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청 방문

어린이 학교 등록을 위한 시청 방문기

by 조이아


2017년 7월


수요일은, 아이들 학교 등록을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구의 시청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다. 이 일은 왠지 까탈스러울 것 같고, 말도 안 통할 것 같아서 차일피일 미뤄뒀었다. 한국서 떼어온 서류의 불어 번역본을 엊그제 찾아온 터였다. 준비된 김에 더이상 미루지 말자, 곧 바캉스 기간이라 더 지연되면 안된다, 싶어서 마음먹고 네 식구가 길을 나섰다. 나는 나대로 예의를 갖춘다고 블라우스랑 새로 산 레페토 구두도 신었다.

"걸어가?"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남편은 한국에서는 차를 열렬히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파리에서도 차가 필요하다고 출국 몇 달 전부터 차 리스 계약을 해둔 것도 그였고, 리스가 1년 계약은 안되니 차 계약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그. "1년 근무하기로 했으면서, 그 기간보다 더 일찍 돌아가는 게 말이 돼? 난 더 있고 싶어."하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태다. 어쨌거나 이런 그가 파리에 와서는 30분을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다. 연구실에 주차등록을 하려면 또 엄청나게 복잡하단다. 지하철은 애매하다며. 그럼 자전거를 타지? 운동 삼아 걷겠다는 남편. 우리 셋도 자꾸 걷게 한다. "가까운데 걸어가지 그럼."

새구두를 신으면서, 비싼 신발인데 설마 발이 아플까 하며 집을 나섰다. 둘째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자꾸 뒤쳐진다. 배가 아픈 것 같다고도 하고, 길가의 개똥을 관찰하기도 한다. 큰애랑 한참을 앞서가던 남편이 돌아와서 자기가 둘째를 잡고 걷는다. 한 이십분 갔을까, 시청이 보인다. 우리동네를 벗어난 후부터 걷는 내내 내 발뒤꿈치는 고통을 호소한다.

아픈 발뒤꿈치를 의식하며, 머릿 속으로는 여기까지 대중교통으로는 어떤 게 있나를 검토했다. 지하철역도 이 호선을 타려면 한참 걸었어야 했군. 버스는 아직 생각도 못할 때였다. 요새는 집앞에서 버스를 자주 이용하는데, 저기까지 집앞 버스를 이용하면 장장 네 정거장이다. 혼자 걸으면 십오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일곱살 아이와 걷는 것은 다르다.


빨개진 발뒤꿈치를 확인하고 시청엘 들어갔다. 긴장되는 곳. 어디로 가야하나. 입구에 서계신 가디언에게 짧은 불어로 "등록하려면 어디로 가나요?" 묻고, 올라가래서 올라갔다. 가족 어쩌구 하는 데로 가서는 물어보니 번호표를 뽑으라고. 표를 뽑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서 기다렸다. 어린이들 학교 등록하는 데라 그런가, 어린이 놀이방도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조심성 있게도 들어가도 되냐며 묻고(물론 내게 물었다.) 얌전히 놀아주었다. 프랑스는 서류 처리가 느리기로 유명해서, 이런 데서는 무조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금세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Bonjour)!" 인사를 건네고는 우리 남편, 금방 영어를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대 '봉주르'로 시작하면 엄청난 불어가 밀려온다며, 영어로 선수를 치는 거다. 공무원님은 고맙게도 영어로 해주시는데, 'korea'도 '꼬레(coree)'로 말씀하시고, 영어를 불어처럼 발음하신다. 글쎄 "How old is he?"를 못 알아 듣겠는 거다. 'h'가 발음되지 않으니 '하우'부터 못 알아듣겠는 거다. 아무튼 아이 하나씩 하겠다며, 큰아이 서류를 들고는 둘째를 가리키며 이 아이 먼저 하잔다. 그래, 둘째 두상이 크긴 하지. 둘이 같이 있으면 쌍둥이인줄 아니. 한국에서도 그랬고 여기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쌍둥이냐 묻더라. 아무튼 학교 등록을 위한 행정적인 처리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서류, 예방접종증명서 등이랑 집주소 부모 핸드폰번호 등을 확인하고는 학교를 알려주었다. 우리 집 앞의 잔다르크 학교. 8월 28일에 교장에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아 찾아가라며 서류를 하나씩 주셨다. "감사합니다(Merci beaucoup)." 그렇게 두 장의 종이를 가지고 구청을 나왔다. 뭐야, 잔뜩 긴장하고 찾아갔는데 별 거 아니네. 나와서 남편이랑 둘이 결과(?)에 대해 얘기하는데, 우리 둘이 의견이 갈렸다. 나는 "8월 28일에 전화하면 되겠다" 했고, 남편은 "28일 전까지 연락하는 거 아냐? "한다. 헐. 둘이 뭘 들은 거니. 날짜 앞에 다른 전치사가 없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교장이 지금은 없다고 했는데?

