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오늘 뭐 입지?>, Ecriveur
아직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헤매고 있다.
요며칠 <패션으로 힐링하려면?> 최유리 님 브런치 글에 빠져 읽다가, 블로그도 읽고, 유튜브도 시청했다. 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내 옷장엔 어떤 옷이 있었나 점검도 해보고 버릴 옷도 내다놨다. 어제는 그분 책<오늘 뭐 입지?>를 빌려와서 새벽까지 흥미롭게 읽었다. '그래, 맞아, 그래서 이상했구나' 혼자 동감하며 읽고 보면서, 뭔가 감이 잡힌 것도 같고, 앞으로의 의생활이 기대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장 이번주 토요일 약속에 무엇을 입고 갈 것이냐가 너무 고민이 되는 거다. 더불어 이런 걸로 고민하는 내가 마음에 안 들면서 우울까지 한 거다.
토요일(정신을 추스리고 보니 또 하루가 가고 벌써 내일이 되었다.), 대학 때 소모임 친구들과 선배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무슨 옷을 입고 갈까. 그깟 옷이 뭐라고. 나는 어떤 인간이길래 또 이다지도 무슨 옷을 입는지에 헐떡대는 것일까. 이런 내가 마음에 안드는데,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신경 쓰인다. 멋냈다는 티를 내긴 싫고, 너무 편안하게 가는 것도 싫다. 이런 마음을 어찌 해야 하나. 이것은 발행할 수 없는 글.
최유리 님의 글에 따르면, 오랜만에 예전 사람들을 만날 경우 보통 명품을 차려 입고 나가 자신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단다. 자신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읽으면서는 사람들의 심리가 다 그렇구나 이해가 되면서, '그래서 내가 명품 자랑하는 사람 안 좋아하지' 하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며 넘어갔다. 그런데 정말 십 년만에 만나는 사람들 앞에 내 모습이 신경 쓰이는 이 모순 덩어리를 어쩌면 좋을까.
그동안의 옷에 대한 마음가짐을 돌아본다. 혈액형별 성격유형에서 잊혀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AB형은 자신의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다는 것. 어쩜 나랑 똑같나. 교복을 벗고 대학생이 되어서 그 기분을 알았다.
초임교사였을 때 백화점에서 옷을 사댔고, 옷 입는 게 재미있었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했던 적이 있다. 2년 후, 완전 미인의 신규교사가 왔을 때 나의 시대가 갔음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젊으면 다 예쁜 거 아닌가.(그분은 정말 예뻤다!)
아이를 낳고 나서 한동안 무슨 옷을 사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기간이 있었다. 임신 기간을 거치고, 집에서 편하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아이를 돌보았으니 감이 떨어졌나 싶었다. 또 최유리님이 그러셨듯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내게 돈을 쓰면 안 될 것 같았다. 금세 복직을 하고 예전 옷(체형 변화로 다 입을 순 없었다.)과 그전에 입던 브랜드가 아닌 좀더 저렴한 브랜드의 옷들을 입었던 것 같다. 그당시의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든다. 체형 뿐만 아니라 아이 엄마라는 정체성이 추가된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을 거라 이제야 짐작해 본다.
지역을 옮기며 휴직을 원했지만, 엄한 관리자와 지역 분위기 탓에 그러지 못했다. 3월이 오기 전 어느 날, 그 좌절을 아이 둘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한 매장에서 추천해주는 옷들을 마구 사는 것으로 풀었다. 서울에서 온 멋쟁이(혼자만의 착각)라는 허울로 과한 업무와 달라진 지역 분위기의 힘든 시기를 버텼던 것 같다.
휴직 생활은 휴직자의 옷이 따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했다. 매일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을 수는 없었으므로.
이민가방 네 개를 가지고 간 네 식구의 파리 거주 때에는, '추우니까 옷이 필요해', '파리에서 쇼핑 해두면 좋잖아?'하면서 쇼핑몰이나 백화점을 자주 거닐었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으므로(아, 현재형인데) 나는 어떤 사람인가, 과연 이 옷은 어디에서 입을 것인가를 되뇌며 옷들을 스캔했는데 그때 정말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를 스스로에게 많이 물었다. 내가 이렇게 소비해도 되는가 하는 자책과 함께. 파리에서 건진 것이 있다면, 내가 초록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전까지는 온통 상의는 흰색, 그밖에 회색이나 무난한 색의 어떤 것을 샀던 것 같다. 가장 코디하기 편해서였을 거다. 개성만점의 파리 사람들을 보면서, 실패하지 않을 색깔만 고집하던 내가 다른 색(그것도 쨍한 초록)을 발견했다는 것이 내겐 기쁘다.
