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습서에는 안 나오는, 소설을 읽는 즐거움

수에 약한 국어교사의 소설 속 숫자 얘기

by 조이아

성석제 작가님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는 주인공 둘이 숫자 0과 1로 표현된다. 첫 국어시간부터 나는 숫자에 약하고 싫어하노라 선언했던 나여서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 앞에서 울상을 지었다.

"선생님이 싫어하는 게 나와."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눈을 똥그랗게 뜨고 글을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학생들에게, 작가는 왜 하필 숫자 0과 1로 인물을 표현했을까 물었다. 이런 건 자습서에 안 나온다며 물었더니 난감해하는 아이들.

"이름이 ‘영’이고 ‘일’이라서요."

하는 귀여운 반응과

"귀찮아서요. 짧게 쓸 수 있어서요."

와 같은 짐작도 있었지만

"0은 가진 게 없고, 1은 다 가진 부자여서요."

하는 대답, 더 나아가

"0은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 시작해서요."

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1은 다른 숫자와 있으면 가장 작은 수이지만, 0과 같이 있으면 없음과 있음의 대조를 이루는 수이다. 집안의 경제력과 든든한 가족을 가진 1과 다르게 0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며, 아버지에게 그림을 재능으로 물려받은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초등학교 4학년 사생대회에서 장원을 받아 전교생 앞에서 상장과 상품을 받았던 0은, 나중에야 장원 수상작이 자기 그림이 아닌 번호를 잘못 쓴 1의 그림임을 알게 된다. 1은 그깟 장원 상 정도는 안 받아도 될 만큼 자신의 삶 전부가 상이다. 1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0은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증명하며 어떤 그림이든 최선을 다한다. 결국 0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지만 그의 마음은 늘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느라 편안하지가 않다. 한편 1은 판사 남편에 아이들도 잘 자랐고 자신은 전시회에 다니며 여유를 한껏 즐긴다. 나로서는 너무 부러운 생활이다.

숫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활동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이런 게 너무 재미있다고, 여러분도 재밌지 않냐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작가가 숫자로 인물을 표현한 것처럼, 자신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떤 수일까 생각해 보라고 했다.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의미를 떠올려 보자고 말이다. 아이들은 0과 1의 의미를 물었을 때처럼 당황했지만 금방 재치 있는 대답을 들려줬다.

"3이요, 그냥 안정감을 주는 숫자라서요."

"7이요, 행운의 수니까요."

너무도 순한 인상의 학생이

"18이요."

하고 답한다. 왜냐고 물으니,

"그냥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네요."

어떤 학생은

"9요. 1만 더하면 10이라서요."

"맞아요, 3학년 되면 읽게 될 글 중에 9에 얽힌 글이 있어요."

하고 안내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글인데 중학생 마음에도 그 지혜가 담겨있구나.

"1이요, 1인자, 1등!"

"무한대요, 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5요, 생일이 5월이라서."

"10000이요. 그냥요."

돈을 연상케 하는 숫자다.

어떤 반 반장이

"3.141592"

어쩌고를 말하길래,

"아니 왜?"

하고 역정을 냈다.

"아름다운 숫자라서요."

파이송이 연상되면서 과연 그렇다고 끄덕였다.

우리 반의 수학 좋아하는 학생은 열심히 공식을 써댔다. 도대체 왜 이것을 쓰고 있느냐 물었더니

"잠깐만요, 틀린 것 같아요." 하면서 지웠다 다시 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리미트, 인테그랄, 분수에 난리가 났다. 왜 이러는 것이냐고 괴로워하며 내가 묻자, 아이가 답한다.

"복잡한 걸 간단하게 할 수 있어서요."

아니 간단한 걸 복잡하게 쓴 게 아니고? 알 수 없는 정신세계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수학사랑은 인정했다.

소설 속 서술자와 시점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설을 통해 생각하는 기회, 자신에 대해서도 탐색하는 기회를 가지는 게 나는 너무 재미있다. 아이들이 이런 활동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저녁에 과일을 먹다가 남편에게 소설 속 0과 1을 얘기하며, 당신은 어떤 숫자로 자신을 표현하겠느냐 물었더니 99란다. 왜?

"1만 더하면 완벽하게 100점이니까 100점을 향해 노력하려고."

한다. 오, 100점 남편이 되겠다는 것인가 생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부자인 1만 있으면 딱인데!"

성석제 작가님 소설 속 1을 나만 부러워한 게 아니었나 보다. 부자 1이 곁에 없어서 무척 서운한 밤이다.


@ 성석제,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창비

@ 사진은 살구가 떨어져서 0이 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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