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가 중요한 십 대의 마음, 떠돌이 아저씨 마음의 교사
‘앞부분의 줄거리’로 요약된 부분을 위해 마인드맵을 그렸다. 짧게 끝날 줄 알고 공책을 그대로 세로로 두고 그렸더니 왠지 더 복잡해 보였다. 전자칠판으로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더니, 깜짝 놀란다.
“안 써도 돼, 이걸 그대로 쓰라는 게 아니에요!”
황급히 덧붙였더니 그제야 안도하는 얼굴들. 필기할 준비를 하고 있었구나.
“설명할 때 빠트리지 않고 이거 보고 말하려고 준비한 거예요. 그냥 듣기만 해도 좋고, 간단히 메모하며 들어도 좋습니다. “
소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수업이었다. 앞부분의 줄거리로 주인공 조지나가 어떻게 해서 개를 훔치게 되었는지, 카멜라 아줌마는 어떤 사람이고 개가 사라져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무키 아저씨의 등장과 그가 한 말들을 이야기했다.
본수업인 교과서 본문에서는 주인공 조지나의 행동과 감정을 따라가며 읽었다. 끝까지 읽고, 교과서에는 안 나오는 소설책의 마지막 장을 이어 얘기해 주었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나. ”
하며 책을 들고 문장을 그대로 읽었다.
“아~”
하는 탄성을 뱉는 반에서는 내 팔에도 소름이 돋았다.
활동을 하나 제시했다. 소설의 첫 문장 쓰기! 소설의 첫 문장으로 가장 유명한 작품이 있다며 뭔지 맞혀보라고 했다.
“톨스토이의 작품이에요. “
라 말하자,
“토이스토리요?”
하는 중학생들.
“러시아 문학이고, 주인공의 이름이 소설 제목입니다. 여자 주인공의 안타까운 가정사가 펼쳐지는……. “
“안나 카레니나요!”
알아맞히는 학생이 드물게 있고, ‘대단하다, 어떻게 알았어?’하며 간식을 하나 건넸다. 못 맞히는 반에서는 내가 제목을 말하면, 갸웃한다. ’뭐요?‘ 두세 번은 다시 발음해야 하는 제목. 그리고 그 첫 문장을 읊어주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옮긴이의 말에 저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조지나 가정의 불우한 사정 탓이었으리라. 어쨌거나 이렇게 첫 문장은 소설의 첫 이미지를 그리며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하게 한다며,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첫 문장을 알아맞혀 보자고 제안했다. 맞히는 사람에게는 상점을 주겠다며, 문장의 시작을 칠판에 써주었다.
“내가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 날은,“
아이들은 공책에 문장을 옮겨 적으면서 저걸 어떻게 맞히냐며 야유했다. 그들을 고민에 빠트린 후 힌트를 주었다. 교과서 앞부분의 줄거리를 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으며, 문장에 고유 명사가 들어간다고 했다. 반마다 다섯 명 정도는 알아차리는데 실제의 문장은 이랬다.
“내가 개를 훔치기로 결심한 날은, 내 가장 친한 친구 루앤 고드프리가 내가 자동차에서 산다는 걸 알아챈 바로 그날이었다.”
친구 이름 ‘루앤’과 ‘차’라는 명사가 들어가고 뜻이 통하는 문장을 쓴 학생에게 잘했다고 상점을 주었다.
활동의 마무리는 이렇게 했다.
“여러분은 앞으로도 소설을 많이 접하게 될 텐데 그 소설이 장편이든 단편이든, 끝까지 읽고 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첫 문장을 읽어보세요. 그러면 그 문장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오늘 이 활동을 통해 소설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된 것이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 주었다. 이게 내가 원한 수업이었다.
한 반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첫 문장을 맞히라 제안하면서 ‘맞히면 상점’ 했더니,
“그걸 어떻게 맞혀요.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요?”
라 말을 얼버무리며 불만을 표하는 학생.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상했다. 평소에도 점수에 민감한 아이였다.
“심심이 왜 이렇게 심각해~? 그냥 도전해 봐. “
나는 가볍게 달랬는데, 저 뒤에 다른 학생이 날카롭게 말했다.
“넌 상점 받지 마.”
감정을 가득 담은 질시였다. 그리고 나는 보고 만 것이다. 아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아이코, 내가 괜한 걸 시켰나 싶으면서도 얘네가 왜 이렇게 과민한가 했다.
일단 첫 문장을 쓰는 시간을 주고, 정답을 말하고 나서도 그 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괜히 아는 체했다가 더 상황이 악화될까 따로 말을 건네지 못했다.
나중에 복도에서 심심이를 마주치고
“심심이, 괜찮아? 그때 선생님이 마음 쓰였어.”
한 마디 건넸다. 멋쩍은 웃음을 보내주며 괜찮다고 해서 다행스러웠다. 그게 무슨 의미냐 물었을 때 나도 감정이 상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상점을 준다는 미끼로 상상을 해보자는 제안이 지겨웠을 수도 있지. 열 반 가운데 딱 한 반에서만 부정적인 피드백이 있었으니 괜찮다.
그리고 이맘때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또래 친구라는 걸, 나는 다시 알았다. 차에서 사는 열한 살 조지나가 개를 훔쳐서라도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한 게 바로 친구 때문인 것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첫 문장을 열 반에서 읽어주면서 깨달을 만도 한데, 읽으면서도 몰랐지 뭔가. 친구의 날 선 반응이 아이를 눈물 나게 한다는 걸. 나는 그다지 크지 않은 인물인 것을. 교사가 되고자 했던 내 마음속에는, 아직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가 선생님 같았고, 그래서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주변인물이어도 좋다. 무겁지 않은 관계의 산뜻함이 다행스럽기도 하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는 무키라는 떠돌이 아저씨가 등장한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이 인물이, 조지나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나도 그 아저씨 같은 어른이면 좋겠다. 꼭 필요한 순간에 기능하는 사람, 타인에게 인정을 받든 그렇지 않든 좋은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 당장 눈앞에서는 그의 수고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후에 돌아보면 그 사람으로 인해 좋았구나 느끼게 하는 사람. 그냥 스쳐 지나가는 교사면 어떤가.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소설의 첫 문장을 꼭 한 번씩 다시 읽어봤으면 좋겠네. 내 바람은 그 정도? 나로 인해 문학을 즐겼으면 하는 욕심은 여전하다.
@ 바버라 오코너,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