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의 오마주와 나의 오해

창의력이 삐죽삐죽 삐져나오는 중학생

by 조이아

공감을 연습하기에 등장인물의 일기 쓰기만 한 것이 없다.

원작을 재구성한 작품을 비교 감상하는 학습을 하고 있다. 원작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 되어야 하므로, 소설을 읽고 등장인물의 일기를 써보는 활동을 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교과서에는 소설의 뒷부분만 수록되어 있어서 주요 인물은 개를 훔친 주인공 조지나와 개 주인 카멜라 아줌마가 등장한다.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 개를 돌려준 날의 일기를 써보게 했다. 사건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인물의 행동도 알아야 하고, 그의 심리도 파악해야 쓸 수 있다. 쉬운 선택은 소설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니만큼 조지나의 일기일 테고, 도전하고 싶은 사람은 카멜라 아줌마의 일기를 써보자 했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인물이 한 행동과 그때마다의 감정을 드러내 일기를 잘 써 내려갔다. 안도하는 마무리까지. 일기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은 이렇게 시작하기도 했다.

“나는 조지나다.”

일기를 쓸 때 자기 이름으로 시작할 리가 없건만. 하루치의 일기를 쓰도록 했는데도,

“나는 오늘 개를 훔쳤다.”

라고 며칠 전부터의 서사를 쓰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가장 놀라웠던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카멜라 아줌마에게 그렇게 큰 사정이 숨어있을 줄이야! 아이는 카뮈의 <이방인>을 좋아해서 그렇게 시작해 보았단다. ‘오마주’가 무엇인지 아는 학생임이 틀림없었다.


원작과 재구성작을 비교 감상하는 활동을 한 달 동안 했다. 소설이나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원작이 재구성되는 까닭과 비교 감상하는 태도, 이렇게 감상하면 좋은 점에서 더 나아가 원작을 재구성하는 활동도 해본다. 중간고사를 마치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영화를 감상할 예정이고, 한 권 읽고 재구성하기 수행평가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중학생들에게 재구성은 배워야 할 학습 요소라기에는 이미 너무 생활화되어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일기 쓰기를 시켜놓고 책상 사이사이를 걷다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교과서 표지의 과목명. 국어 책은 1, 2학기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2학기를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의 과목명이 ‘튜닝’되어 있었다. ‘굶어’라고 다이어트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기도 했고, ‘중국어’로 과목명이 바뀌기도 했으며, 무섭게 ‘죽어’라고도 쓰여 있었다. 이미 쓰여 있는 자음과 모음에 한 획을 긋거나 새 자모를 추가해서 만든 것이다. 어떻게 지우고 썼는지, ‘북한’이라는 제목도 있고, ‘복어’라는 제목도 있다. ‘볶음밥’이라는 제목을 위해서는 몇 획이나 수정하고 추가했을까. ‘국어’ 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글자수를 바꾸어 ‘기술가정’ 교과서는 ‘겨자’가 되고, ‘역사’는 ‘역지사지’ 말고 ‘역지사미’가 되어 있기도 했다. ‘역시’도 있었고, ‘사회’는 ‘사과’, 수학’은 ‘잠수함’이라는 쉬운 선택의 제목으로 바뀌기도, ‘도덕’이라는 제목은 깨끗이 지워진 경우도 있었다. 과목명을 궁금해하자 ‘체육’은 ‘제육볶음’이라 바꾸었다고 자랑한다. 그러고는 곧 자기들끼리 킥킥대면서 내게는 가르쳐주지 않는 제목도 있었다. 나의 궁금증을 키우는 이 중학생들의 기발함을 나는 수행평가로 채점할 계획을 갖고 있는데, 이들이 이미 창의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미 달성한 학습목표를 다시 또 다른 과제를 제시하며 평가해야 하다니.


원작을 재구성하는 마음에는 원작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어’ 책이 ‘복어’, ‘굶어’로 바뀌었대도 국어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려니 하련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예민의 노래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되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으로 변용된 것처럼. 이 아이들도 교과목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것이라고 철저하게 오해하고 싶다.


@바버라 오코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

제목 사진은 @그랜트 스나이더, <천재가 어딨어?>, 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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