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가 나올 때마다 흠칫 놀라는 내가 되었다.
나도 모르게 "힘들어"가 나올 때가 있다. 퇴근하고 현관문 안에 들어서서 아침에 올려두었던 블라인드를 내릴 때, 연달아 수업을 하고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말을 한다기보다는 혼잣말로 나오는 말이다. 말이 되어 나오자마자 흠칫 놀라고 만다. 그리고는 그게 집 같은 혼자만의 공간이라면 얼른 정정한다. "안 힘들어. 괜찮아. 행복해."하고.
'힘들어'가 '괜찮아'가 된 데에는 한 남학생의 공이 크다. 근무 지역을 옮긴 첫해였다. 육아 독립을 처음 했고, 학교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소규모 학교라 배당된 업무는 많았다. 관리자는 엄했고 근무시간 내내 숨통을 열만 한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3월 학부모들을 모시고 하는 학교설명회날 교실에 앉은 아버님께 "교실이 너무 삭막해요?"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제야 환경미화라고 하는, 학급 환경 개선을 하나도 안 한 게 인식이 되었다. 그만큼 정신없던 해였다.
내 입에서는 '힘들어'가 자주 뇌까려졌다. 집에서는 집대로,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그저 지쳤다. 2학기 어느 날이었다. 쉬는 시간, 교무실에서 나도 모르게 '힘들어'하고 내뱉었고, 옆에 있던 중학교 2학년 아이가 그걸 들었다. 무슨 일로 내 옆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중학생들은 흔히 교무실에 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니까 특별히 내게 용무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아이는 내게 질문했다.
"선생님이 힘들어요?"
"뭐가 힘들어요?"
그 두 마디 질문에 뭐라고 답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질문이, 다른 누구에게가 아닌 그 아이로부터 나왔다는 것에서 질문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다. 아이는 2학기 들어 전학을 왔고, 작은 학교에서는 아이가 어떠한 사정으로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를 공유했다. 내가 수업을 하는 아이이기도 했으므로. 부모의 사정이라든가 지금은 홀로 어디에서 지낸다든가 하는 얘기였다. 국어 수업 시간에 만났고, 언행이 거친 편이어도 아이는 붙임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게 묻는 것이었다. 힘드냐고, 정말 힘든 거냐고. 아이의 태도에 불손함 같은 건 없었고 우리 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아이는 그저 물었을 뿐이지만 나는 속으로 반성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는,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지금 힘든 상황일 수 있는데 나는 그에 비해 힘들다고 할 만한 상황인가. 그저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그 후로 나도 모르게 '힘들어'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아이의 질문을 떠올린다. 내가 정말 힘들어서 이 말을 하는 건가? 이 정도가 정말 힘든 일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말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보다는 긍정적인 언어를 하며 지내고 싶어졌다.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내 상황 인식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고 이미 발화된 말을 정정한다. "괜찮아, 행복해." 나는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견딜 만하다고, 이만하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가 나를 키운다는 진실을 한 번 더 생각한다. 몇 해가 지나서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며, 질문이다. 이 순간을 떠올린 것은 물론, 졸업 직전 몰아치는 업무를 해야 했던 나날들 탓이다. 나도 모르게 '힘들어'를 토하며(또 그때마다 놀라며), 내 한계를 넘어서는 것들을 기획하고 수정하고 실행해야 했던 나날들이 드디어 지나갔다. 현실에서는 졸업식과 함께 방학을 맞이했으나, 며칠 연속 학교나 중학생들 꿈을 꾸고 있는 걸 보면 내 무의식은 아직도 중3 담임 안을 헤매고 있는가 보다. 어떻게 하면 내 무의식에게 학년의 종결을 알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괜찮아, 행복해' 삼창이라도 해야 할까?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새해다. 나를 돌아보게 만든 땡땡이는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우연으로라도 만나면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 대문사진은 정은혜 작가 개인전(2022.12.신세계갤러리)에서 찍은 것, 소중한 이들을 그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