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대전에서 즐기는 예술

그리워하던 풍경 속 예술 감상

by 조이아

부러워하던 풍경 속에 다녀왔다. 먼 기억이다.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하루를 머문 적이 있다. 벌써 십여 년이 흐른, 친구와 둘이 떠난 여행이었다. 어쩌다가 베로나엘 들렀는지 지금은 잘 생각이 안 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의 집이 있어서 거길 다녀온 기억은 있다. 하지만 더 강렬한 기억은 그 도시에 대한 질투였다. 마침 여름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었고 그 사실을 알고 여행을 준비하기는 했어도 밤늦게 끝나는 공연을 볼 수는 없겠다고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예약한 숙소도 원형경기장과는 좀 떨어져 있었고, 여자 둘이 떠난 여행의 초반이었기에 안전함에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광장의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초콜릿 음료를 마시며 신나던 기분은 곧이어 등장한 오페라 관람객들 속에서 시무룩해졌다. 해가 질 무렵이었을 거다. 아니다, 여전히 훤한 대낮 같은 저녁 시간 사람들이 광장으로, 원형경기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강한 질투를 느꼈는데, 그 사람들에게서 어떤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페라를 보러 간다는 기쁨과,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 이 좋은 걸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뿌듯함이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크닉 가방과 두툼한 방석, 모자를 눌러쓰고 그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공연장을 향했다. 아, 옷도 멋지게 차려 입고! 제일 부러웠던 분들은 아이의 손을 잡은, 때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함께한 가족으로 보이는 분들이었다. 매일 달라지는 오페라의 향연을 가족과 함께 즐기는 기분은 어떨까. 그날의 오페라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어떤 음악이 흘러나왔는지 지금은 전혀 모르겠다. 다만 무언지 모를 커다란 순간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만은 분명했다. 우리는 원형경기장 주변에 누워있던 (오페라에 등장할 혹은 등장했던) 커다란 인형 조형물과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유럽 다른 도시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대학생 때 처음 했던 유럽여행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여름, 시청사 건물 앞에서 음악축제가 열린다. 축제가 열리는지도 모른 채 열 개의 나라를 둘러보던 중 마주한 빈의 음악축제가 얼마나 멋지게 느껴지던지. 분위기는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커다란 화면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가 상연되고 있고 그 앞에는 의자가 나란히 놓여있어서 음악회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주변으로는 노천 식당이 있고, 우리들은 단맛이 나는 술잔을 들고 홀짝거렸다. 맛있던 술 때문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음악회를 즐기는 사람들의 면면이 나를 더 기분 좋게 했다. 가족 단위로, 친구들과 혹은 연인과 함께 시원한 밤 공연을 즐기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 자리에는 분명히 그 순간을 즐기는 나도 있었는데 무엇이 부러웠냐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 공연을 쉽게 또 자주 즐길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로서는 엄청나게 먼 거리에서 우연하게 들른 운 좋은 관광객일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지 않은가. 나도 가족과 함께,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이런 자리에서 즐기고 싶었다. 이런 바람은 두 번째 유럽여행 때에도 발동하여 여자 둘이 떠난 유럽여행 때 또다시 오스트리아 빈이 우리의 코스가 되었다. 베로나를 지나 기차를 타고 도착한 빈에서 친구와 나는 미술관도 다니고 자허 토르테 케이크도 먹으며 빈의 거리를 즐겼다. 그리고 저녁에는 시청사 건물 앞에서 음악회를 즐겼지. 왠지 저번보다는 규모가 작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두 번이나 빈의 음악축제에 왔다는 기쁨에 그런 건 모른 척하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드디어 나는 내가 부러워하던 풍경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아티스트 데이트를 한다고 예술의 전당에서 무엇을 하나 촉각을 세우던 여름이었다. 대전 국제음악제의 어떤 음악회엘 가볼까 고민하다가 '빛깔 있는 여름축제'라는 야외공연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름 읽은 <오늘도 자람>의 이자람 장군님('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들어보세요. 장군님이라는 호칭이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시다면)이 대전에 납신다는 거다. 다이어리에 날짜와 시간을 적어두었다. 그 다음다음날에는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님이 오신단다. 오, 이건 꼭 가야 해. 달력을 보며 이날들을 기다리는데 한반도에는 비가 많이도 내렸다. 서울에서 시작된 폭우가 점점 내려오더니 금요일부터 있을 공연 주간에는 엄청난 비가 내려 우리 집 앞 하천은 징검다리며 계단까지 물이 차올랐다. 홈페이지에는 우천 시 공연 한 시간 전에 취소를 알리겠다는 공지가 있었고 나는 초조해졌다. 매일 날씨 주간예보를 찾아보았는데, 목요일부터는 금요일에 해가 반짝이는 그림이 떴다.

