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게 하는 서점

속초에서 방문한 서점

by 조이아


여름 여행을 속초로 정한 이유는 작년에 알게 된 서점 두 곳 때문이었다. 속초 여행을 다녀온 동료 선생님이 문우당 서림에서 책을 선물해 주었다. 여행에서 내 생각을 해 책을 골라온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서점의 분위기를 묘사해 준 덕에, 문장으로 장식된 천장과 벽으로 된 서점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가을 무렵에는 동아서점 김영건 대표의 에세이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를 읽었는데 서점을 배경으로 책 얘기와 서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맑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어 막연한 동경이 생겼다.

속초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가족들을 꼬드겨 서점부터 갔다. 문우당 서림은 들어서자마자 색색깔의 문장들과 천장의 문구들이 환히 반겨주었다. 곳곳에 큐레이션 된 책들이 흥미를 돋워 오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둘러보았다.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고 규모도 커서 책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 좋았다. 2층으로 오르는 길에는 여행 서적이 빼곡히 꽂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했고, 다채로운 색의 문장들이 붙어있어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오르자마자 문우당 서림의 굿즈와 독립출판물이 나를 홀렸는데, 다양한 책의 판형만큼이나 개성 있는 책들을 쓰다듬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동안 알지 못하던 에세이 시리즈도 눈길을 끌었다. 나도 저자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날마다’ 시리즈나 ‘1일차입니다’ 같은 에세이들을 눈여겨보았다. 2층의 가장 가운데 서가에는 글쎄 만화책, 그래픽노블이 잔뜩 꽂혀 있었다. ‘우와, 이것도 있네, 저것도 보자’ 하고 내 눈은 너무 바쁘게 책을 훑었는데 내 눈에 띈 것은 저쪽 의자에 나란히 앉아 나를 기다리는 남자 셋이었다. 큰아들은 소설 한 권을 골라 앉았지만 둘째와 남편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박완서 작가님의 방을 꾸며놓은 전시실을 얼른 보고 책 한 권을 골랐다. 속초에 가기 전부터 사려던 책을 뒤로하고 내가 고른 책은 김한민의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라는 그래픽노블이었다. 그의 그래픽노블을 한 권씩 모으고 있는데 막상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차였다. 그런데 이 책이 잘 보이게 전시되어 있어 눈에 띄었을 때 집은 것이다. 제목부터 남다른 책이라 기대가 되었다. 남자 셋은 내가 책을 고르자 이제 나가자며 서둘렀다. 더 머물고 싶은데 아쉬워하니 남편이 얼른 내 사진을 차르륵 찍어준다. 사진 찍힌 것에 위안을 받고 서점을 떠나면서 뒤돌아 한번 더 눈에 담았다.

2박 3일의 속초 여행의 마무리는 또다시 서점 방문이었다. 여행의 시작과 끝을 서점에서 하다니, 너무 좋았다. 문우당 서림과 멀지 않은 곳에 속초 동아서점이 있다. 역시나 규모가 있는 서점으로 여기는 일 층으로 되어 있다. 이 서점의 큐레이션도 만만치 않게 좋았는데, 큰아들도 느꼈나 보다.

“엄마, 여기는 책들이 더 읽고 싶게 돼있어요. “

어머, 너도 느꼈구나! 게다가 아기자기한 장식마저 사랑스럽다. 요리책 코너, 그림책 코너, 여행책들. 머물고 싶은 곳이 많아 나는 또 눈이 휘둥그레져서 감탄하면서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데, 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느새 나란히 앉아있는 남자 셋. 큰아들은 소설 하나를 골라 읽고 있고, 둘째랑 남편은 역시나 핸드폰을 보고 있다. 여행책이 있는 곳에서 엄유정 작가의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표지 그림으로 알게 된 작가로 그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림 여행기라니 읽지 않을 수 없다고 끌어안았다. 게다가 아이슬란드라니. 남편에게 보여주니 ‘파리에서 아이슬란드를 갔었어야 했는데.’하며 아쉬워한다. 언젠가를 기약하며 책을 계산했다. 대표님 부부는 맑고 선한 인상이 닮아있었다. 포인트를 적립하겠냐 물으셔서, 짧은 시간 고민했다. 우리 가족이 속초까지 여섯 시간 운전해 왔는데,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만화 코너에서 <천재가 어딨어?>라는 책까지 세 권을 구입했으니 적립해 볼까. 포인트가 있으니 이것 때문에라도 다음에 또 와야지. 다음을 기약하게 해 준 대표님께 감사! 계산대 옆에는 동아서점의 역사가 고스란히 사진과 책으로 남아 있었다.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사진으로 남기고 나왔다.

두 군데 서점에서 내가 고른 책은 그림 여행기, 그래픽노블이었다. 맞다, 나 이런 책 좋아하지! 뒤늦게 내 취향을 확인한다. 김한민의 <그림 여행을 권함>을 예전에 읽고, 너무도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런 책을 쓰고 싶었다. 이십 년 전, 친구와 둘이 한 여행에서 두툼한 노트 한 권을 다 써왔는데 그때 내 노트에는 영수증, 티켓과 내 서툰 그림이 함께였다. 그 한 권을 쓰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요즈음 나오는 독립출판물 중에는 그런 에세이, 여행기가 많던데 보는 족족 손에 들게 된다. 자기 이야기와 그림이 곁들여진 책이라면 무조건 멋져 보이는 필터가 내게는 있다. 서점에 가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는 걸까.

그동안 내가 사읽은 책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번에 사려던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가의 신작 소설, 읽으면 무조건 좋을 작가의 신작 에세이였다. 그런데 그 책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선택이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책 사는 데에 인색하지 않다. 동네 서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인터넷서점을 통해 책을 살 때도 많다. 내게는 북스타그램, 작가스타그램으로 쓰이는 인스타그램에서 신간 소식을 접하면 혹한다. 그래서 작가의 최신작이라든가 베스트셀러 등을 사게 된다. 막상 사둔 책 중에는 그저 진열만 해두고 흐뭇해하는 것도 있다. 요새 남들이 다 읽는 저 책, 우리 집에 있어. 이런 속물적인 나는 소비자 정체성의 내가 만든다. 소비자 말고 진짜 나를 만들어가는 책을 고르고 싶다. 나를 채우는 책은 서점에서 만날 확률이 높다. 남들 눈높이 말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나려면 서점에 가야 한다고, 이번 속초 서점 방문을 통해 뒤늦게 확신한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거 말고 내가 좋은 것들을 고르며 살고 싶다. 그게 책이 되었든, 옷이 되었든, 삶의 스타일이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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