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타고 불쾌하지 않았던 김지영, 손~?

택시를 타고 기분 좋았던 경험이 있었나?

by 조이아

택시를 타고 기분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기다린 보람이 있네."가 시작이었다. 아니다. 택시 정류장에 서 있는 택시에 탈 때 "타도 되지요? **역 가주세요."라고 물은 게 먼저였다. 바보. 택시는 타라고 대기하는 건데 당연한 걸 왜 묻지. 그때부터 나에 대해 파악했겠지.

“퇴근하시나 봐요." 대답을 해야 하나. "네~." 했더니 "어디, ***다니시나?" 하며 근처 공기업 이름을 대셔서 가만히 있었다. 백미러로 계속 나를 보시는 기사님. (님이라고 해야겠지?) 대답이 없자, 손님들 모과향 맡으시라고 모과를 두었다며 눈짓을 하신다. 뒤를 돌아보니 모과 열 개 남짓이 푸른 망에 쌓여 내 머리 바로 뒤에 있었다. 속으로는 쏟아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며, "네, 향이 좋네요."라고 대꾸를 한 게 또 잘못이었다. "그렇게 두어도 두 달 지나면 향이 다 없어져요." 나는 왜 질문 같은 반응을 보였던가. "아, 두 달이나 가나 봐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또 왜 귀에 꽂고 있던 에어팟을 택시를 타고 안전벨트를 하자마자 귀에서 뺐던가. 후회 투성이다.


오늘의 만남은 매우 젠틀하게 시작되었다. 어제 수능일을 즈음해서 추워진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봄을 연상하는 흐린 카키빛의 양복과 와이셔츠를 갖춰 입으신 백발의 택시 기사님. 마침 오늘 백건우 님의 연주회를 예약하면서 '백발이 다 되셨네, 요즈음 사모님이 아프시다는데......' 하며 안타까워하던 내 마음이 그분의 뒷모습에 겹쳐 보였나 보다.

"선생님이신가, 분위기가 딱 그렇네." 아아, 내 얼굴에 쓰여있나. "네에......" 하자 "미술 선생님? 음악 선생님? 아, 영어 선생님이신가?" 이건 뭐, 꼭 대답하라는 질문. "국어요." 했다. "그럼, 일본어랑 우리말을 좀 비교할 줄 아시겠네요? 두 언어가 비슷한 점이 있나요?"로 대화를 이어가신다. "어순이 비슷하다고 알고 있어요." 했더니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지."로 시작된 말씀은 장황해졌다. 신라의 향찰과 이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당시 일본의 비사가 엮인 책을 해석할 때에 우리의 향찰식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일본어로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신라, 백제 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때 나는 또 실수를 저질렀다. "기사님, 죄송하지만 목적지를 변경해도 될까요?" 하고는 **역이 아니라 우리 아파트 이름을 얘기한 거다. 집에 혼자 있을 둘째 때문에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이런 수준의 이야기라면 견딜 수 있겠다 싶어서. 지하철역까지 가서 전철을 탄다 해도 2-30분은 족히 걸릴 것인데, 어차피 택시를 탔다면- 방금 전에 전철역 가는 버스를 놓쳤다. 11분 기다리기가 아쉬워서 택시를 탄 거였다. - 내는 돈은 비슷하다는 계산에서 집까지로 행선지를 변경한 것이다. 쉽지 않았다. 끼어들기가. 여기서 우회전해야 우리 집 방향인데, 사거리가 지나기 전에 얼른 말씀드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겨우 끼어들었다. 기사님이 열변을 토하시는 문장과 문장 사이를 침입해 행선지를 바꿔놓고도 말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라고 반응을 보였다. 그러지 말 걸. 기사님은 예전에 **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님을 3년 모신 적이 있다고 하신다. 어느 날 교수님이 논문을 이만~큼 읽어보라고 주셨고 읽어보셨다고. 그때 논문을 읽고 알게 되었다고. 또 다른 전문적인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으셔서 나는 또 "그건 어떻게 공부하셨어요?"라고 물었고, 교수님 따라 학회 할 때 참석해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10번 이상을 듣다 보니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네, 멋지시네요." 등등의 대답을 했다. 역사 이야기는 어느새 일본보다 우리 문화가 앞선다는 이야기를 지나 저 멀리 백제, 신라를 넘어 가야의 철기 문화와 칠지도와 '중국'이라는 나라명과 몽골의 칸 제국을 지나, 헥헥, 방탄소년단이 애국을 한다, 전 세계에 있는 아미들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배우게 해야 한다 등의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결론일 줄 알았다. 너무도 훌륭한 결론이라서 "말씀을 너무 잘하시네요."하고 대꾸를 했더니 조금 더 가서, 여론을 조작한 방송국과 소속사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셨다.


