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주는 긴장감,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부터 우리 학교는 시험기간이다. 시험기간 전 수업 시간에는 학습을 요약해주고, 질문을 받곤 한다. 반마다 국어 코디를 한 명씩 정해 진도 나간 부분을 체크하거나, 공책을 걷어오거나 하는 역할을 맡기고 있다.('코디'는 스카이캐슬 이후로 정해진 명칭이다.) 첫 시간 수업 안내를 하고 정한 도우미는 대체로 국어(/문학/ 혹은 공부 아님 나)를 좋아하거나,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 많다. 0반에서 질문을 받고 공책도 검사하면서 교실을 둘러보는데, 그 반의 코디 손이 이상했다. 괜찮아? 물으니 손바닥을 펴 보이는데, 손가락 마디마다 붉은색이다. 처음엔 그림을 그렸나 했다. 알고 보니 손의 어느 부분에 난 상처인지 피가 여기저기 묻어있던 거였다.
"아이고, 어떡해. 안 아파? 손 씻고 올래?"
늘 자신감이 넘치고, 언제 어떤 질문을 해도 구체적이고 명쾌하게 답하던 학생이었다. 괜찮냐, 안 아프냐는 물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이내 화장실로 향했다. 아이가 일어난 자리 가림막 안쪽에는 문제집과 교과서와 필통, 필기구로 가득했다. 평소와는 다른 에너지를 보이는 저 아이가 요새 공부하느라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었다.
오늘 시험 감독을 하면서의 일이다. 시험 종료 15분여를 앞두고 한 학생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했다. 부감독이었던 나는 답안지를 제출해야 함을 알리고, 다녀오도록 했는데 그 시간은 정감독이 답안지 확인 도장을 찍는 때였다. 학생의 답안지를 따로 교탁 위에 두었고, 정감독 선생님은 그것을 확인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학생에게 복도에서 괜찮아? 물었다. 학생은 내 질문은 못 들었는지
"감독 도장 못 받으면, 0점 처리돼요?"
라고 물었다. 배는 괜찮은 건지 물은 건데 아이는 자기 성적이 0점 처리되는지가 걱정되었나 보다.
"아니야, 확인 도장은 받았어요. 괜찮아요?"
그제야
"네."
하고는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화장실 가서도 시험에 관해 불안했나 보다.
김하나 작가의 강연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를 3학년 학생들과 보았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설득전략과 관련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다시 말하면, 팬심으로) 작가님을 소개하고, 강연을 함께 보고, 원고를 들여다보며 내용과 설득전략에 대해 수업했다. 작년에도 보고,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읽고, 수업 준비를 위해 보고, 아홉 반에서 수업을 하면서 본 터라 열 번도 넘게 강연을 본 셈이다.(그런데도 볼 때마다 멋지고, 마지막에 관객과 함께 호흡할 때에는 소름마저 돋는다.) 요지는 힘을 줄 때 주고, 뺄 때는 빼라는 것. 긴장할 때 불필요한 힘을 빼라는 내용이 야구 경기에서 양의지 포수가 한 재치 있는 행동과 함께 소개되고, 남의눈을 의식해서 힘을 주고 있다면 '만다꼬'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데에만 힘을 주자는 내용이다. 수차례 강연을 보다가 잊고 있던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강연을 다 듣고 설득전략에 대해 정리하면서 학급마다 내 경험을 공유했다.
