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팬
요조의 최근 앨범 <이름들>을 즐겨 듣던 중 오랜만에 본 EBS ‘스페이스 공감’ 요조 편이 인상적이어서 노래가 더 좋아졌다. 방송을 통해 가사를 눈여겨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가사가 시적으로 느껴지는 게, 요조 작가가 시집을 즐겨 읽어서 가사도 글도 잘 쓰는구나 싶기도 하고. 푹 빠져서 들었다.
새 앨범 첫곡인 <Tommy>가 누구인지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뮤직비디오 <Unknown horses>에서 아는 얼굴에는 양다솔 작가, 포도밭 출판사 사장님뿐이었는데 그중 한 인물인 한기명 님을 스페이스 공감에서 보게 된 것이다. 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기명 님은 어렸을 때 왼쪽 뇌를 다친 후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오른팔과 지내는데, 그 오른팔에게 인격을 부여해 '토미'라 부른다고 한다. 이분과 한겨레 토요판 '요즘은'에서 인터뷰를 한 요조 님이 토미 이야기를 듣고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얘길 했었는데 지금 찾아보니 2019년 3월 기사다. 그 약속이 정말로 이렇게 노래로 만들어졌다니 아름답다.
중학교 2학년 학생들 앞에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소개했다. 그냥 소개한 건 아니었다. 문학 시간, 작품 속 말하는 이를 공부하려고 교과서 속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을 골라본 것이다. 노래 하나와 시 하나를 골랐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라니까 집중해 주었다. 노래를 들려주겠다 해놓고 노래 말고 토미를 소개하는 부분부터 보여주었다. 한기명 님이 등장할 때 아이들의 표정을 살폈다. 웃기는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음악은 나도 아이들도 편안하게 감상했다. 가사도 무척 좋다.
‘하루종일 내 멋대로 군다고 넌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난 그저 너와 함께 하늘을 마음껏 날아 보고 싶어 나는 너 너는 나 난 너의 날개인 걸’
아이들과 공책에 표를 그리고 작품 제목, 창작자, 말하는 이, 나의 감상을 적자고 했다. 말하는 이가 토미라서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적도록 했다.
그다음으로 내가 골라간 시는 오은 시인의 <나는 오늘>이었다. 일부러 재수 작가와 협업한 만화의 장면을 보여주었다. ‘나는 오늘 무엇’으로 한 연이 시작하는 시이다.
1연의 토마토는 우영우 드라마 속에 등장한 단어라 더 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온통 나로 꽉 찬 나로 시작하여 마지막 연에서도 토마토이지만, 너를 보는 나로 끝나는 시라서 더 좋다.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이 가장 좋은지 밑줄을 긋게 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연은 대다수가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는 시구가 쓰인 일요일이지만, 때로는 그림자가 마음에 든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림자처럼 후회가 자기를 따라다닌 하루가 있었단다. 나는 일기인으로서 ‘종이’가 마음에 들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줄 사람이 절실했다’는 외로운 마음이 공감되었고 그때 위로가 되는 것은 쓰기 혹은 글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에서 마음에 드는 화자에 대해서도 표를 채우도록 하고 오늘 내 마음에 대해 1분 쓰기를 했다. 그러고는 오은 시인의 <나는 오늘>을 패러디하여 자기 마음은 오늘 무엇인지 정해보자고 했다. 화자를 자기 마음에 따라 설정해 본 것이다. 그랬더니 다양한 마음의 형태가 등장했다. 졸리기만 한 ‘나무늘보’, 기분 좋은 ‘아이스크림’, 정해진 시간표 대로 움직이는 ‘시계’도 있었고,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막막한 심경을 표현한 ‘검은 바다’도 있었다. ‘토미’처럼 신체의 일부가 화자가 될 수도 있다, ‘일요일’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말할 수도 있다고 미리 안내했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동물이나 자연물로 자기 마음을 표현했다. 짝끼리 서로의 시를 읽어보고 발표해 보았다.
오늘 나는 닭
날개는 있지만
푸드덕거리기만 하고 날지는 못하는 답답한 나
오늘 나는 먼지
아무 생각 없이
정처 없이 떠돌고 싶다
저런 시는 너무도 공감이 되어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표현이 된다. 친구를 좋아하는 나, 학교에서 지루한 나 등 자신의 어떤 모습이든 표현하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예뻤다. 화자를 공부한다는 학습목표보다는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꼭 주고 싶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글이 단 세 줄 뿐이어도, 그 문장은 다른 어떤 글보다 중요할 것이다. 오은 시인의 <나는 오늘>이 있어 아이들은 조금은 수월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몇 주 후 공책을 검사하다가 아래 시를 읽고 놀랐다.
나는 오늘 지구
힘들게 어제를 움직였지만
오늘도 내 안의 존재를 위해
오늘을 움직인다
이렇게 커다란 생각을 해내는 중학생 앞에서 나는 고작 외로운 마음을 얘기해댔던 걸까 부끄러우면서도, 이런 아이디어로 나를 기쁘게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나는 학생들을 다시 보게 된다. 국어시간의 별칭을 우주국어로 하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국어시간의 풍경을,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시로 그려나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가닿아 자신의 마음속 풍경을 고요히 응시하기를, 자신의 마음결을 스스로 보듬어주기를. 어쩌다 보니 한겨레 토요판의 요조, 오은 두 사람이 만든 시간이 되었네. 5월에 한 수업을 이제야 기록한다.
@ 요조, <Tommy>
@ 오은X재수, <마음의 일>, 창비
@ 사진은 2023 서울국제도서전 문학과지성사 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