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대화하기 원합니다
중학교 때 친구가 자기 얘기 잘 들어주는 애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내 똑똑한 친구 효짱, 언제나 할 얘기가 많았지.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없는 타입이다. 하지만 듣기는 자신 있다. 동료들, 친구들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건 물론이거니와 학부모의 하소연도 잘 듣는 편. 듣다 보면 내게 원하는 게 뭔지도 느껴져서 그렇게 말해준다. 듣기에는 섬세함이 필요한 고로 에너지가 많이 든다. 요새 내가 정성껏 듣는 상대는 우리 집 고양이.
우리 겨울이는 과묵한 편이다. 어디 고양이가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집을 한참 비웠다가 들어올 때 '아앙~'하고 인사하지만 대체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겨울이랑도 대화라는 걸 한다.
이른 아침 거실로 나가면 기지개를 켜면서 '아아' 소리를 내며 아는 체를 한다. 요가 자세로 개 자세(다운독)를 했다가 다가와 얼굴을 들이대며 만져달라는 이 아이, 쓰다듬지 않을 수가 없다. 볼을 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턱밑을 긁어주는 그 시간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한다.
저녁을 준비할 때면 내 근처를 서성이다가 자리를 잡고 눕는다. 눈이 마주치면 소리를 내며 자꾸만 어필한다. 자기 여기 있다고. '겨울이 밥 줘요?' 하면 '야앙~' 하는데, 나는 그 대답을 들으려고 '울애기 밥 줘요?', '겨울~, 밥 먹을까?' 하고 자꾸자꾸 묻는다. '아앙~'하는 앙탈 소리라니, 한 번만 듣기에는 너무 아깝다. 밥 주면 나는 안 봐주고 그릇에 얼굴을 파묻으니까. 밥 그릇을 내려놓기 전까지 계속 겨울이에게 말을 건다.
겨울이가 의자나 탁자에서 뛰어내릴 때면 정말이지 귀여운 소리가 난다. 일부러 내는 소리는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그 소리를 나는 꽤 좋아한다. 의성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 소리. 겨울이가 내는 소리에는 잘 때 내는 숨소리도 있는데 가끔 소리가 커진다. 그럴 때면 오늘 잘 놀았나 싶다.
식구들이 다 자러 들어갈 때면 겨울이가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꽤 큰 소리로 '에옹~' 혹은 '이아옹~'하는 거다. 작은 털뭉치 공을 입에 물고는 고양이다운 소리를 낸다. 놀자고 그러는 건가, 다들 어디 갔냐고 하는 건가. 나는 침대 안에서 겨울이가 야옹할 때마다 '으응, 그래~'하고 대답하게 된다.
의사소통은 같이 하는 것. 겨울이가 알아듣는 말은 일단 자기 이름. '겨울이', '겨울아', '겨울겨울~'하고 자기 이름을 부르면 쳐다본다. '으응~' 소리 낼 때도 있다. 웃을 수밖에. 남편이 '츄르츄르~!'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앙앙~' 하고 말한다. 눈을 커어다랗게 뜨고, 츄르 어디 있냐며. 밥 먹으라는 말도 알아듣는다. 습식 사료를 먹다가 남겨놓고 딴 데 가는 버릇이 있다. 그럴 때 '겨울아, 밥 먹으러 와.' 하거나 '얼른 와서 밥 먹어~'하면 그 소릴 듣고 겨울이가 와서 밥을 먹는다. 진짜로.
하루에 두 번 이상 겨울이를 안아 올린다. 아침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눈곱을 떼어주기 위해서다. 안기기 싫어하면서도 체념한 듯 안겨있는 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럽다. 애기 때는 무릎 위에서 잠들기도 했었는데 이제 무릎 위에 올리면 부르르 떨며 다른 데로 가버린다.
잠들었을 때를 제외하고 겨울이의 시선은 대체로 사람을 향해 있다. 겨울이에게 늘 주시당하는 기분은 꽤 좋아서 겨울이의 눈빛만으로 주인공이 된 듯하다. 퇴근 후 소파에 기대어 잠들었을 때, 겨울이가 내게 가까이 와서 냄새를 맡고 갈 때가 있다. 안 그러던 사람이 왜 저러나 하고 나를 살피는 느낌이었다. 자주 눈을 맞추고 눈뽀뽀를 받는다. 그 황홀함에 답하려고 나도 같이 눈뽀뽀를 해주는데 겨울이도 기분이 좋을까? 겨울이 마음을 알아차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지금부터라도 국어교육을 시킬까? 겨울아, 나는 잘 듣는 사람이야. 말만 해.
겨울이가 내게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나도 겨울이의 요구와 감정에 민감하고 싶다. 듣기는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헤아리는 일이다. 겨울이의 표정과 눈빛을 두루 살피며 대화하고 싶다. 꿈에서도 겨울이를 만날 때가 왕왕 있는데 거기서도 겨울이는 조용하다. 나는 너의 속이 많이 궁금해, 겨울아. 더 귀 기울일 테니 마음을 보여주렴. 11월, 두 돌이 지난 고양이와 계속 친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