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기 싫어서

by 조이아


꼰대가 되기 싫다. 어떻게 이 학교에서는 내가 중간에 낀 세대 같다. 아주 젊지도 않은, 아주 늙지도 않은. 코딱지만 한 학교에서 학년부장을 하면서 그나마 1학년이라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폭력 성향의 학생들도 1학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나 선도위원회를 겪으면서 조심조심 생활했고 어느 정도 기강-아, 이런 말을 쓰다니, 꼰대가 맞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이 잡혀 있었다. 물론 이 작은 학교에도 가출 학생이 있었고 그것은 뭐 어찌할 수 없이 여전히 그렇다. 2학기가 되고 자유학기를 만끽하는 1학년은 점점 해이해진다. 뭐 꼭 자유학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모든 학년의 학생들은 1학기보다 2학기에 학교를 편안해 하기 마련이다.


바야흐로 학생들의 호시절을 맞이하여 우리 1학년들도 슬슬 반항을 한다. 나로서는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그렇다고 그들을 들들 볶고 싶지는 않고 나는 어디까지나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 매 학년의 첫 국어시간에 강조하는 것도 바로 '관계'이다. 그런데 학년부장을 하면서는 슬슬 나를 피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수업시간에야 내가 교실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니까 이런 일이 없지만, 복도를 지나칠 때면 내 눈치를 보면서 슬쩍 사라지거나 머리를 묶는 척을 하거나 하는 여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남학생들은 내가 지나가면 다른 학생들을 가리키며 고발을 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낸다. 대개가 장난스러운 것들이지만 왜 나는 이런 고백을 들어야 하는가, 왜 나를 피하는 것인가. 나에 대한 거부가 자신의 복장 불량에서 기인하더라도, 나는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근에 나의 집중 관심을 받은 여학생들이 있었다. 급식을 먹으러 가지 않고 빈 교실-우리는 교실 문을 잠그고 급식을 먹으러 간다-에서 생라면 하나와 젤리 한 봉지를 까놓고 점심시간을 보내는 무리. 중심에는 두 명이 있었지만 그 무리는 넷이 될 때도 있었고, 여섯이 될 때도 있었다. 급식실에 가지 않는 이유는 처음에는 선배들 때문이었다. 자신이 염색한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해서 밥을 못 먹겠다고. 나는 나대로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또 해당 학년의 부장 선생님과 상의도 하고 해서 일단락을 짓고자 했다. 또 너무 신경 쓰이면 염색한 노란 기운을 없애라고도 했다. (우리 학교는 아직 복장 규정이 있고, 그 아이의 머리카락 색은 여전히 노랗다...) 그러고도 몇 번을 급식실에 오지 않거나, 빈 교실에서 무리를 지으며 나를 피하는 거다. 왜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느냐 물으면, 먹기 싫다, 맛이 없다, 엄마도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허락한 것을 왜 뭐라고 그러느냐를 주장했다. 단체생활에 대한 이야기, 급식 준비에 대한 이야기에 생라면에 무익함 혹은 해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 하나하나 받아 대답했다. 그러면 급식받고 바로 버려도 되느냐, 생라면이 안 좋은 거면 다른 도시락을 싸오면 되느냐. 물론 부모님과 상의하에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하면, 개인의 건강을 위해 급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학교에서 알고 있겠다 대답했다. 그리고 너희가 밥을 먹지 않으면 걱정스럽다며 학교에서는 교사가 보호자라고 하자, 자기들 보호자가 왜 선생님이냐고 따..진다고하면 그렇겠지만 의문을 가졌다. 그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하는 나 스스로가 참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게 뭐라고. 속으로는 엄청 흥분된 상태였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화를 나눈 후, 수업도 다 마친 후에 그 아이에게 '나 아까 기분 나빴다' 고백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난 거였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환경오염에 관심 많은 거 알면서, 급식을 받아서 바로 버리겠다고, 음식물쓰레기를 많이 만들겠다 이야기하다니 너무 속상했어'라고...... 쿨한 그 아이는 고맙게도 사과를 했다. 고마운 건가 다행인 건가.


