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빼기의 기술-학예회

학예회가 모두의 축제가 되려면 - 파리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by 조이아

연말이면 학교는 바쁘다. 성적처리며 학교생활기록부 점검과 마감, 게다가 큰 행사인 학예회까지. 휴직 직전에 학예회(중학교에선 축제라 부른다.)를 총괄하느라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 전에도 동아리 담당으로 아이들을 연습시키기도 했고, 연극반을 맡아 리허설 커튼콜 때 울컥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무대 위를 누비는 학생들과 열정적으로 관람하는 아이들을 보며, 저런 아이들을 하루종일 교실에 앉혀 놨었다고, 이런 기회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주에 우리집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학예회가 있었다. 교사로서 축제를 준비할 때와 엄마로서 아이들의 학예회를 지켜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은, 큰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해에 학예회 구경 가서 느꼈다. 화려한 무대와 다양한 의상을 갖춰 입고 나타나는 어린이들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을 하다가, 우리 아이가 많은 아이들 틈에서 몸짓을 할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내가 여기서 왜 이러지?' 의아하기도 했다. 감동적인 내용도 아니고, 단순한 동작을 보여주는데도 내 눈에선 눈물이 삐져나오려고 했다. 아직도 어리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거나 노래하는 것이 대견해서 그랬을 것이다. 혹은 아직도 내 곁에 붙어있는 것 같은 아이가, 저 멀리서 나도 모르는 뭔가를 준비해서 보여주는 데에서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 때문일 수도 있다.

저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얼마나 연습을 했을까. 생애 첫 학예회를 준비하는 동안, 큰아이는 아랫입술 아래에 빠알갛게 자국이 나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몇 번이나, 아랫입술을 빨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 그러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아이를 혼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보았다. 아이가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걸.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했던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얼마나 겪었길래 입술 아래에 자국이 생긴 걸까. 나중에 어린이집에서 크게 인화해준 학예회 사진을 보니, 그 빨간 자국이 너무 선명해 마음이 아팠다.



올해 일학년 작은아이는 춤을 추기로 했단다.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무슨 춤인지도 전달을 못한다. 무늬 없는 흰 티에 짙은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알림장을 보고, 그림 있는 흰 옷은 안 될까 고민했다. 다른 일로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온 날, 꼭 무늬가 없어야 하냐고 확인한 후에 아는 언니에게 무늬 없는 흰 티를 빌렸다.

리코더를 분다는 큰아이에게도 몇 번을 의상이 뭐냐고 묻다가, 학예회 전전날에야 흰티에 청바지인 걸 알고 급하게 마트에 갔다. 마음 같아선 집에 있는 밝은 회색옷을 입히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만 다른 옷을 입히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저녁 무렵에 간 마트에는 우리 말고도 흰티를 구입하러 온 가족이 보였고 아동복 코너마다 초등학생 사이즈가 사라져 있어서 세번째로 들른 매장에서야 구할 수 있었다.


학예회 날 작은아이네는 일학년답게 귀여운 춤으로 시선을 끌었다. 여자아이들은 치마를 입고 커다란 리본 머리띠를 해서 예뻤고, 남자아이들은 무늬 없는 하얀 옷에 리본넥타이를 해 돋보였다.

큰아이네 반 또한 하얀옷에 리본을 하나씩 달고는 최신가요 두 곡과 캐롤을 들려주었다. 리코더 합주 소리는 틀린 음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몇몇 학생들은 트라이앵글과 탬버린을 연주했고, 한 명은 심벌즈를 연주하여 조화로웠다. 하지만 나는 저 아이들은 리코더를 잘 못 불어서 저 악기를 연주하나보다 생각했다. 큰아이가 2학기에 리코더를 가지고 다닐 때부터 혼자 음을 틀리면 어떡하나 불안해하던 나였다. 낮은 도 소리를 왜이렇게 못 내는 걸까, "투-투-" 약하게 불어보라고 몇 번이나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학예회 때 세 곡이나 연주를 한대서, 계이름은 외우려나,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종종 리코더 연습 안해도 되냐며 자꾸 귀찮게 굴었던 것이다. 나에겐 이렇게 우리 아이 실력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막상 공연 때 리코더가 아닌 악기를 들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이런 판단이 든 것이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내 마음 속에 우리 아이는 리코더를 불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틀리면 어떻다고 저렇게 다른 악기를 들고 있게 하나 하는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힘껏 박수를 치고 집에 오는 길, 지난 봄 파리에서 작은아이 음악회에 다녀왔던 일이 떠올랐다. 음악회라고 할 것도 없지만 제목은 "음악축제"였던 학교 행사가 있었던 거다.

지금 일학년인 작은아이는 프랑스 학제로 초등학교 첫번째 과정 CP 학년이었다. 음악회가 있기 몇 주전에 알림장에 행사에 대한 안내가 붙어왔다. 우리 구의 시청에서 저녁 6시 15분에 한다고 했다. 아이에게 물으니 무슨 노래를 하는지도, 심지어는 자기가 참가하는 건지도 모르고 있다. 얘가 과연 뭔가를 하기는 하는 걸까, 아이가 불어적응반과 원반을 왔다갔다 하니까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다. 같은 불어적응반에 있는 친구엄마가 이바노(그다음 학년인 CE1 학년)도 참여한다고 해서 하기는 하는가 보다고 온식구가 갔다. 아마 큰아이와 이바노 형 마테오도 다음 학기에는 할 거라고 그러니까 이번은 저학년 학생들의 축제라고 했다. 알림장에 안내된, 준비해야 할 복장은 '선명한 색깔' 상의였다. 흰 옷도 아니고 밝은 옷도 아니고 '선명한' 옷을 준비하라니.


