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는 몰랐던, 반짝이는 그들에게 감탄하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슈퍼마리오, 주홍색 드래곤볼 도복, 까만 망토에 그리핀도르 목도리. 초록색 인조잔디 위에 형형색색의 중학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복과 교련복, 빨간 티셔츠에 해군 조교도 있고, 하키복, 농구복, 태권도복, 주짓수 도복 등 운동복을 갖춰 입은 반도 있다. 빨간색 소방복 점프슈트와 핫핑크 도복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캐릭터 티셔츠를 맞춰 입거나 무지개색 후드티를 입은 반도 보인다. 새마을운동 티셔츠에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은 반은 왠지 친근하고 연한 분홍빛 교련복은 교련복과 같은 무늬임은 분명한데 마치 잠옷 같다. 가만 보면 상어와 공룡도 한 무리씩 있는 오늘은 파아란 하늘이 딱 맞춤한, 색색깔 반티의 향연이 펼쳐지는 체육축제의 날인 것이다.
여자 아이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머리를 갈라 땋으며 평소와는 다른 헤어스타일을 선보이고 얼굴을 가꾸는 데에도 공들인다. 남자아이들도 머리칼에 흔들거리는 핀을 꽂거나 하트 모양의 선글라스를 끼는 등 과감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과 몸에는 판박이 타투와 글리터가 점점 많아진다.
재작년에는 코로나로 체육대회가 없었고 작년에는 학년별로, 올해에는 전교생이 다 모였다. 오전에는 모둠별 게임 챌린지 시간으로 미션에 성공하면 도장을 받을 수 있다. 학생 도우미 한 명과 담당교사가 게임을 진행하는데, 학생 수가 많은 만큼 그 종류가 다양했다. 림보, 농구공 자유투, 제기차기, 알까기, 투호, 윷놀이, 훌라후프에 물병 세우기, 비행기 날리기, 몸으로 말해요, 스피드 퀴즈 등 흥미로운 놀이도 많았다.
나는 다른 국어 선생님과 가위바위보를 맡았는데 마스터와 모둠원이 가위바위보를 하여 마스터를 이기면 도장을 주는 것이었다. 어제 체육축제 안내장을 읽으며 체육선생님께 "마스터가 누구예요? 저입니까?" 물었더니, 선생님 혹은 도우미 학생이 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다. 가위바위보라. 가위바위보에 영 자신이 없어 잠시 시무룩해 있다가 내가 지면 아이들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기운을 차렸다. 모둠원은 합심해 같은 손동작을 내면 되었고, 두 번의 기회로 비기거나 지는 것 말고 무조건 마스터를 이겨야 도장을 주었다. 우르르 몰려와서는 자기들끼리 무엇을 낼까 정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다. 다 들리게 상의하는 아이들에게는 "안 들리게 해." 하며 웃기도 했고, "남자는 주먹!"을 크게 외치며 다른 것을 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 가위 낼 거야."하고 옆 선생님이 힌트를 줘도 역으로 생각해서 지는 아이들도 있었고, 선생님을 믿고 주먹을 내 도장을 받아간 아이들도 있다. 정한 것과 다른 걸 내는 애들이 한 번씩은 있었고, 그럴 때면 모둠별로 단합하던 마음 따위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친구를 탓하기도 했다. 멀리 달아난 협동심은 자기들이 이기면 돌아오곤 했는데 물론 나는 그들에게 주로 승리의 기쁨을 주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긴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싶어도, 아이들은 이길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즐거운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아홉 시부터 열 시 오십 분까지 나와 함께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포스트를 지키던 A 선생님이 열 시 반이 넘어가자 진지한 얼굴로 "선생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한결같이 질 수가 있지?"하고 두 번이나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꽤나 친하고 서로를 좋아한다.) 반별로 네 모둠을 구성했으니 백이십 개의 모둠이 있고, 그들이 다 온 건 아니겠지만 가위바위보를 오래, 많이 하기는 했는데 내가 이긴 것은 고작 세 번 정도?
오후에는 결승전이 치러져 축구와 피구, 이어달리기가 학년별로 이어졌다. 축구 경기, 분명 내가 아는 학생들인데 과연 내가 아는 그 아이인가 싶었다. 교실에서 보던 것과 너무도 달라서였다. "우와, 진짜 잘한다. 쟤가 누구지?"하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재차 물었다.(우리 반은 예선에서 탈락했다.) 운동장을 누비며 정말 빠르게 달리는 저 아이, 공의 주도권을 잡고 발놀림이 빠른 아이가 너무 멋져서 힘껏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이어달리기는 또 어떤가. 뒤에 오는 아이와의 사이 거리를 한껏 벌리며 앞서 나가는 그에게서 포스가 흘러넘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과 피구할 때 엄청나게 빠른 공을 던지던 아이였다!(그 덕에 우리 반은 역시 예선에서 떨어졌다.) 교실에서는 교과서 귀퉁이에 그림을 끄적이며 수업엔 덜 집중하던 저 아이가 저렇게 운동을 잘하는구나. 이어지는 남학생들의 경기에서도 교실에서와는 다른 모습의 학생을 발견했다. 자주 아파서 지각이며 조퇴가 잦은 학생이었다. 내게는 자꾸만 책상 위에 엎드린 모습만 보여줘 놓고, 트랙 위를 달리는 아이는 부스스하던 머리를 휘날리며 너무도 재빠르게 저기 저쪽으로 커브를 돌았다. 나는 '우와'와 ‘대단하다’를 연발하며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야외활동에 너무 지친 나는 퇴근시간을 정확히 지켜 집으로 돌아왔다. 체육대회 날이면 목도 따가웠었는데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어서인지 목은 안 아팠다. 이르게 샤워를 하는데 세수하는 얼굴이 따가웠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양 볼이 바알갛다. 오전에 가위바위보를 할 때엔 운동장 가장자리에서 동쪽을 향해 있었고, 오후 경기를 응원할 때엔 또 저 위에 뜬 강렬한 태양빛을 마주한 채로 였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마스크와 선글라스 사이 볼을 간과했다. 점심시간에도 단체사진을 찍는다고 서둘러서 선크림을 덧바르지 못했는데 햇빛을 너무 오래 봐서 그런가 보다. 발개진 볼은 어쩌면 너무 눈부신 아이들을 보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교복이나 체육복이 아닌 원색의 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저 멀리서도 눈이 따갑게 그 위용을 자랑했다. 오늘따라 진해진 아이라인과 글리터, 판박이 타투 때문이 아니었다. 교복이나 교실에서의 판에 박힌 수업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개성이 눈부셨다.
가위바위보에 진심을 다해도 자꾸만 지는 교사가 있고, 운동장에서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한껏 뽐내는 학생들이 있다. 교실에서는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저 안에 그들의 재능이 많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내 볼마저 따갑게 만든 눈부신 아이들은, 자기들도 그 반짝이는 이쁨을 알고 있어서 체육대회가 끝난 후에도 한참을 운동장에 머물며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어쩌겠는가, 이리도 빛나는 것을.
“여기 봐봐, 사진 찍어줄게. “ 이런 말, 안 하기가 쉽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