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거리를 다르게 감각하게 하는 술
한동안 합정역으로 놀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학교 끝나면 일없이 가서 합주실에 눌러앉아 거기를 운영하는 분하고 놀았다. 집에 가는 길, 합정역으로 향하면 늘 눈에 띄는 간판이 있었다. ‘축지법과 비행술’ 저기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일까 너무나 궁금했다. 축지법은 거리를 단축시키는 것일 텐데 다시 말하면 시간을 줄이는 것이기도 할 테다. 그런데 술이야말로 시간을 멋대로 홀리는 게 아닌가.
대학 때 술을 마신 기억이 많기는 하지만 취할 정도로 마신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기억의 왜곡일 수 있다.) 전공 친구들 넷이서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물론 우리 넷은 늘 붙어 다니므로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하우스와인을 한다거나 맥주를 마신다거나 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신촌까지 가서, (그 말인즉슨, 우리 학교 앞에는 별로 없었던 술집을 향해 술을 목적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좀처럼 없는 일인, 소주를 마셨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아주 특별한 기억이다. 어둡고 조명이 멋졌던 곳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집으로 왔다. 지하철 2호선으로 귀가 시 마을버스를 타면 종점인 우리 집은 20분은 걸리는데, 그날은 마을버스를 타고 이상하게도 금세 집에 도착한 것 같다. 시간이 단축되던 경험이었다! 또 하나 그날의 새로운 경험은, 이상하게도 제삼자의 눈으로 어떤 장면 장면이 드문드문 떠오르던 것? 사람 없는 마을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어쩌면 서럽게 울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는 거? 욕실 바닥이 올라오는 것 같아 놀라다가 눈을 질끈 감았던 그런 띄엄띄엄한 기억이 있다. 어쩜 그때의 나는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좀 적적했었나. 그 적적함을 술은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달래주었다.
시간이 무섭게 느껴지던 때도 술 때문이었다. 내가 보내야 할 하루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 9시간 동안 운전해서 가야 할 거리로 막막하게 다가왔던 일이 있다. 둘이 겨우 와인 한 병이었다. 그것도 다 비우지 못했다. 니스의 호텔에서였다. 내 옆엔 잠든 아들들. 남편은 이틀 전 혼자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갔고, 저쪽 방엔 단봉이가 자고 있겠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간단히 조식을 먹고 파리로 갈 차비를 마쳤다. 니스에서 파리까지 긴 자동차 여행길이다. 빨간 우리 차를 운전해 집으로 향했다. 뒷좌석에서는 열 살, 일곱 살 아들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고 있고, 조수석에는 단봉이. 남부로 내려올 때만 해도 애들이랑 같이 앉아서 힘들어했는데 이젠 빙긋 웃고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내가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던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속이 안 좋았다. 가까운 휴게소에 내려 화장실엘 다녀오고 결국엔 운전자를 바꾸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이 상태로 어떻게 아홉 시간을 가나. 파리를 함께 쏘다니고 이렇게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여행 중이라고는 해도 열한 살 차이가 나는 제자에게 운전을 맡기다니 너무 미안했다. 물론 번갈아 운전하기로 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도 금방 어쩔 수 없이 맡긴 게 마음에 걸렸다. 조수석에서도 편하지가 않았다. 메슥거리고 머리가 아픈 것도 있지만 긴 여정을 앞두고 술이라니 웬 말인가 나를 탓했다. 파리에서 살면서 맥주며 와인을 자주 마시기는 했으나 그 후유증이 이렇게 크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늘 나보다 많이 마시는 남편이 없어서 내가 과음을 했던가 보다. 오후에는 정신을 차리고 운전대를 잡아서 집까지 잘 왔지만, 그때 내게 시간이란 너무나 막막하고 내가 직접 헤쳐나가야 하는 너무 긴 길로 다가왔다. 술이 내 시간을 한없이 길게 늘릴 수도 있다는 걸 지치도록 깨달았다.
그런데 그 술이 또 내 시간을 한껏 너그럽게 하기도 한다. 요즘 들어 나의 서울 나들이는 대체로 친구와 맥주 한 잔에 이른 저녁을 먹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때의 시간에는 내가 한껏 너그러워진다. 아니, 어쩜 시간이 내게 너그러워지는 것인가. 맥주를 또 한 잔 시키고 더 오래 머물고자 기차 시간을 원래보다 뒤로 미루어 예매한다. 이게 바로 술이 내 시간을 늘려주는 게 아니겠는가.
기차 시간에 나를 맞추는 일은 얼마나 피곤한가. 눈앞에서 KTX를 놓친 적이 있다. 논알코올 상태의 아침, 대전역에서다. 대전 지하철이 문제였다(라기보다는 내가 늑장을 부린 거다). 서울 지하철 배차간격을 생각해서는 안되었다. 주말 아침에는 배차간격이 12분이다. 지하철 대전역에서 KTX 대전역까지 걷는 동안 더 빨리 가야 된다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뛰었다. 대전역을 저 앞에 둔 마지막 에스컬레이터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싶었지만 다리가 꿈쩍 않고 오히려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내 다리가 왜 이러나, 좀 저릿한 기분도 났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승강장으로 향해 드디어 타는 곳으로 갔다. 내 몸은 여전히 계단 위에 있는데 내 눈앞에 내가 탈 KTX의 문이 닫히는 게 보인다. 출발하는 KTX를 속절없이 눈으로 배웅하면서 자책했다. (마침 승무원이 계셔서 차를 놓쳤어요, 고백하자 얼른 어플로 취소를 하고 다음 차를 예약하라고 하셨던 것 같다. 이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덕분에 애초의 행선지와는 다른 영등포역에 내려서 친구를 만났다.) 1분이 그렇게 휙 지나가는구나 실감한 순간이었다. 술 없이 시간은 칼같이 일정한 속도로 내 곁을 스친다.
하지만 술은 내 시간을 연장시킨다. 친구와 함께하는 다정한 밤의 시간을 말이다. KTX도 나를 탄력적으로 기다려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걸 몸으로 체험한 나는, 내가 다시 예매한 그 시간에 맞춰 서울역 혹은 수서역으로 향하면서 또 마음을 졸인다. 알코올 기운 때문인지, 네이버지도에서 알려주는 경로가 내 걷는 속도랑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왜 자꾸 드는 것인가. 기차 시간에 맞춘다는 건 늘 초조하다는 걸 나는 왜 언제나 다시 확인하는지 모르겠다. 기차역에 다다를 즈음엔 시계가 아직 시간이 남았다며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도 내 앞에 남겨진 거리와 시간을 함께 가늠하는 일이 내게는 여전히 어려워 내 몸엔 조금 땀이 밴다. 기차에 타면 언제나 다행스럽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내게는 늘 놀라운 일이다. 좌석 안에 내 몸을 안착시키고 나면, 한껏 부른 배로 넉넉하게 피곤하고 오늘의 다정한 시간이 다시 한번 달콤하고 뿌듯하게 느껴진다.
내일 또 서울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 개장시간에 맞춰 입장했다가 이번에는 저녁 일정을 하나 더 마련해 두었다. 내일의 나는 또 몇 시 차를 타고 돌아올 것인가. 내 여정에는 또 한 잔 혹은 두 잔의 술이 함께할 것만 같다.
술은 내게 시간과 거리를 다르게 감각하게 한다. 술에 대한 글을 써보자고 제안한 무해한 사람들과 다음 모임에서는 꼭 술을 마셔야겠다. 그날 우리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갈까. ‘축지법과 비행술’은 어쩌면 술집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