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에너지의 방향을 바꿀 것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열등감을 느꼈다. 열흘이나 되는 추석 연휴, 우리나라를 벗어난 사람도 있을 테고 특별한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 나는 이렇게 내 방 침대에서 눈떴는데. 꿈을 꾼 것도 아닌데 같은 직업을 가진 팀원들이 생각났다. 여행 중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늘 여유로워 보이는 그들이 갑작스럽게 부러웠다. 어쩌면 오늘 내내 내 내 곁을 머물던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마트에 가서는 졸업생을 봤는데 부모님과 함께였다. 다정한 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아 눈길이 갔는데 명품 티셔츠와 운동화가 눈에 띄었다. 쳇, 다들 잘 살고 있잖아.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은 분명 아니다.
최근 즐겁게 본 <은중과 상연>을 떠올리는 하루였다. 어제 들었던 여둘톡 탓이기도 하다.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162화, '은중과 상연, 우정과 우정을 둘러싼 것들'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은중과 상연>은 82년생 두 친구의 서사를 다룬다. 초등학교 때의 첫 만남에서 시작해, 중학교에서 친해졌다가 헤어지는 둘. 아역들의 연기에 감탄하며 감상했다.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재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둘의 애증은 30대 영화 제작사에서 악연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끝인가 싶었지만, 40대가 되어 돌연 상연이 은중을 찾으면서 둘은 다시 연결된다. 80년생으로 그들과 생의 많은 부분이 겹치는 나로서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두 친구가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질투한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이 생각났고, 상연이 자신의 죽음을 지켜봐 달라고 은중에게 부탁하는 내용은 영화 <룸 넥스트 도어>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 <어떻게 지내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은중이에게 이입하면서 보았단 얘길 많이 들었다. 이야기의 시작과 맺음이 극중 시나리오 작가인 은중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은중이를 좀 더 보편적인 감정을 지닌 인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어제 여둘톡에서 황선우 작가님은 상연이에게서 자기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하셔서 의외였다. 시청자들이 '은중과 쌍년'이라고까지 부르는 상연이가요? 왜요? 누구나 감정 표현에 서툴고 잘하고 싶으면서도 실수하기도 하고 그럴 때가 있지 않냐, 그런 점이 자기랑 비슷하다는 얘기해 주셨는데, 맞다, 분명 내 안에도 있다. 오늘 나는 상연이처럼 외로웠다. 괜히 삐죽대면서 부러워하고 미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질투를 느끼는 대상은 나와 너무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고만고만했던 우리를 기억하는 관계에서부터 질시는 발생한다. 은중과 상연, 나폴리 4부작의 릴라와 레누는 유년을 함께 보낸 사이다. 어린 시절은 다른 사람인척 꾸며낼 수 없는 때. 본모습을 알고 있는 서로는 그래서 달라진 서로를 의식한다. 예전엔 무람없이 친했는데 싶으면서도 속내를 편히 꺼내놓질 못한다. 나 또한 그렇다. 어릴 적 친했던 친구가 더 이상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느끼고는 먼저 연락하기가 꺼려졌다. 가끔 다른 친구들로부터 그 애랑 연락을 하느냐 얘길 듣는데, 늘 내게 묻는 걸 보면 서로도 연락하지 않는 걸 안다. 만날 때마다 배려받지 못한다고 느끼고부터는 좋은 사람들만 내 곁에 두고 싶어 더 이상 애쓰지 않는다.
달리기(언제든 멈추고 싶은 나의 달리기) 도중 방향을 바꿀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놀란다. 지금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므로. 엄청난 경관이 아니더라도 그저 노을빛 구름, 넓은 하늘뿐이어도 그렇다. 저녁 달리기라 그럴까. 너무 다른 하늘빛이 펼쳐지는데 그러고 보면 방향을 바꾼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어제 읽던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에 대한 조지 손더스의 해설 덕분이다.
"지금보다 나은 일을 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냥 우리의 관점을 조정하고, 타고난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은중이 한 일이 바로 이거다. 절연을 했으나 죽음을 앞둔 상연이 은중을 찾아왔을 때, 은중은 자기답게 타고난 대로 친구를 헤아리고 돌보는 일을 했다. 상연의 곁을 끝까지 지켜주는 은중이 덕에 우린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은중은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던 커다란 슬픔과 아픔을 겪었지만 그 경험으로부터 작가로서 크게 성장할 걸 안다. (은중이 마음을 바꾼 데에 비하면 톨스토이의 위선적인 주인은 더 놀라운 변화를 보여준다.)
아침부터 주변 사람들을 질투하던 나도 내 시선의 방향을 바꿔본다. 은중이가 보여준 태도와, 톨스토이 주인의 변화가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씩 사람들을 만나고 올 때면 다들 멋지게 사는구나 부러울 때가 있다. 근사한 걸 걸치고, 멋진 경험을 누리고 지내는 사람들. 하지만 나를 화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아닌, 그저 부러울 뿐인 멋진 이들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가. 상연이 끝내 은중을 찾은 것도 자기 곁에 좋은 사람을 두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로부터 받을 사랑을 알기 때문에. 나도 그동안 다져온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며 내 주변에 사랑 많은 이들을, 시기의 마음은 접고 그저 다정하게 바라보겠다. 지금 내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 사랑도 커질 것이므로.
@ 팟캐스트,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162화
@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 각본 송혜진
@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어크로스
@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 엘리
@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