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을 해낸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을 읽고
작년에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책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에 대해 들었다. 만학도로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자신의 일을 해나갔다는 곤충학자 정부희 교수님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 후로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 팟캐스트에 정부희 교수님이 나오신 걸 알고 또 한 번 흥미롭게 들었다. 일부러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을 해두었다. 도착한 도서는 오로라빛으로 반짝이는 표지가 아름다웠다. 그런데 막상 책을 못 고르겠어서 들었다 놓았다. 동네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도 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책은 들지 못했다. 제목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에 나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독서모임 도서로 추천을 받아 이번 달 열아홉 명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나로서는 일 년 만에 읽게 된 셈이다. 학교생활 틈틈이 이 책이 교무실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고, 만나는 회원 선생님 중에는
"곤충, 벌레 얘기는 재미없어."
하는 분도 계셨고
"이 책 누가 추천했어요? 문과생은 어려워요."
하는 분도 계셨다.
늦은 나이에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학문을 시작한 이야기, 벌레 및 곤충을 연구하며 겪은 우여곡절이 담긴 에세이인 이 책을 소개해보자면 이렇다. 저자인 정부희 교수님은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어교사를 꿈꾸던 분이었으나 두 아들의 육아로 가정주부로 지냈다. 아들들을 데리고 다니며 곤충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들과는 다르게, 식물에 관심이 생겨 들여다보다가 특정한 식물에서 보이는 곤충들에 흥미가 생겼단다. 자꾸 보게 되는 곤충의 이모저모가 궁금하여 관련 책을 찾아보았고, 우리나라 책으로는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아 다른 나라 도서도 찾아보고, 그러다가 특정 식물에 자꾸 보이는 곤충들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어 생물학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셨다고 한다. 이십 년의 세월이 담긴 이 책의 저자 정부희 교수님은 지금은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며 곤충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출간하고 계신다.
이 에세이를 통해 독서모임에서 이야기해 볼 주제를 책을 제안해 준 선생님이 추려왔다.(이 선생님의 책 추천이야기는 밑에 링크를 걸어둘 생각이다.) 크게 세 가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첫째는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삶, 둘째는 곤충에 대해 나 같은 대중에게 흔히 있는 편견, 셋째로는 내 모든 것을 다 걸 만큼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열정적인 태도에 대해서다.
첫째, 일하는 여성으로서 공감한 내용이 많았다. 경력단절 여성이 새로운 일에 뛰어들 때 얼마나 자기 스스로 또 사회에서 많은 벽을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수집할 사례가 엄청날 것이다. 책의 초반 대학원 면접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몇 살이세요?”
“결혼은 하셨나요?”
“자녀는 몇 살인가요?”
이어지는 질문은 더 놀랍다.
“남편의 벌이가 괜찮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나요?“
“고급 취미생활로 공부하려는 건 아닌가요?“
요는 기혼 여성으로서 집안일 및 육아를 하면서, 처음 하는 공부를 이십 대 학생들과 할 수 있겠냐는 것. 저자는 면접을 치르고 와서도 한동안 공부를 단념해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던 아들들의 응원에 힘입어 진학을 결심하고 나서도 이런 장면은 다시 등장한다. 난생처음 하는 생물학 공부에 몰두하던 때, 진학한 학교에는 개설되지 않은 과목의 수강을 위해 지방대학까지 새벽부터 서둘러 간 저자에게는 으레 이런 질문이 날아온다.
"애들은 어찌하고 이렇게 돌아다니십니까?"
이렇게 묻는 당신들은, 애들은 어떡하고 이렇게 밖에 계시는지 되묻고 싶다. 안 그래도 한창 예민할 때인 중학생, 고등학생 아들을 두고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저자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향했을 것이다. 어쩌면 매 순간 내게도 내 일이 중요하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 되뇌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저자의 경우는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고,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지만 여전히 지금도 많은 여성에게 유리천장은 있을 터. 이런 문장이 있었다.
'느슨하게 연구했다간 그 편견이 언제 떠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도 연구를 게을리한 적이 없다.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며 얻은 나만의 경험은 뒤에 올 후배들에게 틈날 때마다 전해준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올 여성들의 자리가 더 떳떳해지길 기대한다. 또 일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손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학문에 매진하며 박사 학위를 따는 것을 보며 아이들도 느끼는 게 많았을 터. 실제로 교수님의 둘째 아들은 어머니와 분야는 다르지만 곤충을 연구하는 일을 한다고 하니 알게 모르게 어머니의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좋다.
