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이야기가 붙어 내게로 온다
9월 독서모임 도서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챙김의 시>였다. 같은 시집을 읽어도 유독 내 마음에 드는 시가 있고, 같은 시를 읽어도 내 마음에 들어온 구절은 다르다. 자신이 고른 시를 한 편씩 소리 내어 읽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우리 안의 엘리트주의라든가 공정하다고 생각해 온 경쟁에 대해 열을 올렸다. 그때도 우리는 살아온 얘기며 아이들이 살아갈 얘기를 열렬히 풀어냈지만, 이번에는 짧은 시 한 편으로도 더 내밀한 뭔가를 주고받은 기분이다.
한 달만에 만난 반가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동영상을 한 편 감상했다. 수오서재 유튜브에서 배우 김혜자 님의 낭송을 공유해 본 것이다. 줌 수업을 하는 것 같았지만, 배우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를 찾아 눈으로 따라 읽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유튜브로 '마음챙김의 시'를 검색하면 한지민, 김혜수, 유아인 등 여러 배우가 낭독에 참여해서 기꺼이 시심에 젖어들 수 있다.)
책에 대한 인상을 나누었다. 나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읽은 류시화 시인의 책이어서, 책장에 오래도록 꽂혀 있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든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의 책 표지와 책등이 생각났다. 펼쳐 든 시집은 예전의 감성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했는데, 젊은 체육선생님은 처음 접하는 시인이라고 해서 세대차이를 절감했다. 외국 시인들의 시라서 공감이 크지 않았다는 분도 계셨고, 지난번에 읽은 <공정하다는 착각>에 비해 읽기가 수월해서 좋았다는 분도 계셨다. 시집의 장점이자 단점이 그것인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한 편씩 읽을 수 있다는 것, 다만 전에 읽었던 시를 다시 읽어도 새롭다는 점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느낌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 그래도 이번 모임에서 우리는 시 읽기의 좋은 점을 직접 경험했다.
처음을 열어준 낭독은 <나는 배웠다>라는 시였다. 첫 순서라 떨린다는 선생님께서 배경음악은 없느냐는 멘트를 해주셔서 조금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본 영상에서도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기는 했다. 게다가 우리는 다름 아닌 시를 읽을 건데! 노트북은 그대로 두고 얼른 핸드폰 음악 어플을 열었다가 관두었다. 독서동아리 수업 때 배경음악을 틀어보았더니, 학생들이 소리가 끊겨서 신경 쓰인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였다. 해당하는 쪽을 펼치자 적막한 가운데 선생님의 목소리로 시가 울려 퍼졌다.
나는 배웠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오늘 아무리 안 좋아 보여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내일이면 더 나아진다는 것을.
(이하 생략)
- 마야 안젤루
이렇게 이어지는 시였다. 3연을 읽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잠겼다. 왈칵.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이걸 이렇게 읽으니 느낌이 다르네요'하시며 마저 읽어주셨다. 그렇게 듣는 시는 얼마나 내게 가까워지던지. 나 또한 이 시의 좋은 구절들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는데, 소리로 들으니 내가 밑줄 긋지 않은 부분도 더 와닿고 자꾸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조금 더 사람들에게 손 내밀고 살아야겠다, 다정한 느낌을 전하며 살고 싶다고 화면에 있는 다정한 얼굴들을 보며 다짐했다.
다른 선생님께서 낭독해주신 <하지 않은 죄(마거릿 생스터)> 또한 이어지는 마음이 있었다. 밤마다 오늘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곤 한다는 내용의 시였는데, 그 이유는 다정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지킨다며 만남을 뒤로 미루고 있는 코로나 시대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였다.
잘랄루딘 루미의 <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를 읽어주신 선생님은, 주어진 역할을 하느라고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은 접어둘 때가 많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 고단함에 대해 아랫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듣는 내내 그 자리의 무거움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따스한 말 한마디라도 더 보태고 싶어졌다.