하루 종일 구름이 예쁘고 맑은 금요일이었다. 아이들은 학원 다녀올 시간이어서 나는 아이들을 보내 놓고 일찌감치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시립미술관에서 '미래도시' 전시를 감상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렸다. 저녁이라 선선하겠거니 했지만 비 온 직후라 날은 습했고 무더웠다. 드문드문 앉은 관람객은 공연 시작과 동시에 자리를 채워갔고 어둑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야외 원형극장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판소리 직관이었다. 국어 교사라 학생들과 흥부전이나 별주부전을 읽고 나면 판소리를 찾아 감상하기도 했고, 그저 '범 내려온다'를 감상했을 때도 있었다. 큰 감흥은 없었다. 판소리라는 건 왠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도 자람>을 읽으면서, 이렇게 매일 연습하고 노력하고 공연하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이 사람의 노래라면 들어보고 싶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들려준 단가에서부터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면서 심장이 뛰고 그 소리에 말에 집중하게 되는 거다. '춘향가'의 어떤 대목을 들려주는지 설명해주는 이자람 님 덕분에 이야기에 쉽게 몰입이 되었다. 특히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을 각색해 판소리로 작창한 '이방인의 노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도 재미가 있어서 그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궁금함에 목이 마르기도 했다. 이 무더위에 얼굴에 붙인 핀마이크의 테이프가 떨어질 정도로 땀을 흘리며 노래하시는 이자람 님을 보면서, 내가 이 귀한 걸 공짜로 봐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하나가 끝날 때마다 엄청나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내 손은 두 짝뿐이라서 안타깝기만 했다. 또 이렇게 훌륭한 공연을 나 혼자만 보고 있다는 데에 자책감이 들었다. 애들 학원을 안 보내고라도 데려올걸 후회하는 동시에, 홀로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기로 한 거잖아 속으로 다투다가 내일모레 있을 공연에는 가족이랑 같이 오자는 굳은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도 비가 내리더니(저녁에는 날이 개어 공연은 진행되었단다.) 나윤선 님 공연 날에는 비는 없이 구름이 많은 날이었다. 가족과 함께 돗자리와 일인용 방석을 챙겨 예술의 전당엘 갔다. 사전 공연은 '봉앤줄'의 <외봉인생>이라는 아슬아슬한 퍼포먼스였는데 기다랗고 높은 막대에 오르고 떨어지고 하는 몸짓을 보여주어 깜짝깜짝 놀라며 보았다. 아들들도 경탄하며 극을 즐겼다. 드디어 시작한 재즈 공연은 우리 가족을 힘껏 박수치게 했다. 나윤선 님의 공연에는 남편과 결혼 전 어느 크리스마스 때 가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보니 그때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목소리에 음역이 넓어진 느낌을 받았다. Oscar Peterson quartet의 멤버였다는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의 공연은 정말 놀라웠다. 기타 연주도 노랫소리도 풍성했다. 감미롭다가도 날카롭고 고요했다가도 웅장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시간이었다. 야외극장이라 엉덩이도 아프고 자리도 불편했지만 충분한 감동을 전해 받았다. 특히 앙코르를 외쳤을 때 나윤선 님과 기타리스트 분이 무대에서 내려와 마이크도 없이 원형의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리꾼 이자람, 고수 이준형, 기타 김정민

재즈보컬 나윤선, 기타 울프 바케니우스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 식구들과 한 마디씩 감상을 말하는데 문득 '나 이런 시간을 엄청나게 부러워했었지'하는 생각이 났다. 그 옛날의 베로나, 빈에서 그리던 시간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다는 자각. 그러면서 내가 근 십 년째 살고 있는 도시, 대전에 대한 애정이 퐁퐁 솟아났다. 예술의 전당이 있다는 것도 좋고, 국제음악제가 매년 열리는 것도 마음에 든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다녀올 수 있고 시립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의 전시를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 대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는데 이제는 나도 나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멋진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감사했다. 이렇게 멋진 공연을 공짜로 봐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이자람 님 열연하고 계신 뮤지컬 <서편제>를 예매했다. 도서전 메이트(내 친구는 한 명?)랑 같이 가야지. (지금까지 이 좋은 것들을 가족과 함께 누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의 진짜 속마음이 탄로나고 말았다.) 이렇게 내 안에는 자유로운 재즈가 흐르지, 하고 마무리해 본다.

@ 이자람, <오늘도 자람>,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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