바야흐로 십몇 년 전(10Xa+b) 수능을 보던 날의 기억이다. 전날 밤부터 긴장하던 나는 아침을 먹고(언제나 잊지 않고 먹는다!)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다. 너무 떨리고, 몇 년 간 공부하던 것이 그날 하루에 판가름 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자가용을 타고 시험장을 가는 길에 주유소 화장실마저 들렀던 것 같다. 시험 장소에 도착하고도 바로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차 안에는 클래식 FM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부모님이 내게 뭐라고 말을 걸면 눈물이 나올까 봐 말도 제대로 못 했다. 그때 우리 차 옆을 지나가던 우리 반 친구 두 명이 보여서 친구들을 불렀다. 그 애들은 내 상태를 보고 기꺼이 뒷좌석에 타 주었고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친한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 친구들도 나와 똑같이 수능 시험을 앞두고 떨렸을 거다. 그래도 그 애들은 둘이어서 그랬을까, 덜 걱정스러워 보였다. 그 아이들이 내 손을 붙잡고 슬렁슬렁 흔들다가 "쎄쎄쎄~"를 했다. 헉, 고3이! 속으로 얘들이 왜 이리 유치한가 싶었지만, 곧 나는 안정을 되찾았고 이제 들어가겠다고 말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내 상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셨을 거다. 그렇지만 교실로 들어간 나는 앞서 쓴 것처럼, 평온한 마음을 찾았다. 이게 바로 <힘 빼기의 기술>이 아니면 뭔가. 양의지 포수가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현승 투수에게 가서,
"형, 이거 두 개 껴입었어? 추워? 나이 들었네!"
라고 실없는 농담을 건넨 것처럼 내 친구들도 나의 잔뜩 주눅 든 마음을 손유희로 달래주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 일기를 검사하는데 내 경험을 들어서 좋았다는 문장들을 많이 보았다. 자기도 긴장할 때 김하나 작가의 강연을 떠올리거나, 선생님의 수능날을 떠올리겠다는 다짐, 곧 다가올 수능날 이 이야기가 기억날 것 같다는 짐작, 자기도 태권도 심사 때 떨렸었다는 공감 등을 읽으며, 학생들에게 강연이 유익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다짐을 한 게 과연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었을까 싶은 날이었다. 물론 오늘 시험 감독을 내리 세 시간 2학년 교실에서 했으므로, 우리 3학년들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는지 어쨌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긴 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중학생으로서 시험 시간이란, 긴장할 수밖에 없을 테고. 평소에 긴장하지 않기로, 평온하기로 다짐했어도 정말로 평정심을 간직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손을 피가 날 정도로 뜯거나 하겠지. 마스크가 있어서 입술을 뜯지는 않겠지만(나는 그랬다, 지금도 그런다.), 우리 집에 있는 중1 아이(시험도 안 보는 자유학년제 중1이)도 한 두 달 전부터 깎을 손톱이 사라졌다.
오늘 감독을 하면서 일회용 고무장갑을 낀 채로 나는 눈으로는 부지런히 학생들을 살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과목을 공부해야 되는 건 아닌가, 우리나라 청소년들 모두가 멘탈이 강해지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국어 시간에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의 마음까지 돌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레 백석 시인 말투('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이지만, 그래서 나는 또 시를 떠올리고 만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
'나는 오늘 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오은, <나는 오늘> 중에서
'나는 도중에도 행복하고 싶어.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두 번. 어제를 생각해도 오늘을 살아도 내일을 기다려도 조금은 설레고 싶어. 짧아진 봄에도 가을에도, 길어진 여름에도 겨울에도.'
-오은, <해피엔드> 중에서
세상 모든 일이 마음의 일인데, 오은 시인님은 <<마음의 일>>이라는 시집을 두 가지 책으로 펴냈다. 한 권은 시집으로 한 권은 그림 시집으로. 만화가 재수와 시인 오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그림 시집은 시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한다. 5월의 작가탐구반 동아리 시간에 오은 시인의 시를 읽고, 재수 작가님처럼 시를 만화로 표현해보자는 활동을 했었다. 그때 아이들이 고른 시의 구절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딴에는
딴이 우리를 꿈꾸게 한다고
우리를 각기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오은, <딴>
이 부분이었는데 내가 이 시를 골라줬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교과서에 없고, 시험 범위에도 안 들어가고, 수행평가도 아닌 활동을 해야겠다. 숨 쉴 틈을 주고 싶다. 그때 시를 들고 가야지, 이 책을 보여줘야지, 마음먹는 시험 기간이다. 원래는 맞춤법 공부 좀 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로 모둠 활동도 못 하고 평가에 시달린 우리 아이들에게 시로 그림 혹은 만화 그리게 해야지. 시라도 한 편 더 읽고, 시험 시간에 열심히 연마한(마킹 끝나면 다들 예술활동을 하니까) 그림 좀 그리라고!
@ 재수X오은, <마음의 일>,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