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음악가이고 싶었는데
피아노에 얽힌 추억이라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함께 한 세월 탓이다. 학원에서 한 발표회, 교내 대회에 나간 경험, 합창 반주를 했던 일.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면 그런 발표 자리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내 방에서 창을 열어두고 피아노를 쳤던 일이다. '은파'였던가. 연주를 시작하면 창밖에서 새들이 어찌나 지저귀던지. 내가 연주하면 진짜로 쟤들이 우는 건가 멈췄다가 다시 치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좋아하는 사람과 통화할 때 피아노를 쳤던 일도 있었지.
멋진 곡을 연주하고 싶어서 교사가 되고 한 번, 육아휴직 했을 때도 한 달인가 동네 학원에서 레슨을 받았다. 발트슈타인에 도전하면서는 '와, 악보 보는 것도 힘들구나' 느꼈다. 저 아래 낮은음이 라인지 도인지 바로 알아볼 수 없다니.
직접 연주해서 내가 아는 멜로디를 그려나가는 일은, 두 가지 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는 내 어설프고 서투른 음악을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 자꾸만 당황하게 되며, 또 하나 얼추 그 곡을 흉내 내어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너무도 근사한 경험을 한다. 하지만 막상 피아노 앞에 앉을 때는, 황홀한 마음으로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려고 연주한다기보다 시끄러운 속을 달래기 위해서가 많았다. 그럴 땐 쇼팽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한 시간 정도 책을 펼쳐놓고 쭈욱 앞에서부터 연습한 곡들을 연주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스르르 풀려있다. 피아노 연주 테라피라고나 할까. 그렇게 피아노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나를 달래 왔다. 그래서 내게는 오래된 피아노가 정말 귀했다.
그렇다, '내 피아노'는 추억의 물건이 되었다. 이사를 하거나 인테리어를 했을 때, 남편은 한 번씩 내게
"피아노 안 버려?"
"이번엔 버릴까?"
물었고, 그럴 때마다 발끈하거나 심각하게 그럴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토요일 밤 11시, 작은애는 불 끄고 자고 있고, ‘엄마 잔다‘ 하는 내게 큰아들이 힘없이 이렇게 말했다.
"내 방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거실 테이블에서 숙제를 하면서였다. 아이의 표정을 보며 저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중학생과 같이 쓰는 방이란 밤에는 불을 꺼야 했고, 큰 테이블이 있는 거실은 산만해질 수 있다. 둘째가 어수선하게 축구 연습을 할 때도 있고(1층에 삽니다), 왔다 갔다 하면서 내가 말을 걸기도 하니까. 무엇보다도 주중에는 기숙사에서 여럿이 부대끼며 지내는 아들이 다만 주말에라도 혼자만의 공간에서 충분한 쉼과 원하는 만큼의 학습을 하기를 당연히 원하지 않겠는가. 전에도 자기 방 갖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주말에만 있으니까‘ 하고 나 편할 대로 생각한 게 후회됐다. 그러자고 답하고 침대에 누워 마음속으로 책상, 침대를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 보았다. 지금은 안 쓰고 있는 붙박이장도 쓰고 하려면 어떻게든 피아노는 방에서 빠져야 했다. 이 슬픈 결말을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슬픔…
나중에 이사할 집을 떠올릴 때도 피아노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벌써부터 고민이었는데 2년 먼저 처리하면 어때 하는 생각과 2년 동안이라도 더 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이 서로를 공격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피아노를 치는 현재의 나를 파악하고, 점점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아파트라는 공동주거공간에서 이제는 안녕해야 될까 하는 생각의 자리가 더 커졌다.
다음날 내 결심을 들은 남편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고 바로 와주신다는 기사님께 폐기를 부탁했다. 바로 온다고? 마지막 연주도 못해보고? 피아노를 칠 시간에, 현관이며 방문 앞을 치워놓는 게 더 급했다. 아쉬웠다. 음악과 더불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악기 연주는 피아노뿐인데.
“화려한 국제무대에 서는 연주자만이 평생 음악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삶의 기억 곳곳에 음악을 새겨 넣고, 음악으로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며 좀 더 나은 미래의 나를 상상할 수 있다면 누구든 음악가로 살 수 있다.”
-송은혜, <인생은 프랑스 춤곡처럼>, <<우리, 나이 드는 존재>>
남편은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등 돌린 채로 건반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남편은 이런 소릴 했다.
“요새 그, 엄청 가벼운 건반이 나왔다던데?”
묵묵부답의 나.
“진짜 가볍대.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다네? 그 뭐였더라, 입으로 불면서 연주한다던가? 이름이 멜로디언이었나?”
이런 농담을 하는 자가 내 남편이다. 이과 남편.
피아노가 집을 나가고 그 자리가 텅 비었다. 그 방에 있던 책상과 침대 위치를 조금 바꿔놓았다. 외출하고 돌아온 둘째에게 방을 보이며,
“이것 봐, 엄마 울었어.”
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방을 둘레둘레 보면서 눈동자만 움직이고 뭐라 말은 없이 ‘응?‘ 하는 거다. 피아노가 빠진 걸, 내가 운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들이라니.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이런 남자들과 살면서 속 터질 때, 혹은 일하고 살림하며 그저 소진되는 기분일 때 내게는 피아노라는 해방구가 있었다. 피아니스트의 연주보다는 느리고, 자꾸 멈칫하며 틀리는 부분이 있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면서 나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어설픈 연주더라도 틀리는 부분에 대한 기억은 내 안에서 삭제되고 그저 내가 아는 선율이 아름답게 미화되었다. 위대한 예술가의 일부, 정말 작은 티끌이라도 내 것으로 손수 재현하는 기분, 쇼팽이 얼마나 섬세한지 베토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느낄 수 있는 그런 고양감을 피아노는 선사했다.
하루 만에 이렇게 과거형이 되어버린 피아노와 이별하며 2년 뒤 이사하고는 전자건반을 구입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때까지도 피아노를 향한 내 사랑이 그대로라면. 많이 그리울 거다. 보내기 전부터도 그리웠으므로.
그런데 이 피아노에 대한 애정도 참, 아들을 위한 마음에는 비할 수가 없네. 남편은 괜히 의문의 한패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