그런데 더 속상한 일은 내가 이렇게 열을 올리며 아이들과 실랑이하는 것을 그들의 담임 선생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거였다. 밥을 먹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냐는 거다. 나로서는 내가 한 모든 일이 헛짓 같고 바보 같아서 힘이 빠졌다. 게다가 그 이야기 끝에 자신 또한 고등학교 때 급식을 안 먹고 바깥 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이시며. 그거랑 이거랑 같을까. 그때는 자기 돈을 내고 먹는 급식이었을 테고, 지금은 무상 급식인걸.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 옆에 친구들까지도 선동하고 있는 걸. 제대로 된 도시락을 먹는 것도 아니고. 늘 친절한 척을 잘하는 나는 "아, 그래도 부모님한테 알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얘기만 했던 것 같다.

시일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부장회의 시간에 이 일로 상의를 드렸을 때에 윗분들은 "아이고, 그러면 안 되지~"하시며 대뜸 벌점을 주라고 하셨다. 부장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나는 담임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선생님에게도 벌점 이야기까지 나왔다고, 아이들을 여러 차례 지도해도 그대로이면 벌점을 주는 게 어떠냐 말했더니 자기는 벌점 못 주겠단다. 개인의 자유에 대해 벌점을 어떻게 주느냐고. 아, 그런가. 물론 그날그날의 자신의 상태에 따라 밥을 먹기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친구들의 경우는 안 그렇지 않냐. 얘기하다가 '선생님이 주지 못하겠다면 내가 주겠다' 이야기하고 물러서는데 찜찜했다. 나 또한 급식 먹으라는 지도를 교사가 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이제는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학생들이 밥을 먹지 않는 것은 그들의 손해일뿐인데 내가 왜 밥에 집착하고 있지? 몸에 좋은 걸 먹든 안 좋은 걸 먹든. 빈 교실에서 남학생 여학생 모여서 노는 게 보기 싫었나? 아니면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한 '지도'라는 것이 무시당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걸까. 그리고 왜 얘들이 밥 먹으러 안 오는 걸, 안 가는 걸 나만 알아차리고 있지?

어제도 여자 아이들 급식 기다리는 줄이 짧았다. 교실에는 옆 반 학생들까지 여섯 명. 많은 실랑이를 한 건 아니지만 나나 학생들이나 유쾌하지는 않았다. 잘 다독여서 급식실로 보내고 각반 담임 선생님들한테도 알렸는데 내 말에 반응하는 두 선생님들의 온도차가 달랐다. 나는 또 꼰대의 마음이 장착되었다.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든다.


몇 번이고 가출했던 학생이 오늘 4교시에 잠깐 집에 다녀온다며 외출한다고 나갔다가 안 들어오고 집에서 잤다고 한다. 집에 있어서 다행스럽긴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무척 화가 났다. 금방 다녀온대서 보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호자인 할머니와도 몇 번을 통화하며 아이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네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고, 급기야는 담임선생님이 찾아 나서겠다 한다. 그 선생님의 속상함을 너무 잘 알겠다. 그분이나 나나 아이를 보듬어 주려고 하고, 그 사정을 다 들어주고, 헤아려주어 왔기 때문에 근래에 그 학생이 보이는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있던 터였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급기야는 그 집에 가보겠다는 선생님에게 당부했다.(우리는 지난 학기에 학교 바로 앞의 그 집에 갔던 적이 있다.) '속상하다'는 감정만 잘 전달하고 오라고. 이것저것 할 말이야 얼마나 많겠냐만 그것만 하고 오라고. 근심에 쌓여있던 선생님은 조금은 가벼운 얼굴로 나갔는데 곧 아이의 가방을 가지러 아이와 함께 돌아왔다. 둘 다 말간 얼굴이었다.

어쩌면 나한테 필요한 것도 그것뿐일지도 모르겠다. '너희가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고도 또 이런 행동을 해서 나는 무척 속상해. 또 이럴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당황스러워.' 여기까지만. '선생님이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나는 좀 속상해요. '거기까지만.

꼰대의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는 그들에게 행동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감정 표현까지만 할까 보다. 그럼 꼰대로 가는 길이 좀 더뎌지지 않을까? 될 수 있으면 그 길을 밟고 싶지 않다. 정말이지 꼰대는 싫다.

IMG_0132.jpg 잔뜩 흐린 하늘, 그래도 내겐 빨간 단풍잎


*제목은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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