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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는 내일을 가져다주는 숨은 작가들

창작자와의 대화

by 조이아

'숨은 작가 찾기 대회'라는 것이 올해 우리 시에서 열렸다. 방학 동안 준비해서 개학 때 제출할 것을 부탁했다. 작가에 관심이 있는 중학생들이 있을까 했는데 과연 있었다. 포스터를 붙이자마자 내게 찾아와 질문을 하고, 정말로 개학하고 작품을 가져왔다. 웹툰, 시, 소설, 수필 이렇게 네 분야. 분야별 작품이 하나면 그대로 대회에 내보내도 되었는데, 아이들은 서로의 경쟁자가 되었고 착실히 심사를 한 끝에 한 작품씩 네 분야에 출품했다. 기쁘게도 우리 학교에서 셋이나 본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지도교사로서 아이들의 2차 심사, 작가들의 북콘서트를 준비했다.


3분의 발표와 5분의 질의응답이라고 했다. 프레젠테이션 원고를 미리 내고, 발표 전에 아이와 준비 또 준비. 분야별로 대회일자가 달랐기 때문에 일대일로 준비했다. 대회 직전에는 타이머를 두고 발표를 시켜보고, 예상 질문을 만들어 둘이 대담했다. 장장 두 시간 이상이나.

학생하고 이렇게나 오래 대화를 한 경험이 있었던가? 사고를 친 아이가 아니고서야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콘텐츠를 두고 대화한 건 처음이라 나로서도 흥미로웠다. 단 둘이서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다고 할까. 나 또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질문들을 받으면 어떨까 상상하고, 아이의 대답에 나도 자극받는 시간이었다. 작품에 대한 것, 작품 외적인 것. 영향받은 작품이나 작가, 작품 만들면서 즐거웠던 점이며 힘들었던 점, 작품을 만들기 전과 후의 변화 등. 자꾸 질문하게 되었고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답변을 구상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회에서 발표는 학생이 하지만, 발표 내용을 조리 있게 전달하고 질의응답하는 과정에서 나도 긴장하게 되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준비했던 거라 다행이다, 매끄럽게 잘하고 있어 되뇌고 말이다. 다른 학생들이 받는 질문들도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받아 적었다. 웹툰 분야는 그 분야만의 질문이 있었지만 창작자에게 할 수 있는 질문은 공통적일 테니까.


웹툰 분야에 참가한 우리 반 학생 하고도 두 시간 정도 대화하며 아이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경험이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라 '선생님도 그려줘' 하며 긴장도 풀고 여러 차례 발표 대본을 읽히고 들었다. 끊어 읽을 부분, 강조할 부분, 비언어적인 표현도 코치했다. 작품 자체가 주는 의미가 매력적이어서 어떻게 해서 이걸 만들게 되었는지 창작 동기를 묻다가, 그림 그리다가 힘들어질 땐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제가 제 실력을 의심할 때, 흔들릴 때 저는 그동안 제가 해놓은 것들을 봐요. 보다 보면 다 제가 그린 것들이고, 그건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쌓아온 것들이란 걸 저는 알아요. "

그동안 해놓은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다름 아닌 자신이 이루어낸 것이란 걸 다시 알며 흔들린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이다. 맞아, 선생님도 그러는 것 같아. 브런치에 써둔 글의 제목들만 보더라도 이걸 해낸 나를 마주할 수 있지. 듣자마자 한동안 쓰기에 흥이 안 났던 내가 생각나면서 나를 위해 이 말을 붙잡아놓고 싶어 바로 받아 적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라서 근사한 웹툰을 만들어냈나 보다 다시금 생각했다. 판타지이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세계 바깥의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내면이 단단한 창작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올해 스케줄러 맨 앞에 써둔 문장이 마침 이렇다.


"시간의 밀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산은 정확하다."

-최인아,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내가 쌓아온 것들이 나를 긍정하게 한다. 창작자에게 어제는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오늘은 내가 한 작은 노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어떤 날일까. 내게서 만들어진 것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었다는, 위로가 되었다는 답장이 도달하는 내일이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다음 주에는 소설 분야의 학생 작가님을 모시고 대회에 참가한다. 우리 독토리 학생이라 그 친구와의 대화 또한 기대가 된다. 우리는 어떤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게 될까. 또 나는 어떤 자극을 받아올까. 기대하는 내일을 가져다준 우리 작가님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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