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소거된 중학생 마음 읽기
중학생의 특유의 포스를 아는가? 어른이 말을 해도 대답이 없다. 표정을 살펴도 안 듣는 듯하다. 그에게서 나오는 표현이 곱지 않다. 이 아이들의 특징에 ‘음 소거‘라는 단어를 붙여본다.
일 년 전의 일이다. 수필 쓰기 수행평가 채점을 하다가 빵 터졌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한 글이었는데 자신은 영상을 볼 때 '음속어'를 하면서 본다는 것이다. 음속어라니, 분명히 '음 소거'를 의미하고 쓴 단어일 게다. 대학에서 과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중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자에게는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음속? 빛의 속도라는 것인가? 속어? 비속어의 속된 말을 가리키나? 음속어라는 단어를 어떻게 썼을까 상상했지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이해가 되기는 했다. 우리 둘째 아들의 듣기 실력에 대해서라면 '김어준'을 '김호준'으로, '음료수'를 '움유수'로, '외숙모'를 '왜승모'로 쓰던 아이니까. 열 살짜리 어린이의 눈높이였다. 그런데 우리 중학생이 음 소거를 음속어로 들었구나. 평가지에 화살표와 함께 '음 소거'라 써주고 잊고 지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중학생들은 음 소거를 자체적으로 실행하는 것 같다고 실감한다. 중3 담임이던 작년보다 중2를 맡고 있는 올해 더 그렇다. 전자칠판으로 수업을 하며 교과서 PDF를 띄워 놓고 아이들과 함께 밑줄을 긋고, 필기를 한다. 간혹 덜 쓴 아이들을 위해 화면을 그대로 둔 채 다음 활동을 시작할 때가 있다.
"이제 2번 물음에 답해 봅시다. 읽고 써보세요."
지시를 했으나 교과서 해당 문제를 들여다본다거나, 펜을 들고 글을 써나가는 학생이 드물다.
"그다음 문제예요, 읽고 풀어봅시다."
재차 말해도 그렇다. 화면을 그다음 활동으로 올리자, 그제야 화면을 보고 자기 교과서로 시선을 돌려 손을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내가 하는 말은 안 들리고, 저 앞만 보고 있구나.
바야흐로 영상물의 시대다. 엄청나게 많은 시청각 자료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아이들의 휴식 시간, 몸은 편한 자세이지만 엄지손가락과 눈동자는 바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요즈음 영상물의 특징이라고 하면 자막이 있다는 것. 외국어로 된 영상이 아니어도 그렇고, 한국 드라마도 자막을 켜서 보면 훨씬 이해가 쉽다. 학생들은 영상을 보면서 늘 오디오를 병행하지 못할 것이다. 학원 차를 기다리면서, 그 차 안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음량을 줄여놓고 화면만 보는 일이 잦은 학생들. 그들은 수업 시간에도 시각을 이용해 수업활동을 따라온다. 늘 강조하는 것이 우리가 주인이 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온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듣는 다양한 교과목의 수업시간, 집중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를 자체적으로 차단하고 영상에 집중하는 스킬을 알게 모르게 연마하고 있는 것 같다. 국어 시간에 공부하는 기능에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있다. 보기, 읽기에만 익숙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이른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특징이 있다면, 주의 깊게 듣기를 실천한다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가 하면 중학생들은 속에 있는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엉뚱한 방향으로 뾰족한 말을 내뱉기 일쑤이다. 황당한 언행으로 사고를 치는 학생 가운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때가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기의 특징인 전두엽의 발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두뇌가 공사 중이라는 표현은 정말 그럴듯하다. 툭툭 튀어나오는 자기 속마음을 내리누르느라 어쩌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도 음 소거를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어른 앞에서 다 내뱉지 못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자유로이 자기의 말을 하면서도, 학교라는 사회화 과정을 겪으며 매사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걸 배우게 된다. 중학교 1학년만 해도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을 쪼르르 찾아와 재잘대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그런 일은 드물어진다는 걸 안다. 우리는 어쩌면 자라는 내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말을 가려하는 일을 배워나가는 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은 그 과도기에서 꼭 해야 할 말도 표현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상황이 아닌데도 말하거나 해서 문제를 만든다. 부모 앞에서 입을 꾹 다무는 일도 그 와중에는 생기고, 전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전해 친구 사이를 틀어지게 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자기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나를 표현하는 일의 귀함을 모른 척하며 지내진 않을까.
어른들의 말을 속으로 차단하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불거져 나오는 말을 억누르는 아이들-음 소거된 중학생에게, 나는 꼭 필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하고 싶다. 그게 귀를 통한 듣기를 통해서든,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마음 읽기를 통해서든 소거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읽고 싶다. 국어시간에 할 수 있는 가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 사진은 임진아 2023년 일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