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특권

3월을 준비하는 교사 마음

by 조이아

예상치 못한 담임 배정에 혼란스러웠다가 기뻤다가 불안했던 2월을 보냈다. 이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처음 대전에 내려와서 담임을 맡고는 그다음부터 휴직, 보직교사, 또다시 휴직, 보직을 맡다가 작년엔 과중한 업무로 담임을 못 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우리 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우리 반이라니! 학년부장으로서는 몰랐는데, 작년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교과교사로 학생들을 만나니 많이 허전했다. 정정한다. 이 표현은 매우 미화된 말이고,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학생들과 거리감 있게 지낼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덜 힘들기도 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사이의 거리가 서운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체육대회나 음악 줄넘기, 축제 등의 학급 대항으로 하는 행사가 있을 때면 나는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고, 비록 두 반의 부담임이기는 해도 학생들과의 연결감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아이들이 얼마나 찬란한데, 그 빛나는 아이들 곁에서 나도 더불어 흥겹고 싶은 마음. 내년쯤엔 배부른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올해에는 담임으로 한 반에 소속된다니 기쁜 마음과 함께 걱정도 컸다. 몇 년의 공백이 있는데 잘할 수 있을까, 이 학년 아이들 중에 마음 아픈 아이들이 있다던데 감당할 수 있을까. 온갖 안테나가 학급 경영에 맞추어졌다. 좋아하는 독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들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황정은의 '야심한 책’ 오프닝 멘트를 듣다가, '어!' 하고는 돌려 듣고, 돌려 들었다. 이런 문장 때문이다.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

새벽 같은 황정은 작가님의 목소리로 들어서였을까, 듣자마자 '심쿵'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김현 시인의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라는 책에 쓰인 문장이란다. 다시 들으면서 옮겨 적었다. 제대로 쓴 게 맞나 또 듣고. 학급 경영의 중심 문장으로 딱 좋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에게서 출발한 사랑이 다른 사람을 통과하고, 그 사랑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니. 그것도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니,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을 수가! 우리 반으로 만날 학생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고민했는데 딱 맞춤한 문장을 만난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거였다. 장영희 교수님의 강의록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서 만난 이야기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습니다. (중략) 내가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데는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데는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데는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습니다. 사람은 단지 인(人)에서 끝나지 않고 인간(人間),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그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아아, 학급이라는 공동체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내 것을 사수하고,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주장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학생들에게, 우리가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향해 손 내밀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오래도록 남을 기억이란 것도 강조하고 싶었다.

장영희 교수님의 저 말씀을 우리 반에서 말해줘야지 마음 굳히고 있었다. 늘 마음에 품고 다니는 글귀가 있는데 이것도 마침 장영희 교수님의 것이었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구절이다. 내가 전한 사랑이 어딘가에는 차곡차곡 남아서 어딘가로는 흘러갈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갖고 살고 싶다. 즉각적인 보상이 아니어도 세상 어딘가를 따스하게 밝힐 거라는 희망 같은 것을 믿고 싶었다. 그런데 김현 시인의 문장에는 그 마음이 다 들어있는 게 아닌가!


첫날 있을 학급 시간을 꾸리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는 내내 저 문장이 나와 함께 했다.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을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 이 문장을 우리 반에서 실천하고 싶어졌다. 내게서 출발한 사랑은 일단 자기 자신을 아끼고 돌보는 데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품을 수 있을 거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학급생활을 해나가면 좋겠다. 여유롭고 안정된 마음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넉넉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게 시작된 작은 배려가 친구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모인 마음들이 마침내 우리 반에 대한 애정으로 커질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아이들이 장차 만날 공동체 안에서도 그런 경험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2월은 교사에게 혼란스러운 시기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고, 익힐 새도 없이 3월이 시작된다. 매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이다. 때문에 3월 한 달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갑작스러운 긴장감에 몸이 놀랐는지 첫날부터 왼쪽 눈은 충혈되고, 임신 때 괴로웠던 - 오른쪽 귀가 멍해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고작 사흘을 보냈지만 긴장을 풀었다가는 몸살이 날 것 같아 마음껏 쉬지도 못할 것 같다는 선생님도 계셨다. 감염병으로 가중된 업무는 말해 뭘 하겠나. 3월의 대혼란은 아무리 대비해도 정신을 못 차리겠다. 그렇지만 올해부터는 새로운 인식을 내게 심고 싶다. 매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이것은 교사만의 특권이라고 말이다. 새로운 시작,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새로운 업무가 별로 설레지는 않지만, 작년보다 많지 않다는 점에서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새로운 학생들과의 국어 수업은 늘 기대가 된다. 담임으로서 우리 반을 꾸려나가는 일에 대해 가장 마음이 많이 쓰인다. 학급 다이어리와 학급문고를 준비했다.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즐겁게 하려고 애쓰고 싶다. 첫 시간에 공을 들이는 만큼 마지막 시간도 준비하고 싶다. 그리하여 내게서 시작된 사랑이 어떻게, 어디에 도착할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내고 싶다. 3월 첫 주말의 이 거창한 다짐이 학년말에 부끄러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 장영희,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예담

@ 김현,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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