여기까지만 해도 다른 상상은 하지도 못했다. 다만 난방이 나오는 차 안 공기가 매우 답답해서 나는 멀미가 날 지경이었고, '하필이면 오늘 내가 왜 폴라티를 입었을까, 모과향이 솔솔 나는데 내가 여기서 창문을 열어도 될까, 안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왜 택시를 탔을 때 창문을 열고 닫는 일 따위도 기사의 눈치가 보이는 걸까. '난방을 틀어놓고 저렇게 얇은 봄 양복을 입고 있는 백발의 기사에게 내가 뒷문을 열면 안 되는 걸까' 따위를 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돌이나 문화가 애국을 한다는 것에서부터 베트남이나 유럽 등지에 우리가 한글을 가르친 사람들이 문화, 경제, 정치의 주요 인사가 되어 한국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주제는 갑작스레 변했다. "그런데 조국은, "으로. 그때부터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아, 이 말씀을 하고 싶으셨구나. 정권, 대통령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광훈 목사 이름도 나왔다. "대통령이 불교라 빨갱이"라는 부분을 수정할까 말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왜 택시 기사들은 다 보수적인가. 왜 나는 내 돈 주고 택시를 타놓고 듣기 싫다는 소리를 못 할까. 왜 나는 타면서부터 '조용히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할 생각조차 못했을까. 가닥을 잡은 연설은 곧장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과 비속어가 함께 나왔고 나는 택시를 탄 것을 후회했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한참을 가다가 기사님은 얘기 끝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다 왔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면서 일본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하셨다. 와, 목적지를 상정하고 기승전결을 다 전달하고 싶으셨구나. "몇 단지라고 하셨더라?" 나는 우리 집보다 덜 가도 되는, 내가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단지 숫자를 말했다.

"운전은 하시죠?" 전혀 무슨 의도인지도 모른 채 "네"하고 답했다. "10년 이상 되셨나?", "네에." 내릴 때가 다 되자, 처음에 택시 탔을 때부터 내가 아이돌 같은 분위기였다나, 나이가 서른세넷 정도 된 것 같은데 어려 보인다 등 말도 안 되는 드립(?)을 하신다. "결혼은 하셨고?", 에 이어 "아이는 있으시고?"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걸 묻고, 나는 왜 이런 걸 대답해야 하는지. 한 단지 앞에서 내려서 좀 걸었다. 다시 에어팟을 끼우고. 집에 다다를 무렵,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길래 결혼, 자녀 어쩌고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손을 씻으면서야 생각났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나? 그래서 그런 걸 물은 거였군.' 갑자기 열 받는다.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있는 걸까. 여자가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해야 하고, 자녀를 낳아야 하고 등등.


역시 택시는 타는 게 아니었다. 몸을 고되게 하고 시간을 좀 더 들이더라도 내가 듣고 싶은 방송을 듣고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게 좋지. '내가 또 택시를 타면......' 이런 생각을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마다 한다. 지난번 택시기사는 내가 억지로 대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말은 없었지만 이미 담배냄새를 장착한 차 안 공기로 멀미가 났고, 과격한 운전과 앞 차 운전자를 향한 욕설을 내뱉어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 전 기사는 자기 딸의 사춘기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너무 말을 안 들어서 때리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오래전이지만 어떤 택시기사는 출근시간 급하게 택시를 잡아탄 내게, 첫 손님이 여자라 재수 없다는 것을 다 들리게 말했던 적도 있다.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도 못해오다가 작년 여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에 남편에게 '나는 택시 타는 게 싫다.' 말했더니 매우 놀라더라.

내가 이렇다면 젊은 여성들은 어떠할까. 자신이 운전대를 잡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해도 될까? 강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승객이 다른 의견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할까? 나는 여전히 택시 기사가 불편하다. 때로는 무섭다.

IMG_0546.jpg 11월 어느 주의 시사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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