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올해에도 '힘들 때 힘을 빼면 힘이 생긴다' 세바시 강연을 듣고 설득 전략을 분석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때로는 '힘내'라는 말 대신 힘을 뺄 수 있도록 돕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김하나 작가의 강연은 야구 이야기로 시작한다. 두산 베어스의 양의지 포수가 팀의 위기 상황에서 타임을 요청한다. 이현승 투수에게 다가가더니 언더셔츠를 가리키며, "형, 이거 두 개 입었어?"라고 물었다는 거다.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8회 상황에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이어서 "추워? 나이 들었네."라고 덧붙였다는 포수를 향해 투수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만다. 그러고 나서 경기 상황은 달라진다. 베어스 팀은 승리했고, 이현승 투수는 승리 투수가 되었다. 김하나 작가는 양의지 포수가 투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고 강연의 서두를 열었다. 열 개의 학급에서 같은 강연을 보았다. 참 이상하게도 여전히 볼 때마다 공감하고 다시금 김하나 작가님(또다시 존칭이다. 작년 이맘때 쓴 'La vie est belle(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그랬다.)을 향한 호감이 더 커진다. 급기야 강연의 끄트머리에서는 매 순간 전율하고 마는데, 그렇게 감동하다가 기억 저 편의 추억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이십 년도 더 된, 나의 수능 시험날 이야기이다. 전날 밤에 라디오를 듣다가 잤던가 잠은 바로 왔던가 가물가물한데 그날 아침의 마음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늘 아침을 챙겨 먹는 나는 그날도 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교복을 챙겨 입고 시험장에 갈 준비를 하는 그 이른 아침, 머릿속은 뒤숭숭하고 마음은 불안했다. 그동안 노력해온 것이 딱 하루에 판가름 난다는 게 너무도 무서운 큰 일로 여겨졌다. 왠지 억울하기도 하고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에 화장실엘 몇 번을 갔다. 배가 싸르르 아픈 것도 같고 급기야는 구역질도 났다. 아빠 차를 타고 시험장으로 향하다가 화장실 때문에 일부러 주유소에 들르기도 했다. 차 안에는 클래식 라디오가 흐르고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내게 말도 못 건넸다. 무슨 말만 하면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말은 말이 되어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상태가 이 정도니 시험은 다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장에 도착해서도 바로 차에서 내리질 못 하고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우리 반 친구 둘이 지나갔다. 창문을 내려서 "나 여기 있어~."하고 흐느적거리는 손짓을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우리 차 안으로 와주었다. 얘가 지금 아파서 시험장엘 못 들어가고 있다고 아마도 엄마가 대신 말해주었겠지. 부모님은 앞에 앉아계시고, 우리 셋이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그 아침에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달리 할 게 뭐 있겠는가. 그때 갑자기 옆에 앉은 친구가 내 손을 잡고 '쎄쎄쎄~'를 했다. 음, 고3이면 열아홉 살인데 그 나이의 학생들이 할 놀이는 아니기는 하다. 나도 속으로 '얘가 왜 이래. 뭐 하는 거야.' 했을 거다. 그런데 그 잠깐이 지나고 그 아침을, 그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뭔가가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생긴 것 같았다. "나 이제 들어갈게."하고 우리 셋은 차에서 내렸고, 남의 학교 건물에 들어가 각자의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으로서는 온종일 마음 졸이셨을 것이다. 아침부터 저렇게 화장실만 들락날락하던 애가 시험은 잘 볼까 하는 마음에. 그런데 막상 시험장에 들어간 나는, 그 낯선 곳이 내가 다니던 중학교처럼 느껴졌고 아주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날의 경험은 분명 특별했지만 기억 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김하나 작가의 강연을 스무 번도 넘게 보다 보니, 퍼뜩 그때 내 친구가 어쩜 그렇게 양의지 포수 같았을까 싶은 거다. 양의지 포수가 실없는 농담으로 이현승 투수의 긴장감을 없애주었듯 내게 손유희를 해준 친구가 나의 부담감을 내려주었다는 것을 이제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너무 미안하게도 그 두 명의 친구들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그날 아침 수능 시험을 보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남의 차에 타고 시험 전의 귀한 시간을 내준 친구들도 분명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친구가 기운 없이 앉아있다고 이렇게 옆에 앉아주다니,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런 마음에 나는 시험장에 들어갈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수업에서 강연 내용을 복습한 후 나의 이 경험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여러분에게도 시험은 일종의 시련일 텐데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선생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노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앞둔 걱정되는 마음에 공감한 것이다. '쎄쎄쎄'를 했다는 이야기에는 아이들도 어이없어 했지만, 양의지 포수의 농담과 같은 역할이라는 데에는 또다시 공감을 해주었다. 