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의 기이한 생태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향유하는 중학생들

by 조이아

아들이 운동 갔다가 올 시간이 지났다. 뒷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았더니 저어기 내가 사다준 새파란 티셔츠를 입고 까만 점퍼를 걸친 아이가 온다. 꽤나 느린 걸음으로. 오고 있구나 안심하며 좀 더 보는데, 저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멈춰서 하늘인지 아파트인지를 올려다본다. 왜 저러지? 누가 위에서 부르나? 일 층 내부에서는 알 수가 없다. 어머나, 갑자기 발차기를 한다. 곧 이쪽으로 오는가 싶더니, 수 분이 넘도록 도어록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내 마음은 뒤숭숭하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저래. 저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인데 지 동생이 집에서 하는 행동을 이제야 하고 있다고? 밖에서? 초5 남자아이는 여전히 가상의 적과 싸우느라 주먹을 휘날리고 몸을 소파나 침대에 날리며 거친 몸짓을 종종 한다. 중2는 너무 안 움직이고 자세가 좋지 않아 이제 막 헬스장에 등록해서 트레이닝을 받는 참이다. 헬스장에서 뭔가 자극을 받은 걸까. 방에서도 문을 닫고 뭔가 몸짓을 하는 것 같더니 저렇게 밖에서도 뭔가가 하고 싶었나 보다.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고 웃는 얼굴로 아이를 맞이했다. 그러고 보면 중학생들은 남들은 아랑곳 않고 별난 짓을 좀 한다.


옆 반의 참한 반장이 담임선생님께 매직블록을 돌려드리러 왔다. 봉사시간에도 매직블록을 쓰는 일은 드문데, 그날은 봉사시간이 있지도 않았다.

“어, 수고했어. 그런데 어딜 닦느라고?”

담임선생님이 기특해하며 물으셨다. 나도 덩달아 거들었다.

“오, 역시 반장이라 다르구나. 청소 시간도 아닌데!”

“네? 저 청소 안 했는데요? “

마스크 쓴 아이의 눈빛이 흔들린다.

“실내화 닦았어요.”

아아, 아이의 하얀 크록스가 눈부시게 빛났다.


속을 알 수 없는 학생들이 많다. 좀처럼 말이 없어서 나를 안달하게 만드는 학생도 있고 조교 같은 분위기의 착장으로 자기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며 현장학습 갈 때마다 일 등으로 도착하는 학생도 있다.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책상 위에 벗어두고 추운 화장실 거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예쁜이도 있고(담임은 조회 시간에 그 이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시험기간에도 민음사에서 나오는 고전문학 시리즈만 읽고 있는, 성적은 괘념치 않는 문학도도 있다.

아이들의 행동은 공익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테다. 생각해 보면 나도 중학생 때 이상했지. 중2였나 중3 때 나는 하늘색과 파란색 펜으로만 일기를 썼더랬다. 나의 슬픔은 그 색으로만 표현할 수 있으니까. 일부러 밖에 나가서 큰 문구점을 어슬렁 돌아다니다가 겨우 편지지를 하나 사서 나오기도 하고, 선물가게에서 화장품이나 빛깔이 요란하고 오르골 소리가 나는 보석상자를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번씩 스트레이트 펌 약도 거기서 샀더랬지. 우리 학교에서 치러지는 수능시험 날은 중학생으로서는 휴일이었는데 괜히 학교 밖을 거닐면서 시험의 중한 기운 같은 걸 느껴보기도 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얼굴을 마주치기 어려운 옆 반 학생(음, 이유인즉슨 잦은 조퇴와 수업 중에 엎드려있어 까만 뒤통수만 보여서?)이 풀메이크업으로 속눈썹을 강조하고 등교했다. 오늘 무슨 일이 있냐 물으니 그저 일찍 일어나서 하고 왔단다.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거라 생각하면 이상할 것이 없다.



정혜윤 작가님의 <<사생활의 천재들>>을 읽다가 김산하 박사님 편에서 이런 글을 읽고 아들 생각이 나서 필사를 해두었다. 그는 야생 영장류,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는 학자다.


“제겐 제 자신을 키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에게 과제를 부여하는 겁니다. 어떤 과제냐면 하나의 동물을 관찰하듯 자기를 관찰한다는 겁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 문제에 시달리고 있지만 다른 생명체가 그러하듯 우리 인간에게도 자기한테 맞는 해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법을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의 원래 관심사에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자기의 원래 관심사란 것마저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면 어린 시절의 자기로 되돌아가 보는 겁니다. (중략)

