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함께하는 중학교 국어 생활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이건 어떨까.
"코로나가 우리의 중학생활을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여전히 프랑스어로 뉴스 듣기를 가끔 한다. 바야흐로 야외 마스크가 허용된 날, RFI 프랑스 뉴스(Journal en francais facile)에서는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한국이 야외에서 마스크 벗기를 시작했다는 뉴스였는데 한국인을 무려 두 명이나 인터뷰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상황을 정말 세계가 주시하고 있구나 느꼈다. 그와 동시에는 아니고 한 달이 흐른 6월 초. 나도 우리 반에서 코로나 거리두기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짝꿍이랑 앉기를 허용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물론 있었다.
"선생님, 그래도 아직은 무리이지 않아요? 코로나는 여전한데."
하는 다정이(가명)의 의견은 겉으로는 코로나에 대한 우려였지만, 속으로는 '마음에 안 드는 애가 짝이 되면 어떡해요'였을 것이다. 맨 앞자리에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와 짝이 된 후로 단 한 번도 코로나를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뒤에 누구누구는 너무 떠든다고 칼 같이 지적하는 학생이다.
자리 바꾼 날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아요."
코로나 3년차, 중3에게는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짝꿍인 것이다. 중학교 들어오자마자 번호대로 앉아 버릇했더니 중학생이라면 무조건 짝 없이 앉는 줄 알고 있었다는 거다.
일렬로 앉는, 시험 대형이라고도 하는 이 시스템은 친구들끼리 상호작용을 하기가 어렵다. 작년까지도 모둠활동은 시켜보질 못 했다. 올해 들어 수업 중에 한 번씩 모둠을 만들기도 했는데, 잠깐 모여 앉았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는 일은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이런 때가 아니면 짝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짝꿍을 만들고 보니, 국어시간에 자기 생각을 쓰는 활동 하나를 해도 "짝끼리 이야기 나눠봅시다."가 가능해졌다. 연역 논증 만들기 활동을 해 놓고, 짝이랑 연역 논증이 맞는지 검증해보라고 했다. 연역 논증의 대전제가 잘 쓰였는지, 결론이 전제와 같지는 않은지를 짝이랑 검토해보라고 하면 자신의 오류를 찾기 훨씬 쉬워진다. 틀렸을까 봐 발표를 안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광고 문구 쓰기 활동을 했을 때도 짝이랑 공유하는 시간을 주었다. 내 짝이 재치 있는 아이디어로 잘썼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자고 하면, 손을 번쩍 들고 짝을 칭찬하면서 수업이 활기가 돈다. 어떤 과제든 짝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손 들어 보라는 제안에 아이들은 눈을 반짝 빛낸다.
마스크 하나가 학생들의 수업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비말 차단을 위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를 하는 게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다. 마스크 안으로 숨은 자기표현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졌다. 다 같이 소리 내어 학습목표를 읽는다거나 할 때에도 단체 소리에 묻어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교사로서 너무 안타까운 점은 학생들이 자기 자리에서 하는 말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교실 저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엉뚱한 아이를 향해 다시 말해 달라고 할 때도 있고. 또 한 학생이 말하고 있는 것은 잘 알겠는데 당최 어떤 말인지 못 알아들을 때도 왕왕 있다.
국어시간은 자기 의견을 활발히 내줄 때 즐거워지고 아이디어가 풍부해진다. 시험 대형으로 앉아서는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기 어렵다.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발적으로 발표하는 학생도 있고,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친구도 있다. 그럴 때 앉아있는 자리대로 발표를 시킬 때가 있다. 그전까지는 교탁에 서서도 아이들의 의견을 잘 들어왔다. 그런데 유독 작년, 올해 아이들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 비해 학생수가 많아서 교실에서의 위치가 멀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마스크 안에서 하는 말이라 입모양도 볼 수 없고 전달이 어렵다. 그래서 자리를 지정해두고 그다음 학생에게 말하기를 유도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근처로 가서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생겼다.
짝끼리 앉아있는 학급에서 수업을 할 때면 어떤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발표를 해도, 짝꿍이 한번 더 얘길 해준다. 옆 친구 의견을 전달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된다. 내 짝꿍인 것이다! 이 마음이 너무 귀하지 않나.
짝이 있는 반과 혼자 앉은 반에서의 수업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가끔 짝이랑 너무 과하게 우정을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 시간에도 소곤거리고. 하지만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분명 다정하다. 사실 지난주 종례 시간에 우리 반 학생들에게 버럭 혼을 내기도 했다. 너무도 조용하고 반응이 없었던 학기초에 비해 우리 반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다가, 오히려 요새는 교과선생님들로부터 너무 시끄러워 수업 진행이 어렵다는 말씀도 듣는다는 얘기였다. 학생들에게 한 번씩 따끔한 충고도 필요하지만, 나는 아이들 둘이 눈을 마주치고 혹은 45도 정도만 고개를 돌리면서 소통하는 모습이 예쁘다. 떠들지 말라고 했다가, 또 둘이 마주보고 대화하는 게 이뻐 보이는 이 정도의 모순은 괜찮지 않나. 내일은 교실 뒤 게시판에 아래와 같이 쓸 것이다.
"코로나가 우리의 중학생활을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우리들만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데에는 마스크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
급식 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을 인솔해서 자기 자리에서 얌전히 밥을 먹는지를 지켜보곤 한다. 그러다가 너무 안타까운 모습을 발견했다. 마스크를 벗고 밥을 먹는 우리 반 남자아이 얼굴에 너무도 선명한 마스크 자국-하얀 끈 두 개가 또렷했다-이 있던 거다. 그 자국을 오늘 아침 늦잠 자고 있는 우리 집 아들에게서도 발견했다. 마스크는 도대체 언제 벗을 수 있을까. 코로나가 우릴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 이민진의 <파친코>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여느 역사책보다 역사를 실감하게 되는, 이야기의 힘이 아주 큰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