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시간이 주는 고민들 - 대화
"집에서 아이하고 대화는 어떤 식으로 하세요?"
상담 선생님의 질문이다. 상담시간에 아이가 준비까지 해오면서 이야기를 술술 하는데, 집에서도 이러는지 물으시며 이 아이의 내면이 더 궁금해지셨다고 한다.
"글쎄요. 집에서는 잘 얘기를 안 하는데 한 번씩 기분이 좋으면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고 말씀드렸다. 큰아이 이야기다. 둘이 걸을 때나, 자기 전에 기분 좋아서 이야기를 쏟아낼 때가 간혹 있다. 평소엔 뭘 물어봐도 단답형일 때가 많은데.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하고 대화를 나눈다기보다는 묻거나, 확인하거나, 명령하는 게 다인 것 같다.
"주로 명령하거나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해요."
선생님은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란 위안을 주셨다.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는 그다음 일주일 간 머릿속을 맴돈다. 지난주에는 상담 선생님의 휴일이어서 나는 같은 질문을 2주 동안 간직했다. 그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고 말았다. 집에서 부모와의 대화? 나는 어떻게 해왔지? 중학생 때 나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때 엄마는 뭘 하고 계셨을까. 할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서의 엄마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집안에는 정적이 흘렀고, 가족의 목소리보다는 라디오 음악소리가 흘렀다. 내 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밤에는 주로 라디오를 들으며 나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은, 우리 둘이 밖에 나와 쇼핑이라든가 하는 볼일을 봤을 때 정도? 그러고 보니 요즈음 나와 큰아이 사이에 둘이 데이트 하자며 밖으로 불러낸 내가, 그때의 엄마를 모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놀랍기도 하다. 엄마가 된 나는 집에서 대화보다는 나 혼자만의 시간이나 고요한 시간을 바라고 있다. 내가 잘못된 건가 싶다가도, 학교에서도 종일 말하고 지쳤는데 집에서라도 조용하고 싶은 게 큰 욕심은 아니다 싶기도 하다. 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특히 큰아이하고는 함께할 시간이 많지도 않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내 마음이 엊그제 상담 다녀온 후 또 심란해진다. 또다시 큰아이와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다. 아빠와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엄마와의 대화는, 아이가 존중받는 느낌을 얻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하신다. 맞다. 그런 것 같다. 어려서 가장 속상했던 기억이 또 불려 나온다. 종알거리는 딸은 아니었는데, 그런 내가 엄마한테 뭔가를 묻거나 말했을 때 엄마가 반응해주지 않았던 몇 번의 기억. 어려서는 특히 남동생과 나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왜 내 말은 안 들어주는 걸까 단편적인 생각만 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 몇 번의 경험이 나를 주눅 들게 한 것만 같고, 지금도 대인관계에서 편하지 않은 것이 다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한 것이다. 대인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 건 아니지만, 사회생활에서 마주치는 어른들과 어떤 이야기를 해나가야 하는지 그분들께 말을 건네는 일이 내게는 자연스럽지가 않다. 상대가 누구든 편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날씨 이야기를 겨우 하거나, 급식실에 엇갈리게 앉아 묵묵히 밥만 먹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나 스스로를 이렇게 돌아보는 일이 내게 도움이 되는 건 맞나.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도 괴로웠으니 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농담 같은 걸 주고받지 못했겠지. 홀시어머니를 모시는 일 때문에 대화의 소중함 같은 것도 모르셨겠지. 부모와의 대화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짐작 못하셨겠지.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고 보면 내 친구들 중에는, 너희 집은 참 화목하다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연말에 함께 모여 한 때를 보낸다든가 가족 여행을 가거나 했으니까. 그런데 집안 분위기라는 것은 가족 행사를 거르지 않거나 함께 외식을 하는 것과는 다른 무엇인 듯하다.
모르겠다. 그때를 떠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리고 그러면서 나를 다독일 수 있다면 좋은 거겠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섭섭한 것은 자꾸만 올라온다. 내 한을 풀기 위해 상담을 하는 건 아닌데, 내 마음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한 건 아닌가 싶어 자꾸 심통이 나는 거다. 나도 자꾸 쌓아두고 담아두지 말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들들에게 쏟아내는 것은 안 된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해줘야지. 잘 듣는 일. 내 앞에서 입을 꾹 다무는 아이 말고, 내 앞이라 편안하게 얘기하는 아들들로 키우고 싶다.
3주 아니 한 달(글을 쓰면서 시간은 더 흘렀다) 동안 내 안을 맴돌던 고민에 대해 위안을 받은 책은 의외로 음악 관련 도서였다. <난처한 클래식 5권 - 쇼팽 · 리스트, 피아노에 담은 우주>를 읽는데 쇼팽과 리스트의 성격적인 차이점으로 인한 연주 공간의 차이, 무대매너 등의 차이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단정적이거나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쇼팽, 넌지시 설득하는 말하기를 하던 쇼팽이라니. 그의 음악 하고도 잘 어울린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말하기 방식이 있을 테다. 내게 어울리는 말하기는 상대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 얽매이고 서운해하는 데에 힘을 쓰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좋겠지? 어떤 태도가 중요한지 알게 된 나는, 좀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남편의 협조도 많이 얻고 싶고!)
지금도 두 아들은 게임을, 남편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일단은 저 시간을 즐기도록 둘까. 고민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또 책을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철학자들에게서 지혜를 얻겠다.
@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수업5(쇼팽 · 리스트, 피아노에 담긴 우주)>, 사회평론
* 덧붙여, 요즘 '회복적 생활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비폭력 대화'를 익히려고 노력 중이다. 가감 없는 관찰과 느낌, 욕구, 부탁의 네 가지 요소를 담은 말하기! 비폭력 대화는 누구와의 대화든, 관계를 해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