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은 스누피와 함께
<스누피 더 무비>를 보면서 크게 웃고 울었다. 아기자기한 즐거움과 감동이 있는 영화였다. 제주도 스누피 가든에 가자고 미리 보았는데, 덕분에 인물들의 이름과 성격을 알게 된 우리는 재미나게 스누피 가든을 관람할 수 있었다. 익숙한 음악들도 공간을 즐기는 데에 큰 몫을 했다.
만화로 유명한 만큼 전시장에도 네 컷 만화가 많았다. 다 읽어보진 못 했지만, 하나같이 귀엽고도 울림(크든 작든)을 주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들어 사진 찍어온 것으로는 루시가 스누피를 꼭 안아주고 나서 '행복은 따뜻한 강아지야.'라 말하며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나로서는 알듯 말 듯 하더라도, 확실한 행복 같아 보였다.
다음날 아침에는 제주의 강한 바람을 맞으며 섭지코지를 걸어올랐다. 바람과 함께 (눈이었으면 좋겠었지만) 우박을 맞았고, 모자와 마스크로 꽁꽁 싸맸어도 얼굴이 따가웠다. 그렇게 뻥 뚫린 푸른 바다와 독특한 지형을 구경하고 강풍주의보가 내린 오후에는 책방무사에 갔다. 작은 서점이지만 진열해 놓은 책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곰곰이 고민하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한 권과 책방 주인 요조 님의 기사가 실린, topclass 잡지를 구입했다. 비거니즘을 테마로 한 과월호인데, 수익금은 좋은 곳에 쓰인다고 한다. 아쉽게도 요조 님은 안 계셨지만, 카페 공드리에는 아름이가 있어서 반가웠다. 들어가자마자 감탄하며 아름이와 눈 맞춤을 한 것 같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봐 오던 아름이가 반가워서. 아름이는 얌전히 앉아있었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둘째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멀찍한 자리에 앉아 붙박였다. 묶여 있어서 괜찮다고 아이를 달래고 음료를 마셨다. 제주당근으로 만든 주스가 달았다. 한 번씩 뒤돌아 아름이는 뭘 하나 보곤 했는데 어느새 밖에 나가 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바로 옆에 와있는 아름이를 느꼈다. "어, 왔어? 형아가 무서워하는데." 하는 찰나에 아름이가 살짝 눈을 마주치고 곁에 머물다 가는데, 등을 쓰다듬었더니 윤기 나는 털은 보드랍고 따스했다. 자유로이 움직이는 꼬리마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름이는 멀찍이 떨어져 제자리에 다시 앉았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둘째는 산책을 나갈 때마다 작은 강아지라도 의식하면서 걷는데, 내 안에도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아름이 같은 멋진 강아지를 쓰다듬는 순간, 얼었던 마음이 녹는 듯했다.
최근에 강아지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강아지의 까만 눈망울과 몸 전체가 들썩이며 숨 쉬는 모습, 그리고 따스하고 보드라운 감촉을 잊을 수 없다. 고 작은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근심이 사라지는 듯하던데, 따스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강아지를 품에 꼭 안아주는 기분은 어떨까. 게일 콜드웰이 캐롤라인 냅과의 우정을 담은 책 <먼길로 돌아갈까>를 감명 깊게 읽었다. 두 여자의 우정에는 그들이 키우는 개가 함께 한다. 개와 함께하는 산책, 노 젓기(로잉)과 달리기라는 운동도 끼어 있다. 두 사람의 우정도 우정이지만, 나는 개와의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이 부러웠다. 각자가 반려견과의 교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둘의 우정은 더 특별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누피 더 무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 흘렸던 장면이 있다. 뭘 해도 잘 안 되던 찰리 브라운. 특히 연을 날리려다 보면, 날지 않거나 겨우 날게 된 연을 '연 먹는 나무'에게 빼앗긴다. 그런 찰리가 좋아하는 빨간머리 소녀가 방학을 맞아 멀리 떠나려고 버스에 올라탄 순간, 꽤 먼 거리에 있던 찰리를 소녀 앞에 당도하게 만든 것이 바로 찰리의 연이었다! 찰리가 연에 이끌려 날아오르고 달리는 그 순간, 친구들도 '찰리가 연을 날려!' 하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찰리를 바라보는데, 그 장면에서 나는 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눈물이 났을까. 내가 너무도 원했을 때는 이루어지지 않던 일이, 갑작스레 불어온 바람이 아니 어쩌면 우주가 온 힘을 다해 이루어주어서 그랬을까.
스누피 영화에 기대어 남몰래 소원 하나를 빌어 본다. 강아지 한 마리와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인스타그램으로 김신회 작가님의 풋콩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그 아이의 감정도 전해진다. 신연선 작가님의 브런치 글- 후추 일기를 읽다 보면, 초보 반려인의 서투름과 온기가 풋풋하다. <스누피 더 무비>에서 찰리에게 생긴 일이 내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느새 내 앞에 운명 같은 아이가 다가오기를. 내 인생 언제쯤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소원 하나 품고 지내면 마음에 위안이 되지 않겠어요?
스누피 가든에는 찰리 브라운 테마와 함께 너무 듣기 좋은 재즈가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Linus and Lucy>가 들리자 "엄마가 연습하는 곡이다."라 말하는 둘째. (나는 여기서 의아하다. 왜 '연습'하는 곡이라고 했지? 엄마가 '치는' 곡이 아니라?) 우리가 아는 곡이라 더 신나게 느껴지는 음악에 기분이 더 좋았다. 제주 숙소에서도 찰리 브라운 음악을 틀어두었고, 차 안에서도 그랬다.(솔직히 말하자면, 절반 정도는 '회전목마'- 둘째가 요새 즐겨 듣고 부르는 곡-이었다.) 신나게 울려 퍼지는 음악에 온 식구가 행복감에 싸여 제주를 누볐다. 스누피가 주는 행복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오늘도 우리 집 BGM은 찰리 브라운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