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애쓰기
중2병은 이제 중1병이나 초6병으로 바뀐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온몸으로 알려준다. 학교에서 중2들에게 기 빨려서 기운 없이 집에 가면, 또 다른 중딩이가 기다리고 있다. 모래 묻은 양말과 체육복을 입고 때때로 침대에 누워있기도 하는 중 1 아들. 내가 하는 말이 안 먹히고 삐딱한 게 너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너 한 번 멋대로 해봐라, 내 가만있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순간순간 든다. 내가 뭘 얼마나 힘들게 한다고 나한테 이런 표정을 짓고, 눈을 안 마주칠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애가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에서 갑자기 소리가 난다. 아까까지만 해도 음 소거 되어 있었는데, 내 얘기가 듣기 싫다는 거다. 아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게 될 줄 몰랐다.
주말에 친정부모님이 오셨다가 월요일에 가셨다. 퇴근해서는 서울까지 잘 들어가셨는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직전 아들의 널브러진 모습과 코를 찌르는 과자 냄새, 땀 냄새 등을 포착하고, 안 예쁜 반응에 마음이 상했던 차였다. 멀리까지 오가시느라 애쓰셨다고 통화하다가 도빵이가 지금 체육복 그대로 입은 채 침대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다고 일러바쳤다. ‘지금이 그럴 땐데 어쩌겠니, 차차 나아지겠지.’ 그리고 통화 끝에 ‘딸, 사랑해-’하는 엄마 목소리. 꽁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애가 버릇없게 굴면 버럭 혼을 내야겠다 했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 이렇게 사랑받고 있구나, 그 사랑으로 참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품어줘야지. 사랑받고 컸으니 나도 사랑을 줘야지. 쉽지 않지만 해야지.
학교에서 스트레스받고 온 날에는 내 마음이 더 날카롭다. 학교에서 폭력이니 선도니 그런 단어들과 씨름하고 온 날엔 일부러 퇴근 시간을 아이가 학원 간 이후로 맞추기도 한다. 내가 더 예민하게 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내 노력을 저 아들은 알까.
부러 애쓰던 순간이 이번 주에 있었다. 방전된 채 퇴근해 만난 아들에게
“도빵아, 엄마가 기운이 없는 건, 도빵이 때문이 아니라 학교에서 만난 형들이 힘들게 해서 그래. 벌점이 50점이 넘는 형도 있고 사건 사고도 많다. 엄마는 도빵이 보면 웃고만 싶어.”
이렇게 말한 것. 도빵이가 폰을 보면서 끄덕여주었다. 되었다. 내가 한 말이 100퍼센트 진심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아들인 걸. 너도 학교에서 힘들었겠지.
<인사이드 아웃 2>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장면은, 사춘기 버튼이 눌리고 라일리의 반응이다. 본인이 늦잠 잔 것에 대해 엄마에게 화를 내고, 몸에서 나는 냄새에 역겨워하다가 곧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는 라일리. 감정을 통제하는 콘솔은 확장 공사를 한다고 여기저기 망가져있다. 우리 집 중학생의 머릿속 혹은 마음속도 저렇게 복잡하겠지. 자기가 뱉은 말에 놀라기도 하겠지.
좋은 얘기라도 엄마나 아빠가 얘기하면 왠지 안 듣고 싶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너무 먼 옛날이지만 아이는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고 내 모든 게 만족스럽지 않은 때였다. 그 시기를 지나고 부모 역할을 하는 나는 너그러움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영화에서 '부모 섬'은 저 멀리 망원경을 써야 보이는 곳에 있다는 설정이 충격적이면서 너무도 그럴듯했다. 사춘기 아이에게 부모는 안중에 없고, 친구가 우선이라는 것. 그들은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되는데 참 어렵다. 세상엔 어려운 일이 참 많지만,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 회복은 인류 공통의 난제가 아닐까. 꽃받침 하고 웃던 어린이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 도빵이랑 둘이 극장 가서 봤는데 아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