우리 둘의 이런 쿵짝은 계속 되었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나에겐 열린 귀가 있었고, 뜨문뜨문하지만 불어로 소통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었다. 남편에게는 영어로 트인 입이 있었고, 문서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상호보완적이라 참 다행이지. 불어로 전화가 오면 내가 해석하고 말하게 되었고, 남편은 영어로 말하기와 서류를 구글 번역기로 돌리는 일을 맡았다. 불어를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번역기보다는 내가 아는 말만 읽어나갔으므로.


다시 집으로 가는 길. 내 발뒤꿈치는 부풀어 올랐다. "또 걸어가? 나 좀 업고 가."라고 내가 말했으나 남편은 둘째를 업어 주었다. 중간에 놀이터에 한 번 들리고, 쉬엄쉬엄 집으로 돌아 왔다. 학교 등록을 했으니, 그것도 가까운 곳에, 한시름 놓았다. 다만, 불어를 배울 때에는 다른 학교에 가서 배울 수도 있다고 한 게 좀 걸린다. 그건 그때가서 고민하기로! 일단 내 발을 쉬게 하고, 뒤꿈치엔 밴드를 붙였다. 이럴 수가 있나. 비싼 신발이 나를 이렇게 아프게 하다니 다소 배신감을 느끼면서.

2017년 7월 19일


그때가서 고민하기로 한 일은, 8월 28일 학교에 전화를 해보고 현실이 되었다. 통화도 쉽지가 않았는데 그 월요일에 바캉스에서 돌아온다던 교장선생님은 그날에도 복귀하지 않았으며 다음 날에도 통화가 여러 번 오간 끝에 목요일에야 겨우 통화가 되었다. 그것도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전하며. 불어 적응반이 그 학교에 없기 때문에 다른 학교로 배정되어야 한다며, 다른 학교를 일러주셔서 또다시 그 학교에 연락을 하고 다음날로 약속을 잡았다. 그러니까 개학을 코앞에 두고.

아, 게다가 프랑스 행정은 역시나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는데, 학교에 가기로 하고 서류를 검토하다가 오타를 발견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이름의 철자 순서가 틀렸고(이름의 알파벳이 복잡하기는 하다, 나중에도 이런 일은 잦았다), 작은 아이는 생일이 잘못 쓰였다. 한 군데도 아니고 어떻게 이럴 수가! 나또한 그때 확인하지 않았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그래도 프랑스는 엄청나게 서류에 깐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을 전혀 예상치 못했단 말이다.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다시 시청으로 갔다. "오타가 있어서 왔어요."하고 두 군데를 가리켰다. 다른 증명서와 함께. 내가 거기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면 엄청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렸을 지도 모르는데 나와는 다르더라.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출력을 해서 주셨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서나 쓰는 갱지에. 허허. 쉽게 수정되어서 그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고 돌아왔다.

2017년 8월입니다. 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남아 있네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파리 뮤지엄패스 4일 이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