둘째 벌레와 곤충에 대한 사람들의 무턱 댄 혐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한 얘기도 많은 부분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까지 일 년이 걸렸던 나도 책을 읽고 나서는, 천변을 걸으며 하루살이가 많다고 투덜대는 남편을 타박할 수 있었다. 일단 이 책을 통해 벌레와 곤충의 차이부터 알게 되었다. 곤충은 다리 여섯 개, 더듬이 두 개, 날개 네 장이 달린 동물이고, 벌레는 다리가 많거나 다리가 없는 몸으로 기어가는 동물이다. 또 하나 곤충의 경우 사람처럼 잡식이 아니고 특정한 식물 혹은 식물의 어느 부분만 먹도록 진화해왔다고 한다. 욕심 없는 소탈한 모습도 기특하지만, 다른 부분이나 다른 식물은 자기 몸에 독이 되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게다가 배설물과 사체를 먹어치우는 환경정화 곤충에 대한 소개도 있어 곤충이야말로 지구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덧붙이지 않아도 알 것이다. 더불어 외래종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들이 갑자기 출현하고 번식하게 된 건 환경이 달라지게 만든 사람의 책임이 큰데 그런 것은 나몰라라 하고 혐오와 살충만 하고 있는 세태에 대해 친절히 안내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두뇌 용량이 크다고 해서 모두 인간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해 곤충을 혐오한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는 다양한 생물종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은 다 존재의 의미가 있다.'라는 문장의 무게를 알고 살아가야겠다.
마지막으로 어떤 대상을 향한 열정적인 태도에 대해서라면 정부희 교수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모임을 하면서 나는 제목의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중에서 '사랑하는 기분'이 가장 부러웠다. 남들은 다 말려도 내가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나에게는 있는가? 곤충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책엔 많이 나온다. 벌에 쏘였던 경험도 있고, 구덩이에 빠져 곤란했던 일도 쓰였다. 산에서 뱀을 만나고 나면 그날밤엔 악몽을 꾼다거나 한동안은 뱀 비슷한 것만 보아도 놀란다고 하면서도 다시 또 산에 곤충을 만나러 다녔단다. 뿐만 아니다. 저자의 논문주제인 버섯살이 벌레를 관찰하려고 전국 여기저기서 버섯을 채취해 지퍼백에 담아와서 서재방 하나에 수집하고 관찰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방뿐만 아니라 집안에 그 퀴퀴한 냄새가 나고 관찰 과정에서는 버섯포자 덕분에 재채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관찰에는 곤충의 똥도 그 대상이 된다. 또 있다. 표본을 관찰할 때면 약품 냄새가 하루종일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대학 때 생물교육을 전공한 나는 제대로 실험을 해본 적도 없지만 실험실의 이상야릇한 냄새는 너무나 잘 안다. 약대 건물만 지나가도 나던 그 냄새가 나로서는 너무나 싫었는데 그런 걸 다 감수하면서 연구에 매진한 것도 곤충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에게는 내 다른 삶을 감수하면서도 내가 먼저 신나서 열중하고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그저 책과 관련한 무엇이려나? 서점 가는 일을 좋아하고 작가들의 북토크 참여하는 일도 재미있다. 학교에서 책과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거나 참여하는 것도 즐겁게 하는 편이다. 국어교사로서 문학, 작가, 책과 관련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가 대학은 과학교육과에 진학하고, 생물교육을 전공하고 국문과 수업을 부전공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정부희 교수님과는 길을 완전 반대로 내어 살았다. 교수님의 글은 곤충을 이야기하다가도 셰익스피어가 나올 만큼 자연과학에 문학의 향기가 묻어나는데, 나는 문과적 성향에 어떤 이과적 특성이 묻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공부하다가 맛본 국문과 수업은 그냥 다 재미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는 게 내가 내 진로를 통해 얻은 장점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 애정은 알게 모르게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읽든 안 읽든 교실에 읽을 책을 들고 다니며 학생들을 자극한다. 우리 반 뒤편에는 내가 아껴 읽은 책들이 놓였다. 수업에는 내가 읽은 책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할 때 내 눈은 반짝일 것이다.
‘큰일은 여자가 해야지’라는 팟캐스트 제목에 주목해 본다. 벌레가 들어간 제목의 책을 일 년 넘도록 못 읽다가 읽게 된 것도 큰 일이고, 책을 다 읽고 벌레에 대한 편견이 깨진 것도 큰 일이다. 열아홉 명에게 한 달 동안 벌레를 화두 삼고 독서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준 우리 학교 미인선생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선생님은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을 알고 있다는 글도 발행했다!
https://brunch.co.kr/@vitribox/2
일과 여성으로서의 삶과 삶의 즐거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 - 큰일을 해낸 우리 선생님과, 벌레에 대한 편견을 깨고 계신 정부희 교수님께, 나도 따라 큰일을 하고 싶다고 크게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할 큰일도 내가 좋아하는 일로 하고 싶어서 나는 올해 책 쓰기를 꿈꾸고 있다. 글 목록을 정리하고, 책의 방향을 설정하고 하는 일이 아직은 신난다. 언젠가 나오게 될 내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저 부끄러워하지만 말고 내 얼굴이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의 책표지처럼 은은하게 빛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