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꿔오던 독서모임이 결성되다
독서모임을 꿈꿨다. 내가 꿈꾸는 독서모임은 마음에 드는 친구들과 관심분야의 책을 읽고 나누는 것. 심리 상담과 페미니즘과 좋아하는 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을 같이 읽고, 공유하고 공감한다면 참 행복할 텐데.
이번 여름 친구랑 둘이 "트레바리 대표가 나오던 <책, 이게 뭐라고> 들었어? 우리도 한번 도전해볼까? 나는 서울 사는 것도 아닌데 과연 가능할까? 한 달에 한 번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 나눈 것만으로도 행복할 만큼 난 소박했다. 그렇게 둘이서는 책을 추천하고 바꿔 읽기도 하니까 다른 모임이 없더라도 괜찮다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꿈 자체만으로도 기쁘던 그 일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동네 언니(큰아이 친구 엄마이자 고등학교 수학 교사, e 언니라 쓰겠다.)가 김장했다고 겉절이를 주시겠단다. 이 언니와의 인연으로 알게 된 동네 언니(두 분 다 이니셜로 'e'인데 더 큰언니이므로, E 언니라 쓰겠다.)도 김치를 받을 겸 커피 한 잔 하러 오시라 하고, 어쩔 수 없이 두 분의 혹인 아이들도 다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일요일 오후의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집에 우리 남자아이 둘과 외동아들 하나와 또 다른 형제, 이렇게 남자아이들 다섯이 있게 된 거다. 남자아이 다섯이 내뿜는 에너지로 정신이 없어서 나는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저 아이들을 등지고 앉았어야 했는데 나는 왜 저들을 보고 있나 후회하다가 보드게임과 함께 그들을 모두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서, 세 엄마는 소통이 가능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주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그러다가 e 언니가 독서모임을 하면 어떻겠냐고 대뜸 말씀하시는 거다. 아무래도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중요한 건 독서요, 자신의 주체적 생각이란 데에 이르러서였으리라. 팔랑귀이자 책 읽기를 좋아하고 독서모임을 사모하던 나는 무조건, 그다음 말은 기다리지도 않고 "좋아요!"를 외쳤고, E 언니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E 언니는 과연 아이들이 집중하여 모임이란 것을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한 것 같다.
새내기 교사였을 때 백화현 선생님께서 거쳐간 학교에 내가 뒤이어 근무하게 되며 얼굴을 뵈었던 인연이 있다. 당시에도 독서운동을 전개하셔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근무지에서도 선생님이 떠나신 자리에 가게 되었고, 한 학부모님께서 그 선생님이 쓰신 <책으로 크는 아이들>을 선물해주셔서 선생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 그러니까 중학생 때부터 아들과 아들친구와 함께 독서모임을 한 7년 간의 경험을 담은 책이었다. 그때 우리 아이는 갓난아기였으므로 나는 막연하게 나중에 이런 거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게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종종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선생님 소식을 듣기도 했고, 재작년엔가는 구독하던 시사인에서 선생님의 강연 소식도 들었다. 기사를 읽고 또 최근엔 <잠 못드는 초등부모를 위하여>(사교육걱정없는세상)라는 그 강연 책을 읽으면서, 책모임은 아이와 하든 동료와 하든 나의 성장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독서모임에 나는 무조건 찬성이라는 강력한 반응과 함께,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왔다며 올해 읽은 책 리스트를 적어둔 다이어리를 펼쳐서 언니들에게 보였다. 그리고 실은 내가 학교에서 하는 독서교육도 이런 것이라며 재잘댔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꽤 강력하게 어필을 한 것이다. 결국 E 언니는, 일곱 살짜리 둘째 아이도 요즘 책을 곧잘 읽는다며 긍정의 반응을 보였고, 나는 우리 집 둘째는 책 읽기를 안 좋아해서 큰일이라며 함께 해야 함을 부추겼다. 그래서 우리는 일곱 살, 여덟 살, 열 살, 열한 살, 삼십 대 후반과 사십 대를 아우르는 독서모임을 결성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선뜻 고르지 않을 책들이지만, 읽으면 좋고 생각할 거리를 주는 고전을 함께 읽기로 했다. 어린아이들은 아이대로 동화나 짧은 동영상으로, 초등학생들은 그 수준의 책으로, 어른들은 어린이책을 함께 읽거나 혹은 어른용 책으로 같은 책을 다루기로 했다. 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시리즈를 기본으로 꼭 해당 출판사가 아니더라도 읽고 오기로 했다. 부담 없이 한 달에 한 번. 오래도록 꾸준히 가면 좋겠다고 나는 세네 번은 말한 것 같다.
