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와 덕질을 나누는 기쁨
"선생님, 이따가 찾아뵈어도 될까요?"
지난 5월 일이다. 올 2월에 졸업한 고1 J, 독서동아리 부원으로 나와 이야기가 잘 통하던 아이였다. 담임이었던 아이도 아니고 통 연락이 없다가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면 어쩌나 하며 얼굴을 마주했다. 보통 졸업생이 찾아오면, 진학한 학교는 어떤지, 공부하기 힘들진 않은지, 급식은 괜찮은지,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선생님들은 어떠신지 등을 나누기 마련이다. 졸업생과 나누는 통상적인 이야기가 그치자 우리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책 이야기, 작가 이야기가 피어났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더운 복도에서 둘 다 신나게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아무래도 자리를 옮겨 더 얘기해야겠다고 학교 근처 카페로 향했다. 마주(그러고 보면 처음으로 얼굴을 '까고' 마주했다!)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또 어찌나 여기저기로 흘러가는지! J가 방송부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스케이트 경기를 즐겨보는 것, 장차 선수권 대회 촬영을 하고픈 꿈 이야기로까지 주제가 커졌다.
기말고사가 끝났다며 두 달만에 또 만난 우리는 이번에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대화를 했다. 시험공부 이야기와 학교생활에 대한 얘길 주고받다가 급기야는 서로의 덕질을 나누었다. 스케이트 선수권대회에 갔는데 좋아하는 선수님이 자기 글에 댓글을 달아주었다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단다. 수줍게 이야기하는 J의 말에 나도 덩달아 신이 나, 나는 나대로 국제도서전에 가서 본 책과 작가들 이야기를 신나게 떠들었다.
내 소식으로 김하나 작가님과의 에피소드도 빼놓을 수 없었다. 몇 차례 썼듯이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강연 원고 덕분에 나는 수업 중에 덕질을 할 수 있다. 내 앞에 앉은 J도 작년에 나와 이 수업을 했으니 김하나 작가님을 안다. 현재 수업 들어가는 아이들에게도 자랑한 어느 날 아침의 사건이다.
황선우, 김하나 작가님의 <퀸즐랜드 자매로드> 첫 북토크가 당인리 책발전소에서 있었다. 나는 갈 수 없는 평일 저녁의 북토크라 서울에 있는 우리 H(대학 후배가 된 제자)를 떠올리곤 카톡을 했다. "여기 신청해 봐."하고. (실은 H 말고 첫 학교 선배 선생님께도 추천드렸다. 그분도 김하나 작가님 팬이라 우리는 종종 함께 행복을 이야기한다.) H는 안 그래도 신청하려고 했다고 답장을 보냈고 며칠 후, 북토크에 당첨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토크 당일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는데, H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시간이 남아 근처 카페에 와있는데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 두 분이 들어오셨다는 거다. 감탄사를 보내며 좋겠다는 부러움을 표현했다.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는 덕담과 함께. 그런 일이 있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에서 깬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알람을 끄고 잠시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었는데, 빨간 하트에 하나 작가님 아이디와 말풍선이 보이는 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깜빡이며 글을 읽어보니 이것은 틀림없는 하나 작가님의 댓글이었다. 어제의 H와 같은 흥분이 온몸에 흘렀다. <퀸즐랜드 자매로드>를 읽고 올린 게시물이었다. 댓글에 무려 김하나 작가님이
"선생님의 추천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책읽아웃을 들었던 학생이 스물한 살이 되어 퀸즐랜드 자매로드 첫북토크에 왔습니다. 뭉클했어요. 고맙습니다."
라고 써주신 거다. 카페에서 H가 전해드린 편지에 내 이야기가 있었나 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H가 편지에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곱게 적어 두었다니 놀랍고, 또 그 아이디를 보고 찾아와 주신 작가님도 감동을 주셨다. 입이 다물어 지지 않던 그 아침, 바로 댓글을 쓸 수도 없을 만큼 아득했다. 그치만 그날 있었던 수업마다 나는 입이 헤벌쭉 해져서는 자랑을 했던 것이다.(여전히 작가님의 강연으로 설득 전략 수업 중이었다.) 그리고 J에게도 물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길 했지.
