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공격성을 단련하는 일, 아이에게 배웁니다.
쿵후인지 태권도인지 모를 무언가를 하고 있다. 쉭쉭, 훗후, 소리를 내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창을 가상의 적과 싸운다. 당하기도 하고, 이기기도 한다. 때로는 미키마우스 인형에 대고 혹은 이케아 상어 인형을 상대할 때도 있다. 땀이 주르륵 흐를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고 나면 곧 아이패드에 얼굴을 마주하고 낄낄대는 저 아이. 우리 둘째다. 매일 저렇게 자신의 체력을 단련하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음, 벌크업 남동생은, 내 앞에서 하지 않았으니까.) 아, 나는 플랭크 1분도 덜덜 떨면서 겨우 하는데, 저 아이는 내 옆에서 지지 않으려고 잘도 버틴다. 팔씨름도 나를 이기고, 다리로 하는 씨름도 당연히 이긴다.
무기 만드는 걸 좋아했다. 단단한 쇼핑백으로 어벤저스 캡틴아메리카의 방패를 만들어 둔 게 일 년 전, 오늘 또 꺼내어 팔에 끼고 휘두른다. 쇼핑백의 손잡이까지 붙어 있어서 일체형이다. 레고로는 때때로 칼을 만들거나 총을 만든다. 씽씽 하면서 보이지 않는 상대와 싸운다. 왜 저럴까 싶어서 그만 하라고 한 적이 여러 번이다. 인형들 괴롭히지 말라고, 자꾸 인형 괴롭히면 옷장에 넣어두겠다 으름장을 놓았던 적도 있다.
여름에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서야 아이 행동의 의미를 알았다. 공격성을 표현해야 한단다. 친구나 다른 이를 향한 공격성이 아니니 충분히 표출하게 두란다. 못 하게 할 경우에는 자신을 향한 공격을 할 수도 있단다. 손톱을 물어뜯는다거나, 딱지를 과하게 긁는다거나. 공격성을 표현할 줄 알아야 자신을 표현하는 힘, 이전의 나에서 벗어나는 도전 혹은 도약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단다.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었던 건데 몰랐던 셈이다.
'영혼의 집을 잃고 헤매고 계신가요? 영혼의 갈 곳을 잃은 고독한 방랑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방송, 멧돼지의 <영혼의 노숙자>' 팟캐스트를 아시는지? 밀린 팟캐스트 목차를 살펴보다가 김혼비 작가님 편을 들었다. 최근에 나온 책 <다정소감>에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축구를 하다 보면 몸싸움도 하게 되고, 경기 상황에 대해 심판에게 항의를 하기도 한다고. 그런데 이런 경험이 살면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셀럽 맷님과 나누는 이야기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향형인 혼비 작가님이 같은 성향의 친구분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살면서 누군가에게 화내 본 일이 없던 사람의 경우, 응급상황에서 '도와주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일이 쉽지가 않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얼어붙게 된다고. 나를 상상해 보아도 그렇다. 밖에서 소리를 지른다고? 목소리가 나올까? 도와달라고 과연 외칠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와 맞부딪히게 될 때도 나 같은 사람은 할 말도 못 하고 눈물이 차오르면서 목소리만 떨린다. 그런 면에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나 몸으로 움직여 스스로를 방어하고 공격해 본 경험을 해보았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대응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감각, 이런 걸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거지? 나만 못 배운 건가? (운동에 관심이 없기는 했다.)
몇 달 전부터 둘째가 자꾸 팔을 꺾는다. 주로 밖에서 걷다가 그런다. 실제로 어깨가 아플 만큼 힘을 준다. "그만, 그만. 아빠한테 해." 하면서 힘을 빼곤 했는데, 이제는 나도 같이 겨루기를 한 판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아이한테 배워야 할 수도 있다.
열한 살 둘째는 오늘도 체력 단련을 한다. 후아, 피슈피슈, 효과음은 얼마나 실감 나는지. 구경만 해도 재미가 있다. 부작용은 바닥에 침이 튄다는 거다. 청소는 나의 몫.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께 알리고 싶다. 아이가 집에서 건강하고 안전한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허용해주세요. 꼭 필요한 일이랍니다. 어른인 우리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