무당벌레가 묵묵히 걸어가는 것을 가만히 한번 보십시오. 무당벌레는 걸어가는 자기 존재를 받아들입니다. 수만 년 역사를 통해 다듬어진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수행하면서, 그러면서도 변화합니다. 이구아나가 바닥에 누워 햇볕을 쬐는 것을 보십시오. 저는 이것을 보고 동물 세계에도 럭셔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동물들도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향유합니다. 동물들에게도 자기 삶을 즐기는 시간이 있습니다. 동물들도 생존에 관한 문제는 빨리 해치우고 삶을 즐기고 싶어 합니다. 동물들은 자기 세계를 향유함에 있어 당당합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당당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운데 자기가 귀여운 줄도 모릅니다. 동물들은 미학적으로 나름의 스타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완성’이란 자기가 속한 곳에 딱 맞게 되어있단 겁니다. “


무당벌레가 걸어가는 것을 상상하다가 우리 아들의 천천한 걸음과 팔 동작(요새 자꾸 반복하는 동작이 있다), 우리 반 남학생의 지각을 해도, 수업 종이 쳐도 늘 같은 속도로 걷는 느긋한 걸음걸이가 생각났다. 그간 많이 타박해왔는데 그들로서는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향유하고 있을 터. 그들의 세계를 받아들여야지 내가 뭐 별 수 있겠나 싶다. 글의 뒷부분은 이렇게 이어진다. ‘미소 서식지(마이크로 하비타트)’에 관한 것이었다.


“모든 서식지는 오로지 거기서만 살 수 있는 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곳에서처럼 살 수는 없는 것들을 품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서식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장소만이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아닙니다. 아예 인간 한 명 한 명이 다른 인간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쉴 만한 곳, 살아갈 곳이 되는 거죠. 자신의 친구나 애인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한 사람이 하나의 마이크로 하비타트가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밀고 나가려면,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인정과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용기를 내기가 힘듭니다. 젊은 시절에 사랑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자신을 인정했었다는 것이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자신감 그 이상입니다. 자기를 뛰어넘게 합니다. 세계가 바뀌는 겁니다. “


이렇게 멋지고 귀한 마음이 담긴 책을 이제야 읽고 있다. 내 좁은 시야로는 덧붙일 말이 없다. 그저 이 글이 마음을 울렸으니, 나도 이 마음을 담은 행동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아들이 엉뚱한 행동을 해도 받아들이고 인정해주는 일, 우리 반 아이의 개성도 존중해주는 일, 그게 내 숙제인 듯싶다. 지난주 내 모습을 반성한다. 바야흐로 고입 원서를 작성하는 요즘, 엄청 까칠하고 예민해졌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으름장을 놓았던 것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학급 아이들에게 원서 작성에 관하여 설명을 한다. 원서 한 장 한 장 아이와 함께 검토를 하는데, 분명히 설명했던 내용인데 잘못해오는 경우가 있다. 차분하게 다시 설명을 한다. 혹시 몰라 전체에게 다시 설명을 한다. 그 다음다음 즈음에 또 같은 실수를 한 학생을 만나고, 같은 질문을 하는 학생을 만난다. 이런 반복이 참 기운을 빠지게 한다. 빠진 기운이 호통이 되어 나오는 기이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학생들을 향한 내 심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인가.


정혜윤 작가님은 김산하 박사님 편을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서식지야말로 접근 가능한 이상향입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이상향에 가닿았는가. 오히려 내가 받은 사랑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주에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이 한 학생으로부터 모두 하나씩 선물을 받았다. 냅킨에 정성껏 싸이고 투명 비닐팩에 담긴 선물이었다. 둘둘 말린 냅킨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작은 직육면체 지우개가 하나 들었는데, ‘이아쌤(제 이름이 조이아라면요)’이라고 음각한 도장이었다. 귀여운 글씨체로 직접 만든 도장이라니. 이걸 만들 생각을 하고, 이 작은 면에 글씨를 써가며 조각칼로 파내는 그 시간 동안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성이 가득한 이 작은 도장을 팍팍 쓰고 싶으면서도 아끼고 싶은 마음에 비닐에 곱게 싸 두었다. 국어교사인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이런 순간들이 있으니 나는 또 사랑을 해보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일 년이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우리 아들에게 내가 엄마인 게 기쁜 일이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일단은 친구들에게 먼저 내 사랑을 전달해야겠다. 흠뻑 반해버린 이 책 <<사생활의 천재들>>은 믿고 읽는 정혜윤 작가님 책이어서 읽기를 벼르고 별렀던 책인데 나온 지 오래되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더랬다. 지난주 동아리 시간에 책을 읽다가 혼자 눈물을 참으며 읽었는데 아무래도 소장해서 밑줄도 긋고 다시 읽어야겠다. 이참에 여러 권 주문해서 손편지와 함께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야지. 일 년 동안 수고한 우리 반 반장 부반장에게도 전해야겠다. 조그만 내 사랑을 전하며 산다.


(주문하려고 보니 품절이란다. 열심히 필사를 하는 수밖에 없을까.)

@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 봄아필, 2013

@ 대문 사진은 장 줄리앙 Jean Jullien, <그러면 거기 Then There> 전시에서, DDP 동대문디자인플라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