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만세, 이상한 위로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가 주는 위로

by 조이아

일 년에 두어 번은 독립영화를 보러 간다. 대전에서 유일하게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대전아트시네마’에서. 오랜만에 찾은 극장은 여전히 정겨웠다. 관객은 내가 데려간 남자 둘과 나, 이렇게 셋. 작은아들은 절대 안 가겠다고 해서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고 남편과 큰아들이 억지로 나왔다. 빙수 사 먹자고 꾀었다.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가 오늘의 영화였다. 팟캐스트에서 알게 되었는데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에서 소개를 짧게 들었고, ‘영혼의 노숙자’에 감독님이 출연해 영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더랬다.

주인공은 열여덟 살 송나미와 황선우로 둘은 친구라고 할 수 없다. 학교폭력 피해자 혹은 왕따, 각자 외로운 처지의 둘은 수학여행 날 거기 가는 대신 자살을 계획한다. 쏭남이 목을 매려는 찰나, 우리를 이렇게 만든 박채린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아느냐 묻는 황구라. 서울에서 유학을 준비학고 있다는데 우리가 죽어도 박채린은 잘 나갈 거라는 말에 빡친 쏭남은 복수를 위해 머리를 굴린다. 박채린에게 가서 그 인생에 기스라도 내겠다는 각오다. 영화는 뻔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해 선하게 살고 있다는 설정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후에 벌어지는 일은 관람객으로서 이야기가 어떻게 흐를까, 결말이 어떻게 날까 시종일관 마음 졸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낀 나는 부채질을 하며 엔딩을 보았는데, 늘 ‘황구라’라고 별명을 부르던 나미가 저 멀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 선우에게 “황선우!”라 힘차게 부르는 그의 표정에서 같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대사는 잊을 수가 없다.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눈물이 맺혀 극장을 나왔다. “와, 얘기가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했어.” 아들과 남편에게 말하며 재미있었냐고 묻자 그렇단다. 협박한 건 아니다. <더 글로리>에서 악역을 맡았던 박성훈을 비롯하여 종교에 헌신하는 어른들의 연기도 출중했고, 쏭남 역의 오우리 배우는 반항적이면서도 심드렁한 표정이, 역할과 너무 딱이었다. 아기 목소리로 종종 시무룩해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황선우 역 방효린 배우의 연기도 정말 신선했다.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썼을까. 두 주인공의 결말도 산뜻했다.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는 현실로 돌아왔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 더 힘을 내도 좋다고, 살아보자고, 나도 너와 함께 있다고 긍정하게 될 테다.

영화를 본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도 자꾸만 선우의 마지막 대사가 생각난다. 낙원을 꿈꾸며 지금의 삶을 억지로 사는 마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셈이다. 늘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힘이 빠질 터. 지금 여기를 긍정할 수는 없지만, 이 지옥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힘을 이 영화는 준다. 욕을 하면서라도 여길 버텨볼 깡 같은 것. 힘들 때마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나미의 마지막 대사를 떠올릴 것 같다. 개학 하루 전이라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닌데, 뭐 어디든 지옥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지옥 만세”라니, 그냥 이 제목만으로도 뭔가가 전해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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