어제 이번 주 <책읽아웃-옹기종기> 팟캐스트를 듣다가 또 놀라고 말았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 편이어서 안 그래도 귀를 쫑긋 열고 들었는데 초반부터 우리 H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다! 고등학생 때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듣던 책읽아웃 팬이, 스물한 살 대학생이 되어서 북토크에 왔다고! 그가 보낸 시간들마다에 자신들의 대화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는 놀라운 기쁨에 대해 말씀하셨다. 맞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연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참으로 놀랍다. 나와 H 둘 사이에도 책읽아웃과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간다. 우리 H는 편지를 참 잘 쓰는데, 작가님들께 작고 정갈한 글씨로 또 어떤 내용을 썼을까 궁금했다. 인스타그램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연을 팟캐스트를 듣고 조금은 알게 되었는데 , 국어 선생님(저예요!)에게 책읽아웃 추천을 받은 얘기며 자신의 진로와 읽고 있는 책에 관한 글도 있었다고 한다. 황선우 작가님이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읽아웃을 듣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이 참 의미있었겠다는 말씀을 덧붙여주셨는데, 맞아요. 우리는 책 이야기를 하고, 책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랍니다. H가 고등학생일 때에도 대학생이 된 지금도 책 읽는 시간을 많이 내긴 어려울 테지만, 만날 때마다 책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게 어찌나 큰 힘을 주는지 모른다.
오은 시인님이 <책읽아웃>의 끝부분에서 좋은 걸 좋다고 말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지 물었다. 황선우 작가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같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많이 두면 됩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말이다. 맞네, 맞네. 혼자 좋아하는 것도 즐겁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같으면 힘을 얻지 않는가.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걸 그들도 좋아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은 더욱 커진다. 내게는 덕질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고(도서전과 책읽아웃 공개방송에 같이 가고, 책을 공유한다.), 선배가 있고, 또 열 살 이상 아니지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제자들이 있다. 만나는 모든 학생들과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그 인연은 더욱 소중하다. 지금도 점점 성장하고 있고 그러느라 바쁜 아이들이 한 번씩 시간을 거슬러 내게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들이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 호주에 있는 봉봉이가 가끔 전화로 근황을 알려올 때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같이 사진 찍으러 다니고 전시 보러 다니던 나의 젊은 날도 생각나고, 그 꼬맹이가 어느새 공부를 마치고 병원에서 일을 한다며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게 너무 흐뭇한 거다.(봉봉이를 보러 퀸즐랜드엘 가야겠다! 갈 것이다!) 당당하게 젊음을 누리고 있는 H는 어떤지. 자기 일을 야무지게 해내면서도 가끔 내게 사랑을 전해주는 H, 똑똑하면서도 다정한 이 아이가 자신의 능력을 어느 자리에서 펼치면서 살아갈지 기대가 되고, 그의 무대가 얼마나 넓어질지도 궁금하다. 지난 주말에 만난 고등학생 J와 만들어갈 인연은 어떻게 흘러갈까. 예의 바른 태도로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진지한 얼굴로 내게 즐거움을 전하는 J의 말에 귀 기울이는 그 시간이 뿌듯했다. 내가 뭘 얼마나 했다고 이렇게 내게 와 자신의 소중한 마음과 꿈을 조곤조곤 전해주는지, 너무 귀한 마음들을 선물 받고 있는 기분이 든다. 너른 세상으로 멀리 날아갈 이 친구들이 내게 와서 재잘대고 또 훌쩍 날아가고 하는 이 관계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우리의 대화는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야지.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기,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매주 화요일에 하고 있는 거 아시지요?
@ <책읽아웃> 예스24가 만드는 독서 팟캐스트
@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좋아하는 걸 좋다고 말하는 팟캐스트
* 저는 광부이자 톡토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