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찬양가
다를렁 다를렁
남색 바지를 입은 한 남자를 찬양한다. 이미 한 차례 아니 열 번이나 찬양한 바 있으나 풍자적인 웃음이었다면 이번에는 진짜 찬양이다.
나를 탓하지 않는 사람
명절이면 수산시장에 들러 회를 떠 친정으로 향하는 우리는 이번에도 그렇게 단골 상회로 향했다. 온누리상품권 취급이 붙어있는 걸 보자마자 저걸로 하겠다고 충전을 했다. 큐알코드로 결제를 하고 결제금액을 신중하게 눌렀다. 0 하나를 더 붙일 수 있는 게 나니까. 사장님은 전화번호를 영수증 뒷면에 쓰라고 하셨고, 영문도 모르는 채 그렇게 했다. 회 뜨는 걸 기다리고 있노라니 또 사장님이 친히 저어기로 가서 사람들 줄 서 있는 데로 가라고, 거기서 환급받으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들들을 상회에 세워두고 하라는 대로 움직이는 나와 남편. 과연 사람들이 많았고 놀이공원 어트랙션 줄처럼 줄지어 이동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국산 수산물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행사를 하고 있었다. 아아, 온누리상품권 환급을 받는구나. 이거랑 저거랑 샀으니 둘이 영수증 하나씩을 들고, 역시 우리나라 최고다 했다. 신분증을 차에 두고 왔는데 될까 했더니 남편은 모바일 신분증이 있다며 자랑했다. 내가 먼저 스태프 앞에 섰다. 신분증 달라고 하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이었는데 핸드폰으로 내 연락처를 확인하더니 선뜻 내어주는 온누리상품권! 기쁜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남편은 영수증만 든 채 나를 따라온다. 내 손엔 영수증과 상품권이 들렸는데.
"왜?"
"등록을 안 했나 봐."
"응? 무슨 등록?"
"등록이 안 된 것 같대."
아까 사장님이 자기 핸드폰으로 번호를 누르고 결제금액을 누르고 하래서 하란대로 했는데, '등록완료' 버튼을 안 눌렀던가 보다, 누가? 내가!
"아, 내가 그랬나 봐"
마음이 다급해
"맞아, 마지막에 그걸 누르는 거였는데 나는 사장님이 해주신 줄 알았지. 어떡하지?"
했다.
"할 수 없지. 다시 가서 해오라는데, 그냥 가자."
줄 서느라 아들들이 이미 회 상자를 들고 우리 곁에 와 있었고, 다시 가게에 갔다가 저 긴 줄에 합류할 용기는 없었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 서둘러 친정으로 가야 했고. 차 안에서 남편이나 애들은 별말이 없었으나 괜히 찔리는 나는 혼자 말했다.
"아, 어떡해, 아까 내가 누를걸. 아, 내가 안 눌렀으면 사장님이 좀 눌러주시지."
묵묵부답인 남편을 향해
"그냥 박주희 일일체험한 셈으로 쳐. 오빤 이런 경험 없었지?"
했다. 하필 등록 안 된 영수증을 남편이 들고 있어서 그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하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온누리상품권 어플을 깔고 사용법을 알고 있는 게 어디냐며, 남편은 이런 거 없지 거드름을 피웠다.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데도, 아까운 마음에.
우리 집에 잘하는 사람
친정부모님, 동생네 부부와 함께 늦은 점심을 먹었다.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 우리가 또 동생네가 준비한 술 등으로 즐겁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이럴 때마다 남편은 분위기를 돋워 모두가 MBTI는 E려니 추측하게 한다. (본인은 I로 바뀐 지 오래라 한다.) 나는 속으로 흐뭇하다. 남편이 우리 집에서 진심으로 즐겨서 그렇다.
하룻밤을 자고 엄마표 음식을 싸는 동안, 남편은 아빠의 요청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윈도우 업데이트를 도와달라고 하신 거다. 아빠랑 나란히 앉아서 유튜브를 참고하며 찬찬히 작업을 하는 모습이라니. 음식을 담고 가방에 넣으면서 나는 절대로 못할 일을 내 남편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빠한테 뭔가를 가르쳐드린다는 건 성질부터 나고 뭔가 차분하게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올케 L도 참 기특하다. 부모님께 잘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부모님 핸드폰을 바꿨을 때 어플을 깔아드리고 했단다. 나랑 남동생은 부모님 일에 오히려 거리를 두는데, 저 사위와 며느리는 참 발 벗고 나서준다. 나랑 동생이 배우자를 잘 고른 것인가, 우리 남매 성격이 안 좋은 것인가 알 수 없지만 둘이 참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우리 둘 다 배우자를 잘 모시고 살아야 한다.
베스트 드라이버이자 진정한 살림꾼
그런데 남편한테 이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오는 길은 예상외로 막혔다. 추석 당일에도 이렇다니. 가다 서다 반복하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멀미를 하고 말았다. 어쩜 아이들 보여준다고 영화를 하나 틀어준 걸 자꾸 뒤돌아 보다가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너무 아팠고 속도 안 좋아 네 시간 내내 남편이 혼자 운전했다. 미안했는데 남편은 그저 장난을 치면서 운전을 했다. 멀미로 눈을 감고 있으면서 집에 가면 안마를 해줘야지, 집안일 다른 건 다 내가 해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음식을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고양이 사료 그릇을 닦고 다시 부어주고 할 때 남편의 손길이 많이 닿았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남편을 찬양하는 기록을 해야겠다고.
다를렁 다를렁, 남색 바지를 입고
김현철의 '까만 치마를 입고'라는 노래가 있다. 단순한 가사인데 노래의 앞뒤에 그의 독특한 흥얼거림이 매력적이다. 참 좋아하는 노랜데 <진아의 희망곡>에 그 허밍을 '다릴롱 다릴롱' 글로 써주어서 재미있었다. 맞네, 다릴롱 다릴롱. 근데 어떻게 들으면 다를렁 다를렁 같기도 하다. 이런 여음은 옛 노래 향가나 고려가요에도 나오는데. 국문학을 공부했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럼 나는 신라 향가 중에 기파랑이라는 화랑을 찬양하는 노래 제목을 본떠, '찬이박사가' 이런 걸 쓸까. 남편한테
"찬기파랑가 알아?"
했더니
"뭐?"
모른단다. 그래그래, '찬기파랑가'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 테니 그저 '까만 치마를 입고'를 변형해야겠다. 노래에서는 까만색 치마를 입은 여자를 보고 반하지만, 나는 남색 바지를 입은 남자에게 꾸준히 반해야겠다. 숫자에 약하고, 수익을 챙기는 데에도 많이 약하고, 멀미에도 약하고 실수를 잘하는 나는,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고 있다. 부부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너무 감사하다, 라고 쓰고 싶지만 내가 무얼 보완하는지는 모르겠네. 아! 내가 하는 건, 남편 옷 골라 사주기. 이런 건 잘한다. 조만간 또 남편 바지를 한 벌 골라줘야겠다. 어쨌든 남색 바지만 입는 이 박사님, 존경합니다.
일단 되는대로 파자마를 남색으로 사다 주었다. 저 위에 사진이 그것, 겨울이 털이 한 올 붙었다. 고양이 겨울이도 우리 집에서 남편을 제일 좋아하는 걸로 보아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