내 차례가 되어서는 <비옷(에이다 리몽)>이라는 시를 골랐는데 발표 바로 직전에 택한 것이었다. 태그 해놓은 시가 몇 있었는데 너무 긴가 싶기도 하고, 너무 뜬구름 잡는 얘기인가 싶기도 해서 구체적인 이야기가 확 들어온 시로 고른 것이다. 엄마의 사랑에 관한 시였다. 맨 처음 낭독한 선생님께서 부모님 부분의 내용에서 울컥하셨기에 나도 그러면 어떡하나 마음 졸이며 읽었다. 읽으면서는 다른 방에 계신 엄마 생각이 나서 마음이 딴 데로 가지 않도록 활자를 기계적으로 읽으려고 애썼다. 다른 시와 다르게 서사가 있는 이야기여서 쉽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쉬운 이야기 속에 어머니의 큰 사랑이 담뿍 담겨서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느껴지는, 계속 받고 있는 사랑을 노래한 시였다. 나도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시였기에 뭔가를 더 설명하기에는 눈물이 날까 소개를 얼른 마쳤다. 너무 감상적이 될까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다음에 소개해주셨던 <위험들>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중략)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
진정으로 자유롭다.
-자넷 랜드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밑줄을 그어놓은 걸 보면서 선생님의 낭독을 들었다. 밑줄을 그은 건 당연히 나였고, 좋아서 태그 해놓은 시 중의 하나였다. 그런 내가 방금 전 낭독을 하면서 시심에 너무 빠져들까 봐 마음을 절제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소개를 해주신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도전하기보다 안전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마치 회색 인간 같다며 이 시를 골랐다고 해주셨다. 선생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횟수만큼 나도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졌다.
시를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눈으로만 읽었을 때와 다르게 내 감정이 더 실리는 것 같다. 비록 나는 내 마음을 꼭 잡아 올이 풀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읽었지만.(모임 진행자로서의 역할이 부담스러워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내가 낭독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낭독해주는 걸 들으면, 그분의 떨림이 전해져서 시가 주는 느낌도 깊어진다. 시에 생이라는 살을 입힌 것 같다고 할까? 밋밋한 활자에 지나지 않던 시가,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될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보태어져서 좀 더 생생하게 와닿는 기분이었다. Y 선생님은 오늘의 소감을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혼자 읽었을 때에는 이 시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시의 내용이 더 이해가 갔다는 것이다.
시의 내용을 머리로 해석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느낌으로 읽어내면, 그 의미가 더욱 풍성해진다. 거기에 내 옆의 다른 사람의 해석이 곁들여진다면, 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 삶에 대한 성찰도 깊어질 것이다. 낭독이라는 행위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한 것 같다. 이런 경험이 너무 특별해서, 네 권에 한 번쯤은 시를 읽자는 의견이 나왔다. 책의 어느 부분이든 낭독을 해 보자는 의견도 연필로 꾹꾹 눌러 받아 적었다.
박연준 시인의 책 <쓰는 기분>은 '우리가 각자의 방에서 매일 시를 쓴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꼭 시를 창작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내어 시를 읽다 보면(그것도 소리 내어서), 내 경험이 시를 만나 더 큰 울림으로 전해질 것이다.
이번에 읽은 <마음챙김의 시>는 끝까지 활자를 다 읽기는 했지만, 고작 내 경험 안에서 읽어낸 것뿐이다. 이번 독서모임으로 몇 개의 시가 더 내 안으로 들어왔다. 시와 함께 소중한 이의 이야기 또한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내 삶이 더 많은 걸 담게 된다면, 같은 시를 읽더라도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시간들을 기다리면서 나는 이번 시집은, 다른 시집이 그러하듯이 끝까지 다 읽어내지 못한 거라고 기록해 두어야겠다. 내게 쌓인 이야기들과 함께 새로 읽을 시들이 기대된다.
@ 류시화 엮음, <마음챙김의 시>, 수오서재
@ 박연준, <쓰는 기분>,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