휴직 때에는 휴직자에 맞는 옷이 필요했고, 이제 복직을 앞두고는 또 뭔가가 필요한 기분이다. 또 이렇게 몇 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은가. 너무 교사다운 건 원래부터 싫어했고, 너무 튀는 것도 이제는 싫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자유롭고 싶고 나만의 개성이 드러났으면 좋겠다. 하긴 머리스타일부터 다르긴 하다.(컷트 머리가 내게 왜 어울리는지 최유리 님 글 보고 알았다. 약간의 흐트러짐과, 반대의 아름다움. 어, 뭐 얼굴이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여성스러움을 중화해주는 것 같다. 정말 나의 시그니처로 해야겠다.) 파리지엔의 시크함도 갖고 싶고 <패션으로 힐링하려면?>의 서두에서 말씀해주시는 것처럼, 멋을 낸 것이 아니라 멋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최유리 작가님이 정체성을 들여다볼 때 사용하시는 도구는 에니어그램이다. 예전에 연수 때 받아본 자료를 뒤져서 찾아보니, 10년 전의 검사지에서 나는 7번 축제형 인간으로 나온다. 열정적인 사람. 땅(현실)에 발을 안 붙이고 있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정말 그런가? 설명을 읽어보아도 내 모습이라는 확신이 안 든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젠 다를 것 같아서 검사지를 출력해 찬찬히 체크해보았다. 4번 개인주의자. 예술가 형. 남들과 다르고 싶고, 그치만 그게 너무 튀면 꺼려지는 내 모습이 정말 맞는 것 같다. 개인주의자에 탐구자의 날개를 가졌나 보다. '보헤미안'이라 나온다.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나는 누구인가?'를 답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별칭을 지어 보라는 패션힐러 최유리 님. 아직도 나를 알아가고 있는 나는, 나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내가 계속 해온 일이 뭘까를 떠올리자, 늘 다이어리를 옆에 두고 사는 게 나란 결론이 났다. 일기 쓰는 사람, 돌아보고, 계획하고 그런데 그게 뭐? 그러자 곧 나는 또 편지를 쓰는 사람이라는 게 선명해졌다. 관계에 있어서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인데, 가끔(이라고 하기엔 너무 빈도가 낮지만) 편지를 쓰곤 한다. 일 년에 몇 번이라도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줄줄 할 얘기가 쏟아진다. 최근에는 편지 참 잘 쓴다 스스로 감탄하다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쓴 적도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편지. 그러고보니 남편에게 결혼기념일마다 편지를 주고 받자고 했는데, 한 삼 년 안 썼다. (작년 봄, 나 혼자 여행하게 해준 남편에게 엽서 한 장을 썼던 게 이제야 기억난다. ㅎㅎ) 어쨌거나 나는 편지 쓰기를 즐긴다. 편지 쓰는 사람 앞에 수식어로는 무엇이 적당할까. 그건 더 고민해 봐야겠다.
내일의 약속을 앞두고 내가 한 일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건넬 엽서를 고른 거다. (더이상 옷장 앞에서 고민하지 ....않을 순 없고, 그냥 정했다. 겨울내 벗고 다닌 건 아니니까.) 작년에 파리에서, 브뤼셀에서, 콜마르에서 고른 엽서들을 한 사람씩 생각하며 골랐다. 그림과 그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밀레의 이 그림은 별들이 희망을 주니까 육아에 지쳐있을 친구에게, 이 아이들 그림은 늘 단정한 아름다움이 연상되는 친구에게, 이 황금빛 숲 그림은 조금 외로워보였던 언니에게 함께 걷자는 이야기를 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 마그리트 미술관에서 그 친구를 떠올리며 고른 엽서도 이번 기회에 써야지. 여럿이 만나는 자리라서 못할 말, 그러나 그 사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 나만 볼 수 있었던 그 사람에 대한 인상과 나만 할 수 있는 덕담을 건네고 싶다.
지난 여름 만났던 친구에게는 연하장 겸 카드로 보내야겠다고, 지난 겨울 아니 벌써 재작년 겨울 생제르맹데프레의 크리스마스시장에서 샀던 카드도 고른다. 빨간색이 그 친구에게 힘을 줄 것 같다. 우뚝 서 있는 에펠탑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젯밤, 불어 숙제를 끄적거리다가 "Ecriveur"라는 단어를 알았다. "편지 쓰기 좋아하는 사람"이란다. '쓰다(Ecrire)'라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로는 '작가(Ecrivain)'만 있는 줄 알았는데 "Ecriveur"라니 마음에 쏙 드는 단어다. 언젠가는 작가가 되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감히 못 쓰는 단어 '작가'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서다.
'편지 쓰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불어 단어를 일기장에 써 두고, 친구들에게 전할 말들을 미리 써 보았다. 이제 나는 마음에 드는 펜을 쥐고 그들에게 또박또박 내 이야기를 건네려 한다. 옷차림이 아니라 내 자유분방한 글씨와 감성으로 나를 표현해 보겠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는 건 우리가 만났을 때의 옷차림이 아닌, 그 사람의 인상일 것이다. 만남을 앞두고 준비한 내 엽서가 내일도, 소중한 그 사람들의 미래에도 그들에게 행복을 주기 바란다.
2019년 1월 18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