇고 하니, 같이 있는 아이들 표정 또한 당당했던 거다. 나는 서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똑똑한 아이들은 조목조목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 또한, 문제에 이상이 있을 경우 바로 대처하기보다는 협의를 거쳐 말하는 게 좋다는 연수를 여러 차례 들은 터라 - 열심히 경청하고 자꾸 말하고 싶은 걸 참고 참다가, 아니지이, 여기 이렇게 있잖아~ 등등 설명을 했지만 기세가 눌려 버렸는데 특히, "학원 선생님이 이것도 맞다고 하셨어요."라는 말 이후에는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았다. 동료 선생님이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평소에도 말씀을 너무 재미있게 잘하신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도 재치 있게, "학원에서 공부하고 각자 공부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학교 선생님이랑 같이 수업한 내용으로 시험문제 출제했고. 국어 선생님들이 모여서 다 같이 회의도 하고 해서 낸 문제니까 이상 있으면 알려줄게." 등의 말씀을 해주시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맞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생님이 분명히 이 부분에서 그 작가 이야기를 해주고 했잖아~ 등등 부연 설명을 했지만, 아이들 귀에는 안 들어간 것 같다. 어쨌거나 선생님들이 협의해서 답을 다시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돌려보냈다.

교무실에 앉아 시험지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나를 지목해 부르신다. 나오라고. 저 연구해야 돼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이럴 때 한숨 돌려야 한다고 불러내서 시원한 음료를 한 잔 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호로록 마셨더니 케켁, 찬 기운에 머리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마음을 달래주시려고 한 것 같은데 이런 말씀도 같이 해주셨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된다며! 수능 문제에 준해서, 이럴 경우 어떻게 되는 건지에 대해 아는 고등학교 선생님께 문의 전화를 넣어주셨다. 또 혹여나 복수 정답이 나오거든 경위서 한 장만 제출하라고 호쾌하게 말씀하신다. 평소에도 어려운 관리자분과 독대해 나의 허물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니 솔직히 마음만 무거워졌다. 얼른 들어가서 다시 시험지를 들여다보고만 싶었다. 음료가 차가워서 다 못 마시겠으니 들고 들어가야겠다 말씀드리고 자리를 파했다.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시험문제를 찬찬히 다시 들여다보고, 제시된 지문도 꼼꼼히 읽었다. 문제 될 게 없었다. 백지에 해설을 썼다. 왜 이것이 답인지. 나머지는 왜 답이 아닌지. 동료 선생님과 같이 상의하고 다음 날 수업 시간에 설명하기로 했다. 둘이 사람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다른 주제의 수다를 떨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한숨이 나고 아까의 상황이 떠오르고 했다. 피아노 뚜껑을 열고 모차르트 소나타를 몇 곡을 쳤다. 멘털이 흔들린 기분이 이런 거구나.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걸었다. 차이코프스키인지 라흐마니노프인지 피아노 협주곡을 재생시키고 네 곡이 연주되는 동안 열심히 걸었다. 생각이 휘몰아쳐갔다. 이 생각, 저 생각, 그러다가 다시 시험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문제 될 게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하면서,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했다. 둘 다 내가 맡은 단원의, 내가 출제한 문제였다. 학생들이 논리적으로(우리는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에 대해 배웠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동안 그 기세에 눌리고 만 내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전부터 걱정해오던 것은, 국어 문제 혹은 영어 시험에 대한 왈가왈부였다. 이렇게도 답이 되고, 저렇게도 답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왕왕 일어날 수 있다는 거, 그것에 대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동료들로부터 많이 들어왔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던 거다. 학원 선생님 운운하는 데에 또 불안에 빠져 버렸던 거다.


다음 날부터는 우리 학년 원격수업이었다. 교장선생님이 1교시 시작 전에 또 나를 부르셨다. 시험 관련 부장님까지 호출하셨다. 시험 문제 답에 대한 발표는(발표까지야!) 언제 할 거냐 물으셔서 원격수업 시간에 설명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도 말씀드렸는데 그다지 마음에 담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실시간 수업 중에 괜히 아이들에게 휘말리지 말고, 학생들이 자꾸 묻고 따지거든 방과 후에 학교로 오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정식 이의제기 신청서를 준비해서 쓰게 하라고. 그리고 국어과 전체 회의를 거치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거치자고. 네, 네 대답을 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문제에 이상이 없다는 제 말은 왜 안 들어주시는 거지 싶었다. 담임 일로 조회도 하고 바쁠 부장님까지 불러서 이게 웬 민폐인가 싶은 자괴감도 들었다.

1교시, 시험지를 화면에 띄워 놓고 내가 맡은 단원의 문제에 대해 전부 다 설명을 했다. 문의가 들어온 문제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작성해 둔 해설 화면도 띄웠다. 한 남학생이 물었다.

"이 문제, 이의신청 들어온 걸로 아는데 그럼 답은 그대로라는 건가요?"

헐, 어떻게 알았지? 속으로는 당돌한 질문에 놀랐지만, 선생님이 방금 설명한 대로 이러저러해서 답은 몇 번입니다,라고 반복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그 학생에게, OO야, 저 문제 이해가 되나요? 다시 물었더니,

"그런 것 같아요~."

라고 아리송하게 답한다.

