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눈사람 속에서 시 읽기

토요일 아침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는 방법

by 조이아

토요일 아침 일곱 시 반? 눈을 의심하며 서점 인스타그램 피드를 다시 읽었다. 12월 토요일 아침, 제목은 '<커피와 함께 아침은 생각한다> 시 윤독회'로, 커피가 맛있는 우리 동네 카페 온도 사장님과의 협업이라고 했다. 애들 자고 있을 때 슝 나와서 시를 읽고 남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모임이라니, 어쩜 이런 생각을 다했을까. 우리 동네 버찌책방 솜씨다. 지금은 서점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없지만(이사 및 공사 중) 그 대신 여기저기로 이동하는 책방으로 활약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반가운 서점을 만날 수 있었던 버찌 님의 신박한 아이디어다. 내가 본 시간이 정말 맞나 다시 피드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버찌 님으로부터 디엠이 왔다. 이 모임 같이 하자고. 이렇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주니 나는 또 신나게 신청을 했다.

토요일 아침 알람을 끄고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둘째가 입고 다니는 큼직한 롱패딩을 걸치고 털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니 나풀나풀 내리는 눈. 우산을 챙길까 하다가 그냥 길을 나섰다. 아직 푸른빛이 감도는 이른 아침이었고, 눈은 살포시 예쁘게도 내렸다. 눈이 내려 사방은 고요하고, 시를 읽으러 가는 내 마음은 설렜다.


노란 불빛을 밝힌 카페에 도착하니 오손도손 둘러앉은 얼굴들.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지만 그저 따사로웠다. 테이블 위엔 시집과 엽서 한 꾸러미, 정체 모를 상자가 하나씩 놓였다. 함께 참여한 책벗님께서 빈속에 커피 마시지 말자며 달콤한 빵을 손수 준비해 주신 것이다. 리본을 열어보니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도 담겼다. 이 환대에 벌써부터 마음이 포근해졌다. 오늘 읽을 시집인 문태준 시인의 <<아침은 생각한다>>를 앞에 두고 서점지기, 카페지기를 포함해 여덟 명이 인사를 나눴다. 이 일을 기획하게 된 이야기는 금세 이 시간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고, 카페지기 님의 커피 이야기로 향긋해졌다. 커피를 맛보고 시집을 들여다보는 간간이 창밖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가붓하게 내리던 눈이 함박눈이 되어 묵직하면서도 밀도 있게 내리고 있었는데, 우리의 시간에 차원적인 깊이를 내어주는 기분이었다. 다른 이들은 침범할 수 없는 어떤 결기 같은 걸 눈이 드리워주는 듯했달까.

표제작인 <아침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아침만이 주는 부산함과 시작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소리 내어 읽고, 그 시에 대해 내가 끌린 부분이라든가 어떤 게 떠올랐는지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시 몇 편을 넘기다가 스르르 사라졌고, 나는 커가는 아들들을 생각하며 <점점 커지는 기쁨을 아느냐>를 골라 읽었다. 팔을 벌리면 내게 달려와 안기던 때가 눈에 선한데, 벌써 나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걷는 일은 눈물겹기도, 눈부시기도 하다. 다른 분들의 시 낭독 또한 그분들의 경험에 나의 느낌이 더해져서 시가 입체적으로 살아나게 해 주었다. 이날 나는 카페 사장님의 성함도, 무산소 커피에 대해서도 처음 들었는데(맛도 보았다!) 카페지기님이 고른 시 <아버지의 잠>을 읽고 이야기를 듣다가 그분의 어떤 마음을 깊이 알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작 몇 줄의 시로도 우리들의 경험은 이렇듯 불려 나오고, 또 타인의 경험을 내가 공감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시 읽기 모임의 매력이 아닐까.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필사하고 나누며 모임을 마쳤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뽀얀 길에 내 발자국을 만들며 걷는 그 길의 고요가 좋았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에서 나보다 앞서 걸어간 사람의 발자국을 보며 그 사람의 안녕을 기원했다. 시를 읽었던 마음을 그냥 접고 싶지가 않아서 오후 내 시집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좋은 시들을 거푸 만났다.


시집에는 이날의 날씨에 맞춤하게 눈에 대한 시가 많았는데 <눈사람 속으로>라는 시는, 딱 시집 읽기 모임에 대한 시 같아서 적어본다.


<눈사람 속으로>


눈이 소복하게 내려 세상이 흰 눈사람 속에 있는 것만 같네 껍질이 뽀얀 새알 속에 있는 것만 같네 맑은 눈의 아이 속에 살게 된 것 같네 나는 눈 위에 시를 적고 그것을 뭉쳐 허공에 던져보네 또 밤에 하얗게 세워둘 요량으로 눈덩이를 점점 크게 굴려 눈사람을 만드네 눈덩이가 커질수록 나는 눈사람 속으로 굴러 들어가네


@문태준,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2


시 하나를 적어 허공에 던지는 일을, 토요일 아침 시간에 하고 왔다. 허공에 던져진 시들은 우리 마음속에, 하얀 눈 속에, 하늘로 땅으로 번졌을 것이다. 어쩌면 커다란 눈사람 속에 우리가 있었던 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눈의 포근함을 온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하루에 대한 소회를, 달달한 곶감과 빵, 힘 있는 커피와 훈훈한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우리에게 새해 인사로 건네고 싶어 기록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