쨍한 파란색 니트를 입혀 시청에 갔더니, 요 며칠 이곳에서 우리 구에 있는 학교마다 축제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우리학교 순서인 것이다. 등하교 때마다 마주치던 두 학년의 가족들이 모였다. 우리아이는 긴장하며 조금 울먹이다가 이바노를 보고 조금 마음을 녹이고, 선생님과 함께 먼저 올라갔다. 입장시간이 되어 커다란 홀로 이어지는 길, 여기저기 학생들의 예술작품이 놓였다. '예술의 봄'이라는 포스터와 함께, 그림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상자로 만든 건물 모형도 있고, 입체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래의 피카소가 자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알록달록하게 인쇄된 음악축제 안내장을 한 장 들고, 큰아이와 우리 부부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청의 홀은 천장부터 근사했다. 무대에는 두 학년의 아이들이 반별로 앉아있는 것 같았다.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의 색색깔 옷을 입고. 그것도 반팔 티, 긴팔 티, 그림이 있는 옷, 남방, 스웨터 등을 다양하게 입고 말이다. 시작 전부터 엄마아빠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 혹은 비디오를 찍는 걸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부모들과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시작을 알렸고, 일어나 대기하던 아이들은 음악선생님의 지휘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했다. 그냥 그대로 일어나서. 그러니까 우리나라처럼 대열을 맞추고 이런 게 없던 거다. 게다가 아이들 또한 전혀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노래를 모르는 것 같았고, 그것은 이바노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아이들은 몸을 흔들어가며 노래를 목청껏 불렀으며, 또 어떤 아이는 마네킹처럼 서서 입을 뻐끔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너무도 흐뭇한 눈빛으로 보고들 있는 거다. 한 반이 일어나서 한 곡을 부르면, 다른 반은 앉아 있는 식으로 노래가 이어졌다. 우리 아이는 입을 움직였던가 말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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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의자가 놓여있지 않은 뒤쪽 공간에서 다같이 춤을 추는 순서가 이어졌다. 부모들도 섞여서. 강강술래처럼 동그랗게 몇 개의 동그라미가 만들어졌고, 담임 선생님을 선두로 그를 따라하는 간단한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돌았다. 나도 작은아이와 짝이 되어 신나게 움직였다. 음악은 아프리카 민속음악 같은 게 나왔다가, 아시아 풍의 음악도 나왔고 두 세 곡이 이어졌던 것 같다. 내 뒤에 루이랑 루이 어머니랑도 인사하고 웃으며 즐기는 시간.


이런 축제가 있다니 나는 너무 신선했다. 합창 공연에서 누가 노래를 하건 말건, 다른 데를 쳐다보건 어떤 옷을 입고 왔건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누가 잘 하고 말고는 말할 것도 없다. 선생님들이 전혀 거리낌없이 춤을 추셨다는 것 또한 내게는 충격이었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유치원에서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며 춤을 추시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이렇게 학부모와 함께 춤추며 어울리는 기회를 우리나라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분들은 충분히 편안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여기 선생님들도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들이다. 학부모가 있건 없건 아이를 단호하게 혼내는 모습을, 영화관과 체육관 갈 때의 동반 학부모로 몇 차례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우리아이처럼 노래를 모르는 아이를 가만히 뒀을까, 이 공연을 위해 아이들에게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음이 분명하다며 재잘댔다.


열심히 준비해서 완벽을 기해 내보여야 하는 공연과 공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장. 잘 해야 칭찬 받는 것과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박수를 받는 것의 차이가 분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다시 학부모의 입장에 섰을 때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입을 옷부터 신경이 쓰였고, 우리 아이가 남들보다 못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내가 못 마땅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아이가 연습하느라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아이가 학예회 즈음에 초저녁부터 하품을 해대는 걸 보고 춤연습을 많이 하나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예민한 편인 큰아이는 틀리지 않으려고 또 얼마나 마음 썼을까. 교사로서 축제를 준비할 때는 또 어떠한가. 아이들에게 이 상태로 무대에 올라갈 순 없다며 연습에 연습을 더하게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왜 과정 자체를 즐기지 못했을까 반성했다. 학예회, 보여주기를 위한 행사 말고 진정한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학교에서는 다양한 것을 배운다. 교과과정 내에서도 배우고, 교육과정 중에서도 배우며 계획되지 않은 것들도 배운다. 우리 교육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아이들에게 꾸역꾸역 가르치느라, '무엇이든 괜찮다. 어떻게든 괜찮다'는 마음은 전혀 못 전하고 있지는 않을까. 김하나의 <힘빼기의 기술>을 읽었다. 부산사투리로 '만다꼬'의 정신이 담겨있는 그의 글을 읽으며, '힘내'라는 응원이 얼마나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지 힘차게 고개 끄덕였다. '잘 해, 힘내'가 아니라 '괜찮아, 안 되면 말고. 뭐 어때, 힘 빼고 해' 의 말을 건네는 다른 방식의 응원을 우리 학생들은 알고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힘빼기의 기술'을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교사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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