그다음 시간은 어제 교장실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세 명 있던 반 수업이었다. 목소리를 높여 학원 선생님 얘기를 하던 학생은 나의 자세한 설명에 말없이 시험지만 자꾸자꾸 뒤적거렸다. 그다음 문의받은 문제에 대해 설명할 때, 해당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전교 1등 하는 학생 또한 오늘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 시간의 다른 반 아이가 더 당당했다. (이 역시 전교 1등과 반장이 맞다고 했어~라는 힘을 업어서였을까 싶다.) 혹시나 싶어 더 이상 질문 없는지 여러 번 물었지만 없었다. 정답으로 발표된 게 이상이 없었다는 얘기다.

교장선생님은 오후에 내게 문제없었느냐 물으셨고, 학생들이 잘 이해했고,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내 옆에 부장님이 퇴근하는 나를 향해, 오늘 아침 교장선생님이 부르셔서 당신은 놀라셨다고 내 대신 언짢아해 주셨다. "교과에서 문제없다는데 왜 아침부터 부르고 그러셨을까. 신경 쓰이게."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아침부터 잔뜩 긴장해있던 때에 더 나를 찌푸리게 했던 원인을 알아주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풀렸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왜 그러셨을까. 걱정이 많아 그러셨겠지. 안 그래도 학교의 다양한 일에 목소리를 내던 3학년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큰 소리로 당당하게 문제에 대해 말하자, 그들이 맞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내가 옆에서 괜찮을 것 같아요, 하고 이야기해도 나를 믿지 않으셨던 것 같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집에 있는 아이에게 얼른 가방 챙겨, 오늘 거 넣은 거 맞아? 양치했어? 하고 묻다가, 내 태도가 교장선생님이 보여준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퍼뜩 놀랐다. 아이는 나름대로 학원 갈 준비를 했을 텐데, 내가 저 아이는 스스로 못 한다 생각하고 하나하나 일러준 것 같은. 혹은 이미 다 준비했는데도, 안 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자꾸 잔소리를 해대는. 정말 마음에 안 든다고 생각한 태도를 나도 그대로 하고 있었구나. 아이의 자립을 기대하는 부모와는 거리가 먼, 일일이 조종하려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평소 선생님들께 마음을 많이 써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주시는 분이다.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 죽은 공간을 살려 아름답게 하고, 학생들의 기도 살려주시는 다정한 분이다. 심난한 때 음료를 주신다고 따로 불러내시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정과 신뢰는 별개였던 거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다정하고 이것저것을 섬세하게 신경 쓰는 것과 내가 너를 신뢰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안심하는 마음은 다른 마음의 결이었다. 교장선생님은 학교장으로서 문제에 대처하는 절차를 친절하게 안내해준 것일 테지만, 서운한 마음이 든 것은 예민한 내 탓일까.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이런 서운함을 전해주고 싶지 않다. 내가 너를 믿고 있다, 너는 잘해나갈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온몸으로 뿜는 존재가 되고 싶다.


다정한 내 친구는 평가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큰 위안을 준다. 내가 이랬잖아, 하고 하소연하는 전화를 해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래, 하고. 심지어는 채식을 하는 친구 앞에서 우유가 들어간 에스프레소가 부드럽다고 추천하거나, 조식 뷔페에서 계란 스크램블과 생크림, 요거트를 권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는 난 괜찮아, 하며 웃기만 했다. 분명 친구의 채식에 대해 배려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 나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바로 알아차렸지만 혼자 민망해했다. 우리는 채식 관련 책을 같이 읽었고, 친구는 내게 채식 레시피 책을 선물해주기도 했던 것이다. 나 또한 채식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논리는 가지고 있지만, 막상 행동으로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단계에 있다. 친구는 이런 나를 이해해준다. 나도 완벽하게 못 해, 하면서도 그 친구가 학교에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아이들과 동물 복지 관련 다큐멘터리를 챙겨보고 있는 것을 나는 안다. 채식에 대한 행동도 멋지지만, 친구의 태도도 근사하다.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그 안에 있을 것이리라.


학생들은 이번 기말고사를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 게다가 실천도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이번에 학습한 글의 요지가 '탐구는 의심에서 시작한다. 의심하는 태도를 가지자.'였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답이 발표되고 나서 학생들이 나에게 득달같이 달려와 질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 처음에는 당황했다. 얘들이 지난 시험이 너무 쉬웠다가 이번에 어려워졌다고 이러는군, 한 문제 틀렸다고 쪼르르 달려오다니, 이렇게. 그렇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했고, 자신만의 답을 논리적으로 설명했으니 그걸로 충분히 되었다고, 이제는 생각한다. 교과서나 어른들이 하는 말에 의심을 가지라는 글의 내용을 실천까지 했으니 말이다.

학생들이 나보다 낫다. 나는 확신하는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데, 그들은 열정적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신뢰도 신뢰지만 나를 좀 믿어볼 필요도 있다. 겸손을 가장한 불안과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걸핏하면 두통에 시달리고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방황하는 마음으로 걷던 밤, 스스로에게 했던 주문은, 산 같은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흔들리지 않는 산이고 싶다.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연약한 줄기 말고 끄떡없는 산.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말들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 안에 커다란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그를 지지해주고 싶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도 너희 안에 해답이 있다, 어른이라고 늘 맞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하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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