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건 언제부터일까?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곤 급한 일이 있어도 잘 달리지 않던 나였다. 운동 신경이 없어 달려도 남들 걷는 속도랑 크게 차이가 없기도 했다. 운동이라곤 좋아하지 않던 내가 중년에 접어들어 달리기라니. 내게 달리기는 뭔가 운동을 잘하는 사람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고 날렵한 몸으로 스피드를 즐기는 운동선수들만 연상되었다.
이런 나를 달리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피크민'이라는 게임이다. 피크민의 게임 캐릭터는 걸음수에 비례하여 레벨이 올라간다. 그런데 높은 레벨에 올라갈수록 여러 가지 미션이 덧붙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꽃을 심어야 하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특정 꽃을 심어야 하는데 대체로 걷는 것으로 특정 꽃의 모종을 모을 수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원하는 모종을 얻을 수 없는데 그럴 때는 달리면 된다. 걷는 속도가 빨라지면 꽃을 많이 심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피크민 캐릭터를 키우는데 열심힌 나는 어느 날 갑자기 특정 꽃을 심어야 하는데 모종이 부족해 뛰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시간은 '4분'
'에이 사분 정도야 뛸 수 있겠지.'
그렇게 뛰기 시작한 나는 알게 되었다.
막상 달려보면 1분도 정말 긴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4분은커녕 1분도 채 달리지 못하는 심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40이 넘어 내 나이는 중년에 해당하게 되었는데 그런 중년임에도 운동만은 가느다라고 짧게만 하고 있었던 나였다. 평생을 운동하지 않던 나이니 그 정도 달리고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을까? 그런데 달리다 보니 내가 늘 걷기만 하던 천변에 달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다. 사실 내 주변에서 달리기를 추천하는 친구들은 많았다. '주수희'의 맏언니 '희'언니는 나에게 '나이키 런데이 어플'을 알려주었었다. 그때도 한두 번 실행해 보고 달리지 않던 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어플은 소리를 켜고 따라 했어야 했는데 난 그러지 않았다. 하하) 마라톤에 나가기도 하는 내 친구는 늘 나에게 달리기를 권했었다.
그렇다면 한 번 달려볼까 하는 나의 결심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남편. 남편은 일 킬로라도 뛸 거라면 러닝화를 신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해 보이는 운동화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지만 근처 아웃렛에서 그리 비싸지 않은 러닝화를 달리는 나를 상상하며 샀다. 러닝화를 사고도 자주 달리지 않던 나였지만 1킬로를 쉬지 않고 달리기를 목표로 달리는 사람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막상 달려보니 1킬로도 내겐 너무 긴 거리였다. 내가 사는 집 주변의 천변 둘레길에는 중간중간 다리가 놓여 있는데 다리와 다리 사이가 약 500m에서 700m 정도 된다. 그래서 다리 하나 달리고 다리 하나는 걷고 (그러다 보면 다리 두 개를 걷게 된다. 하하) 그렇게 걷고 뛰고를 반복하는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워치의 운동 버튼도 켜지 않고 달리던 나였는데 나의 달리기 기록(?)들을 저장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달리기 기록을 저장하다 보니 조금 더 많이 뛰고 싶어지고 조금 더 빨리 뛰고 싶어진다. 그렇게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가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우선 나는 발목과 무릎이 약한 편인데 길게 뛰지 않음에도 달리고 들어오면 발목과 무릎이 약간 아프기 시작했다. 특별한 준비 운동 없이 또 마무리 운동 없이 달렸기 때문인가? 40년을 안 뛰다가 갑자기 달리면서 너무 나를 살피지 않은 것은 아닌가. 그렇게 발목과 무릎이 아프면 며칠 달리기를 쉬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뛰면 달리기가 더 힘들어졌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이걸 계속하려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우선 준비운동을 하고 출발하기 그리고 좀 더 쿠션감이 좋은 운동화를 신기. 무릎보호대와 발목보호대를 착용하기. 그런 준비를 갖추니 좀 더 빨라지고 좀 더 길게 달려진다. 그런데 달리다 보니 알게 되었다. 사실 더 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는 걸..
달리다 보면 당연히 숨이 차는 순간이 온다. 오늘은 이만큼만 뛸까? 이쯤이면 일 킬로일 텐데 이 정도만 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제 이 정도였으니까 오늘은 요만큼만 뛰어야지.
끊임없는 내적갈등이 생겨나서 나를 멈추게 한다. 그렇게 한 달여를 달렸으나 1.5킬로 내외를 넘지 못하던 내가 새로운 운동화를 신던 날, 오늘은 한계를 정해 보지 말자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주저앉히지 말자고. 그렇게 결심한 그날 나는 더 이상 못 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딱 십 초만 더 뛰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날 나는 무려 3킬로를 쉬지 않고 달렸다. 결국 나를 뛰게 하는 것도 나를 서게 하는 것도 결국 나였다.
달리는 사람이 된 나는 내 일상 순간순간에도 결국 나를 달리지 못하게 말리는 사람이 나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일을 내가 어떻게 해. 저런 건 타고난 사람이 있겠지. 나는 못할 거야. 이런 생각을 나에게 제일 많이 주입한 사람. 그 사람은 결국 나였다.
나는 이제 3킬로 정도는 쉬지 않고 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3킬로라는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뛸 수 있는 곳까지, 그렇게 더 멀리까지 나가는 나를 밀어주고 싶다. 그렇게 내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조금 더 뛸 수 있는 사람. 이게 달리기를 시작한 나의 목표이다.
(@표지사진은 열심히 천변을 달리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