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면 이 가방을 사 와야지

남들과 다른 나다운 쇼핑을 한다

by 조이아


파리의 이곳저곳을 걸으면서 내 안의 욕망과 많이 싸웠다. 보는 것마다 멋있어 보이고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자마자 마주친 여름 세일 기간, 도대체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면서도 뭔가를 쇼핑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덕분에 레페토 매장에서 세일 상품이 아닌 구두를 사는 스튜핏한 쇼핑을 했다. 같은 백화점에서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안 나는 브랜드의 가방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망설였다. 당연히 비싼 가방은 세일을 하지도 않았다. 체류 초기였기 때문에 당장의 생활비 걱정에 마음껏 지를 수도 없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내 마음의 방황은 최고조에 달했다. 흔히들 하는 말, '파리에서 뭐 사 왔어?'에, 내 지갑을 열어 답해야 할 것 같았다. 샤넬 가방 하나 없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얼토당토않겠지만, 나는 그런 명품 가방을 든 내가 마음에 안 들 것 같았다. 가방만 눈에 띌 것 같고, 그 가방을 들고 어디를 다녀야 할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가방을 살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그래서 이런 변명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닐 만한 사람이 못 되는 것만은 확실하다. 내 것이 아닌 욕망과 싸운 기분이다. 그 욕망의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일 터.

파리에서 한 쇼핑이라면 물론 셀 수 없이 많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 것은 열외로 치더라도, 겨울옷이 오기 전 날이 쌀쌀해서 산 옷도 있다.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한 것들이 있다. 일단 프랑스에서는 책이며 공책이 A4 크기이므로 커다란 크기의 롱샴 가방을 사들고 다녔다. 여기서도 들고 다니던 그 롱샴이 맞다. 그래도 그 가방이 튼튼하고 가볍고 책은 많이 들어가서 어학원 다닐 때 맞춤이었다. 파리지엔이 들고 다닐 때에는 베이지색이 예쁘던데 내게는 까만색이 오히려 어울렸다. 마레 지구를 걷다가 눈에 띄어 들어간 상점에서 독특한 패턴의 크로스백을 구입했는데, 가게 주인이 직접 디자인한 것이란다. 너무 동양적인 걸 골랐나 싶었지만 가볍고 색감이 예뻐 종종 메고 다닌다. 쁘티 팔레 미술관에 갔다가 노란 포인트가 인상적인 아르누보 양식의 에코백을 샀다. 색감이 시원해 여름에 자주 들고 다닌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고른 모네 에코백은 잘 들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해서 그 자리에서 선물했다.(도서전에서 받은 여분의 가방이 있어서 가능했다.) 소중한 친구들에게 줄 선물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에코백으로 했으니, 이만하면 나는 파리에서 꽤 많은 가방을 산 셈이다.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깜짝 놀랐던 것은, 팔 하나가 없다거나 심지어는 목이 없는 인형들까지도 판다는 거다. 이가 나간 컵도 보이고 손때가 많이 묻은 물건들도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다. 미니카 매대를 보고는 우리 집에 저거보다 더 많았는데 싶어, 팔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은 전혀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는데 그들은 새로운 것, 유행인 것을 사들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래된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고, 물건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방브 시장에서 들었다 놨다 했던 까만 가방은 잔잔한 비즈가 잔뜩 달려있어 예뻤지만, 천이 너무 낡아 사뿐히 내려놓았다. 그래도 거기서 남자용 실크 스카프 두 개를 구입해 쁘띠 스카프로 잘 활용하고 있다.


파리에서 나는 내 이름을 찾았다. 다름 아닌 스타벅스에서였다. 거기서는 커피를 주문하면 이름을 물었다. 일회용 컵에 이름을 써 놓고 '주문한 음료 나왔습니다. 고객님'을 대신해 "Paul!"하고 부르는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혹은 기차역에서 한 번씩 스타벅스에 갈 때마다 나는 "Judy"로 불렸다. 눈치가 빠르기에 망정이지, 내가 주문한 커피도 못 받을 뻔했다. 왜냐하면 난 주디라고 말한 적이 없으므로. 오래 전 친구와 유럽여행에 갔던 이십 대 때에 영어 이름으로 주디를 쓰긴 했었는데, 그 이름을 스타벅스가 찾아줄 줄이야! 줄리도 아니고 꼭 주디인 것은 내 작은 목소리와 'ㅎ'발음을 하지 않는 프랑스어 탓이겠지.(제 이름은 주희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곳 파리에서 나는 진짜 내 이름을, 내 본모습을 찾은 것만 같다. 주디로 불리던 때, 미술관에서 엽서 하나만 사도 너무 행복했던 그때의 나를 말이다.


파리에서 마주치는 동양 사람들 중 한국인들은 정형화된 헤어스타일에서부터 티가 난다. 남들과 같아지고 싶었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잘 세팅된 머리 모양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옷, 부티 나는 가방. 그런데 패션의 중심지라는 파리에서 나는 남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보다는 남들과 다른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언젠가 또 이름 있는 가방이 갖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탐나는 물건들은 나에게 꼭 어울릴 만한 것일 테다. 명품 가방을 남들 보라고 들고 다니는 내가 아니라, 실용적인 가방을 들고 내게 어울릴 만한 것을 골라 오래도록 사용할 줄 아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 '파리 집으로 입주' 조회수가 천 단위로 올라갔다. 브런치북을 만들 때, 저 글은 넣지 말까 고민하다가 자식 걱정하는 엄마 마음이 담겨서 1화로 넣었는데, 4년 전의 일을 이제야 묶게 되어 민망하기도 했다. 너무 긴 글이라 완독하신 분은 안 계실 것 같지만 눌러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조회수의 비밀은 아무래도 '파리' 때문이리라. 오늘 파리 이야기를 꺼내 본 것 또한 꾀하는 바가 있지만, 내 물욕을 잠재우고 다독이려고 이렇게 쓴다고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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