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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살아보면 어떨까, 내성적인 교사의 꿈

어쩌면 편집자가 되었을 수도 있을까?

by 조이아

어쩌면 그때가 내 인생의 갈림길이 아니었을까 싶은 기억이 있다. 여름 내 내 책을 편집하느라고 한글 문서를 화면에 띄워놓고 여기 붙였다가 저기 붙였다가, 목차를 바꾸고, 글을 손보는 등 편집을 한다고 앉아있으면서 떠오른 추억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편집부 시험을 보았다.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짱아와 함께였다. 자기소개 같은 걸 써냈던가 말았던가. 선명한 기억은 면접을 본다고 남았던 어느 저녁 무렵. 언덕 위에 있던 여자고등학교의 이른 봄은 금세 어두워졌다. 야간자습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쪽 소파에 앉아(사립고등학교의 이상스러운 가구들) 저어쪽 테이블에서 진행되는 면접을 기다리던 시간. 선생님 앞에서 수학문제를 푸는 것도 아닌데 떨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언니들 앞에 앉았다. 어떤 질문을 받을까. 무슨 대답을 할까. 그런데 선배가 요청한 것은 다름 아닌, 노래 한 소절이었다. 엥? 귀를 의심하며 내 입은 노래를 위해 벙긋거렸다.

“소양강 처녀 좀 불러봐요.”

나한테는 왜 이런 걸 시키지? 아 생각났다. ‘사생결단’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구나. 그런 경험에 대해 묻길래 중3 겨울방학 때 온종일 공부하게 했던 학원에 등록한 일에 대해 말했다. 서울대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곳이었고, 아래위층에 있던 독서실에서 공부하게 만드는 학원이었다. 나로서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고. (사실 나는 온종일 있진 않고 낮엔 집에서 지냈지만.) 어쨌거나 어떤 질문에 답을 하기는 했던 거다. 그리고 받은 질문, 아니 요청이 바로 노래 부르기였던 것.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노래를 시켰는지. 결과적으로 나는 편집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친한 친구 짱아가 고등학생 내내 편집부 활동을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도(우린 같은 대학엘 갔다.) 편집부 선후배들과 만남을 가지는 걸 곁에서 지켜보면서 부럽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다. 그저 조금 아쉬웠을 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이 아니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내 책을 편집하면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편집’이라는 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년을 건드리는 글 때문이기도 하리라. 중학생들 이야기를 쓰면서 내 중학생활도 생각나고, 고1 때의 기억도 덩달아 났다. 그리고 이제는 알 것 같다. 왜 언니들이 내게 노래를 시켰는지. 답변을 하는 내 목소리는 그때 아마 모기만 했을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성적인 나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게 힘든 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이들과의 줌 독서모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저 듣고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신청했다가 참여가 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모임에서 나는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가 내 차례로 말을 하면 바로 스피커 볼륨이 높아진다. 내 출력이 낮아 볼륨이 자동으로 올라간 경험 있으신지? 낯선 곳에서 말하기가 자신이 없어서 그게 다 목소리로 표현되는 걸 거다. 그 옛날 편집부 선배들은 목소리를 듣고 바로 알았겠지. 자신감이 없는 편이구나. 목소리 탓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편집부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번 여름에야 그때 내가 편집부 활동을 했다면 내 삶이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고등학교 편집부에서 교지를 만들면서 어쩌면 글을 썼을지도 모르고, 기획 회의며 편집 과정에 참여하면서의 경험이 다른 선택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겠지. 문과로 진학했을 수도, 다른 공부를 했을 수도.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과 관련된 일을 했다면 더 행복했을까 싶은 거다.


최근에야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어제 마지막 회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봤는데(모두들 그러시지요?), 이 드라마에서 나는 유독 교도관들의 애처로움에 이입했다. 극 중에서 나쁜 놈들(!)로 나오는 수감자들이 떼로 몰려서 작당모의를 하는 장면에서 교도관이 서로 떨어지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 그랬다. 그런 외침에 아랑곳 않고 수감자들은 그대로 몰려있었고, 결국 그들은 흩어졌지만 교도관의 처지나 나나 비슷하다 느꼈다. 학교에서 때로 무력한 내가 생각나는 거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고 무시하는 중학생들을 간간이 만나고 있으니까. 또 하나 내 직업을 떠올린 부분이 바로 마지막화였다. 이준호 교도관(정경호 분)이 폐방하겠다고 크게 외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는 평소 욕설도 하지 않고 우아하기로 유명한 교도관이다. 그런 그가 때로는 욕을 내뱉으며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큰 목소리로 ‘폐방합니다’를 외칠 때, 한 사람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크게 소리를 내질러야만 하는 직업적인 숙명 같은 게 느껴졌다. 이런 의외의 감상 포인트라니 서글프다. 목소리를 높이는 일을 나도 학교에서 교사가 되고나서야 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우렁차게 소리 지른 것도 교실에서였고. 몸이 떨려오는 분노를 느낀 곳도 학교였으나 시간이 흐르고부터는 내 감정을 소모하는 화 대신 혼을 낸다. 한편으로는 남들 앞에 잘 서지 못하는 나를 학생들이 하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학생들이 나를 키운 게 맞네.


편집자 정체성을 흉내 내면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를 상상하다가 지금의 나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려 본다. 교실에서 다수의 학생들 앞에 서본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수줍어하는 사람으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교실 빼고는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 또 반전. 우리 동네 ‘버찌책방’에 책을 입고하면서, 북토크를 해보라는 가벼운 제안을 주셨다. 부끄러운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런 걸 어떻게 해?’ 하고 말았는데 도전해보아야 할까 고민이다. 엄청난 용기를 내야 하리라. 요새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마주치면 작가라 칭하시며 책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걸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편집자 정체성을 또 한 번 입어야 하는구나. 독서동아리 학생들의 책을 겨울에는 내야 하니까. 우당탕퉁탕 편집자가 나는 또 되어야 한다.

(왼쪽) 열심히 편집해 만든 내 책 <우주를 누비며 다정을 전하는 중>, (오른쪽) 멋진 도장을 제작해준 @오케이슬로울리 에서 테이블을 이용하면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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