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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Jun 09. 2024

엄마 혐오

중학생에게 상처 받는 엄마

학교에서 간혹 일베스러운 남학생들의 말이나 글을 접할 때면 뜨끔한다. 맥락과 상관없이 전두환 박정희를 소환하거나, 엉뚱한 데에서 페미니즘 혐오 발언을 하는 일이 왕왕 있다. 청소년문학 평론가 오세란 선생님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를 읽다가 내 주변의 학생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냥 그런 현상이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문학평론가와 고등학교 교사, 독서교육 연구자 간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을 얻었다.

저 인터뷰의 소제목은 <독서들로부터: 페미니즘과 청소년 독서 교육 현장>으로,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점을 딱 짚어주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남성 청소년 성장 서사에 있어 롤모델이 될만한 서사가 부족하다는 지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기존의 마초적인 남성 모델과는 다른 역할이 문학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섬세한 남학생들의 설 자리에 대해 걱정하는 한편, 비주류 남학생들이 유독 페미니즘 혐오를 보인다는 것을 지목했다. 나 또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아이들끼리 하는 비하 발언으로 '년'이 들어가는 표현은 너무 많이 들어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 김영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남학생들끼리 '이년아'라 부르는 것 외에도 서로 엄마 이름으로 부르면서 조롱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내가 만나는 중학생들도 생각났다. 어느 날 학부모님과 전화 상담을 하다가 듣게 된 이야기다. 우연히 보게 된 아이 SNS에서 아이 단짝 친구가 본인(어머니) 욕을 하더라고. 그 얘길 들으면서 아니 그, 우리 반 아이는 자기 친구를 가만히 두나 싶었는데 그런 문화가 이미 만연한 모양이다. 가끔 아이들끼리 싸우는 원인에는 일명 '패드립(가족을 욕하는 것)'도 꽤 많은데 이거 참 걱정스럽다.

여성 혐오와 엄마 혐오가 합쳐진 것에 대해 독서교육 연구자 김은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육 분야에 여성의 수가 많아진 것이 "역설적으로 남자아이들의 삶에서는 마치 억압자가 여성인 것처럼 느끼게 되기 쉬워졌어요. 가정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주로 엄마가 교육 담당자가 되었잖아요. (중략) 그러니까 남자아이들의 경험에서는 나의 삶을 통제하는 사람, 규칙을 만들고 허락을 받아야 하는 직접적인 권위자가 주로 여성인 거죠." 그러면서 페미니즘을 혐오하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 너무나 설득력 있지 않은가.


어허, 우리 집 중학생이 생각난다. (지금은 또 축구하러 나가고 없다.) 가끔 보이는 중학생만의 표정이 있다. 한 번씩 들리는 시옷 들어간 소리도 있다. 학교에서 보던 반항적인 중학생의 모습을 우리 집에서 포착하고 심장이 벌렁벌렁했었다. 엄마가 싫다는 느낌을 팍팍 전해주는 아들이라니.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모른다, 세상에 퍼져있는 엄마 혐오가 내게 어떤 방식으로 전해질지. 밖에서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아, 일언반구도 없으려나. 슬퍼지려고 한다. 마침 오늘 읽던 소설 구절이 절절히 와닿았다.

"자리에 앉아 잠시 아이를 관찰했다. 물건을 집을 때나 찬장의 문이 저절로 닫히게 두는 방식에서 다소 건방 어린 무심함이, 그리고 말을 걸거나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몹시 민감하게 내비치는 짜증이 느껴졌다. 문득 마티스가 어떤 문턱, 정확하게 문턱 바로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아이의 내부에서 바이러스처럼 끓어오르는 징후가 보인다. 맨눈으로야 아무것도 알아챌 수 없지만, 그의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서 작동 중이다. (생략) 전에 제 누이가 그랬듯이, 막내아들은 우리 눈앞에서 변해갈 것이다. 무엇도 그 변화를 멈추게 할 수는 없으리라."

@델핀 드 비강, <충실한 마음>, 레모

@오세란,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사계절


둘째가 밖으로 나가고 고등학생 큰아들이랑 얘기하다가, “중학생 때는 도대체 왜 이렇게 말도 안 하고 그러는 거야?”하고 남편이 물었다. "그때는 다른 건 생각도 못하는 것 같애." 자기 생각, 감정 말고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거다. 안중에 없는 타인의 감정. 그런 일이 딱 사춘기 때뿐이라면 얼마나 다행인가. 그 시절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은 지혜롭고 신비롭다.

한 달 전에 둘째가 친구네 가서 자고 오겠다고 차에 태워 데려다준 적이 있다. 집의 위치를 안내한다고 마중 나온 아이 친구들이, 차 안에 있는 내게 "감사합니다~!"하고 낭랑하게 외치더라. 우리 집 애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달려 나가기 바빴는데, 그 인사가 어찌나 기특하고 예쁘던지. 그런 순간들에 기대어 사춘기 시절을 보내야겠다. 비록 우리 아들이 한 인사는 아니더라도 중학생들의 모든 시간이 혐오로 점철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겠나.

이십 년째 중학생과 생활하고 있지만, 우리 집 중학생은 또 힘들다. 오늘은 또 이렇게 책에서 읽은 구절과 따뜻한 기억으로 나를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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