강력하게 책모임을 어필한 나는 이제 그 모임의 주관자가 되었다. 그날 밤에는 흥분이 되어서 잠도 안 왔다. '모임 이름은 뭘로 하지? 작은 아이들은 장면화 그리기를 할까? 모임 이름하고 책 제목은 벽에 붙여놔야겠다. 작가 이름도 빼놓아선 안돼, 작가 이름이라도 아는 게 어디야. 과연 아이들이 조용히 있을 수 있을까? 자기 차례에 말하도록 해야지. 모두가 존댓말을 하는 게 좋겠어. 어떤 규칙이 필요할까. 첫 시간을 잘해야 그다음도 편할 텐데. 시간은 한 시간이면 될까. 핵심 질문이라고 할까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딱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래도 줄거리는 다뤄야 할 텐데. ' 온갖 생각이 두서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그 첫 모임이 두 주 남았다. 아이들 시험이 오늘이어서 오늘만 지나면, 아이들과 책을 읽어야겠다 생각해오던 차였다. 내 옆에는 우리 큰아이가 정한 책 <걸리버 여행기>가 있다. 원래는 어른용(?)의 소설이었다는 걸 어제야 처음 알았다. 내일은 도서관에서 다양한 <걸리버 이야기>를 둘러보고, 독서모임에 대한 책도 찾아보려고 한다.
뒤죽박죽 연령대와 남자아이들로 구성된 모임이 과연 어떻게 굴러갈까. 우리 아이들이 쉬운 아이들이 아니라 걱정이 많다.(잘못 썼다. 쉬운 아이란 없다.) 사회성을 걱정하던 아이, 여려서 불안한 아이, 너무 나서서 걱정인 아이, 아니 온갖 걱정을 하던 엄마들이 이렇게 모였다. '동생이니까 여기서도 주도권을 잡으려 하진 않겠지.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이 아이 생각도 자라겠지. 아무래도 독서논술을 하던 아이니까 주제에서 벗어날 아이들을 잡아주겠지. 내가 너무 감성적으로 흐를 때 언니가 잡아주겠지.' 혼자 걱정하다가 스스로 위안을 찾다가, 내 마음속에선 이러쿵저러쿵 대화가 이어졌다.
첫 학교에서 국어 선생님들과 하던 독서모임이 떠오른다. 그때 썼던 공책을 찾아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다음 학교 독서모임에서는 시네큐브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학교를 옮기는 게 어찌나 아쉬웠던지. 내가 떠나고 난 학교에 내 친구가 가서 했다던 독서모임은 어땠을까. 배울 게 많던 선생님들과의 다양한 주제를 다룬 독서경험이 엄청 부러웠는데. 그러고 보니 최근에도 학교 실적을 위해 독서모임을 만들기도 했었다. 이래저래 학생들과 하던 동아리도 일종의 독서모임이었겠지? 아이들은 그때를 어떻게 기억할까. 떠올려보니 많은 독서모임에 소속되어 있었다. 또 앞으로도 그럴테고. 이런 다양한 경험들을 토대로 나는 즐겁게 독서모임을 꾸려나가 보련다. 주체로서.
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경험, 설렌다.
201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