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거기에
<더 체어>는 영문과 학과장이 된 김지윤(샌드라 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넷플릭스 드라마다. 퇴출 위기에 있는 노년의 종신교수들 중에는 꼰대 남성 학자도 있지만 여자 교수 조앤도 있다. 할아버지보다 할머니의 생존력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해와서 그런가, 그분이 등장하는 부분은 더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지난 20년 간 강의평가를 읽어보지 않았다는 건 정말 너무 했다. 그렇지만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열어본 날에는, 조앤 교수가 현명했나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주 교원능력개발평가의 결과를 확인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봤어야 했나 조회하고 나서 계획에도 없던 일을 했다. 일단은 그날 남은 두 수업에서 내가 왜 책을 소개하고, 작가를 소개하는지 다시 말했다. 집에 와서는 보풀제거기로 니트를 손질했고, 이걸로는 부족하다 싶어 옷장 정리를 했고, 오래 묵혀두었던 옷들을 처분했다. 시간을 들여서 정리하고 버렸지만, 처리하고 싶었던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화면 속 다른 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마음에 박힌 말은 두 학생이 작정하고 쓴 듯한 몇 문장뿐이었는데 그 존재감은 대단했다. 자꾸 생각났고, 내 안에서는 자꾸 반박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물론 내가 외면하고 싶던 나의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평가가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 체어>의 에피소드에 조앤 교수가 강의 평가를 나쁘게 쓴 학생을 찾아내는 장면이 있다. 시설을 관리해주는 분의 도움으로 도서관에서 악평을 다는 학생(이라고 추측되는)을 찾아내 그의 뒤를 쫓는다. 도대체 어쩌려고 저럴까 조마조마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 저 학생이 아니면 어쩌려고 그러지? 내 걱정과는 다르게 교수님은 매우 당당했다. 학생에게 큰 소리로 내가 너의 타입이 아닐 수도 있지만, '초서'는 육백 년 동안 평가를 받아왔어, 라며 초서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지를 토해냈다. 교수 자신과 자신의 강의를 악평한 일에 대해서도 분명 분노했지만, 자신이 평생 연구하고 강의하는 초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날 것으로 드러냈다. 하! 조마조마하던 내 마음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교사이고 싶은가.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나로 인해 책의 재미를 느꼈으면 한다. 모르던 문학의 세계에 조금 더 기웃거리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나를 좋아해 주면 그것도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나로 인해 국어를 싫어하지 않기를. 나를 만나기 전보다 그저 조금만이라도 국어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기를. 나는 문학의 세계와의 연결지점이 되고 싶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에게 묻다>를 읽다가 다니엘 페나크의 <학교의 슬픔>을 만났다. 동네 서점에서 만지작거리던 책인데, 책 속에서 만난 책은 더 반가웠다. 이 구절 때문이다.
"좋은 선생님들은 무엇이 달랐는지 이런 문장으로 설명해요. '그들은 수업할 때 거기에 있었다.' 몸만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 전부 한 곳에 있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요."(이수지 작가의 말씀 중에서)
학생들 앞에 서 있는 나는 수업에서 만나는 이야기, 작가, 책, 문학에 대한 내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내가 더 신나서 얘기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조앤 교수가 초서를 사랑해서 학생 앞에서 초서를 두둔하는 것처럼. 문학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를 나를 통해 조금이라도 느끼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고 마음을 다하는 사람이고 싶다.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보고 이렇게 나를 추슬러 본다. 제목이 학교의 '슬픔'이라 고르지 않았던 <학교의 슬픔>도 꼭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슬픔' 때문에 무척 공감할 수도 있겠다.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 최혜진,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 작가 10인의 '돌파하는 힘', 한겨레출판
@ 다니엘 페낙, <학교의 슬픔>,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