공책에 수업일기로 이 이야기를 써달라고 주문했다. 내가 사용한 설득 전략과 함께! 경험을 말했으므로 이성적 설득 전략, 시험에 대한 걱정에 공감을 했으므로 감성적 설득 전략, 내가 좋아하는(사실 알 수 없다.) 국어 선생님이 말했으니까 인성적 설득 전략이 쓰였다고 쓰길 바랐다. 그런데 아이들의 일기에는 몇 년 후에 보게 될 수능날 긴장할 때 국어 선생님 이야기를 떠올리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선생님도 시험을 앞두고 긴장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우리 앞에서, 내가 왜 여기서 너희를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신세 한탄이나 자기 가족 자랑을 늘어놓는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가 되고서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시는 동료 선생님들에 대해 나도 저렇게 재치 있는 말투로 웃기고 싶다는 부러운 마음이 있었다.(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막상 내가 뭔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학생들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할 이야기가 도대체 뭐지? 나는 말주변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빛나는 얼굴로 들어주는 학생들의 모습은, 이런저런 마음으로 꽁꽁 뭉쳐 있던 내 마음의 실타래를 한 올씩 스르르 풀어주는 것만 같다. 여전히 나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지는 못 한다. 하지만 하나씩 둘씩 내 이야기를 추가하여 교과서 내용을 풍성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듯이 유독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한 것이 다르므로 같은 교과서로 수업을 하더라도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산다는 의견에 대해, 파리에서 만났던 원어민 선생님과의 경험을 덧붙일 수 있었다. 사람들의 상식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명제에 대해, 좋아하는 작가의 탄생기를 소개하며 상식을 깨부수는 사람으로 살자고 역설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소외되는 인물에 대한 소설을 읽고는, 재미있게 읽었던 그러나 뼈 때리는 만화와 그 작가의 경험을 소개했다. 깨끗한 환경에 대한 논증을 공부하다가, 인상 깊게 읽은 특수 청소에 대한 에세이를 안내했다. 오늘은 '눈치'라는 단어를 말하다가 이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이라고, 루시드 폴이 번역한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그림책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동안 살아온 나의 경험이 수업의 재료가 되는 일은 참 흥미롭다. '선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도 같다. 조금 먼저 살았다는 것으로 내 경험을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사십몇 해를 살아오면서의 기억이 여기저기 묻혀있을 텐데, 반복해서 본 강연 하나가 이렇게 기억을 몰고 오는 일도 신기하다. 이미 지나간 경험이 이렇듯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고, 이 이야기 하나가 학생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점 또한 귀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저녁이다.
'선생님의 수능썰'에 대한 수업일기의 내용은 설득 전략과 관련하여 학습요소와 연결해서 적으라고 해두었는데도 자기 소감을 쓴 학생들도 많았다. 유독 궁금한 게 많은 둘둘이는 수업마다 나를 웃게 하는데, 수능 이야기 끄트머리에 쓰라는 일기는 안 쓰고 대신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수능 끝나고 뭐했어요?"
내 경험을 나누는 일의 기쁨이 있기는 한데, 갑작스러운 질문은 당혹스럽기도 하다. “글쎄-“ 하며 주저했다.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것 같다는 우려와 함께, 별 일이 있던 것은 아니어도 여러분과 몇 개월을 함께 공부해온 국어 선생님이 하는 얘기라면 다 공감해줄 것인가, 갑자기 의심스럽다.
강연을 듣기 전에 내가 김하나 작가님을 좋아한다고 이 분의 직업이라든가 이 분이 낸 책이라든가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났더니, 둘둘이는 이렇게 물었었다.
"저 작가님을 좋아해서 선생님 머리가 그 모양인 거예요?"
라고.
쇼트커트를 한, 책읽기를 좋아하는, 대학에서는 과학교육을 공부한, 파리에서 일 년 살았던, 국어교사가 오늘도 가르치고 배우고 애쓰고 있다.
https://brunch.co.kr/@gioiadiary/102(작년에 쓴, 쉼표의 소중함에 관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