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의 독립운동

어버이날을 맞아 아들 일기는 그만 읽기로 한다.

by 조이아

우리 둘째 도빵이가 십 대 소년이 된 지 이 년이 지났다. <케빈은 열두 살> 속 케빈은 귀여웠던 것 같은데 우리 집 열두 살 소년은 귀여운 티를 홀랑 벗어던졌다. 5학년이었던 작년 가을, 코로나로 나 혼자 격리했을 때 가장 안타까웠던 게 둘째를 못 만지는 거였는데 이제는 격리 중이 아니어도 만질 수가 없다.

첫째가 말이 없어지고 대답을 하지 않았던 때에도 당혹스러웠지만 같은 일을 다시 겪어도 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둘째는 역시 둘째라 눈에 웃음이 가득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싱긋 웃는 얼굴을 보이던 아기였기 때문이다.

앞머리가 축축하게 땀이나 물에 젖어있을 때 넘겨주려고 머리에 손을 갖다 댔더니 피한다. 어쩌다 내 손길이 닿을라치면 보기 싫은 대상이라도 본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학원엘 갔다가 집에 와서는 밥을 먹고 게임을 할 수 있는 방에 콕 박혀있다. 도빵이가 거실에서 뒹굴거리는 모습은 흔치 않은 풍경이 되었다.


어버이날이었다. 퇴근길에 카네이션이 든 화분이나 꽃다발을 들고 가는 십 대들을 보면서 우리 아들들이 궁금해졌다. 퇴근하자마자 거실 한 구석에 뒤집어져있는 책가방을 치우고, 거기서 물통을 꺼내고, 식탁 위에 있는 간식 봉지와 부스러기를 치우면서 괜스레 부아가 났다. 지들이 뭘 먹었는지를 언제까지 내게 흔적으로 알려줄 건지.

"얘들아, 오늘 어버이날이야."

했더니 준비를 했단다. 주섬주섬 책가방에서 뭔가를 꺼내와서는 무척 건조하게 내 앞에 내민다. 초등학생은 자신이 만든 카네이션과 함께 코팅된 편지를 내밀었고, 중학생은 시 처방이 담긴 약봉투를 하나 건넨다. 둘 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이 여느 자식이라면 쓸 수 있는 상투적인 문구가 쓰였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냐 싶어 고마운 마음이 샘솟았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에게 고맙다기보다는 학교 선생님께 감사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어버이날 이후에 스승의 날이 있는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어쨌거나 아들들은 할 도리를 다했다는 듯 당당했다. 편지 두 개를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두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더니 둘째 선생님께서는 부모님 발 씻겨드리기 숙제를 내어주셨다. 어버이날 당일에 알림장을 보고 그 숙제를 알았지만 아이가 하려고 안 하길래 그냥 두었다. 다음 날 알림장에는 같은 숙제가 또 쓰여있다.

‘부모님 발 씻겨드리고 생각공책 쓰기’

(이제 6학년이라서 그런지 일기가 아니라 생각공책이라고 한다.) 학원 갔다 오고 자기 게임할 거 다하고 밤 열 시가 넘어 거실로 나온 아이에게, 숙제할 거냐 물으니

"몰라."

한다. 남편은 일찍 잔다고 들어가고 나는 옆에서 소설을 읽고 있으려니

“숙제할까?”

하는 도빵이. 효도도 멍석을 깔아줘야 하는 아이라

“그래, 가자!”

하고 못 이기는 척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로 내 두 발에 따듯한 물을 한참 퍼붓는다. 기다리다가 물었다.

“비누칠은 안 해?”

그제야 샤워물을 끄고 비누거품을 내서 내 발을 닦는다. 꽤 꼼꼼하게. 아마 샤워할 때 자기 발도 이렇게는 안 닦을 건데, 엄마 발을 닦으면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고, 따듯해라. 기분 좋다."

헹구는 물이 뜨겁게 나와서 ‘앗, 뜨거’ 했더니 물 온도를 세심하게 맞춘다.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선생님 덕분에 호강을 했지 뭔가. 자기 손을 깨끗이 씻고 나와 생각공책을 쓰는 아이를 보면서, 저 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까 너무 궁금했다. 이제는 못 읽게 하기 때문에 일기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아이 일기를 몰래 읽는 엄마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 보고 싶은 유혹이 아주 커서 종종 아이 없을 때 가방에서 꺼내보기 때문이다. 내가 6학년 때를 생각해 보면 내 일기 몰래 보는 엄마는 너무 싫을 것 같다. 아,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중간에 나는 오늘 또 보고 만 것이다. 엄마 발을 씻겨준 아이의 소감이 너무나 궁금해서. 늘 감동할 준비가 된 나는, 어쩌면 울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큰맘 먹고 읽어본 건데, 큰 감동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 별 것이 없었다. 다만 깨달은 것은, 우리 아이가 참 단순하고 건강한 아이라는 확신? 우리 아이가 일기에 쓰는 정서는 주로 '좋았다'나 '웃겼다'라는 걸 오늘 다시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 발을 씻다가 뜨거운 물이 나와서 엄마가 앗 뜨거 한 게 웃겼단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든, 아빠가 게임 현질을 시켜주었든, 늘 써내려가는 감정은 '좋았다' 또는 '웃겼다' 뿐인 아이라니. 오늘을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아이의 일기는 그만 봐야겠다. 이 다짐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써둔다.


둘째의 사춘기는 또 그것대로 새롭게 놀랍다. 우리 집 아들들처럼 순한 맛의 반항하는 사춘기가 아니어도, 사춘기 전과 후의 온도차가 크게 느껴져서 그럴 것이다. 외출할 때 아이 손을 잡지 못한 게 벌써 오래전인데 나는 여전히 손을 잡고 걷고 싶다. 아이가 커가면서 독립하는 것은 당연한데, 내게서 멀어지는 아이에게 아쉬운 게 또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만 독립심만 키울 게 아니라 엄마의 독립도 필요하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만큼 나도 더 빨리 달려야겠다. 나의 독립을 향하여. 엄마의 독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 자꾸자꾸 독립운동을 해야겠다.


@요조, <만지고 싶은 기분>, 마음산책, 2023 ; 경주 '어서어서'에서 구입한 책, 아들과 교감하고 싶은 내 마음 같은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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