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 듣고 마음에 남기는 일
주말을 마무리하며 이훤 시인의 <청년이 시를 믿게 하였다>를 펼쳤다. 일기, 에세이, 사진과 문장 사이를 한없이 거닐다가 '수어'라는 시에서 오래 머물렀다.
"물속 깊이 들어가도
우린 듣습니다"
고등학생 때 수어동호회에 찾아가 더듬더듬 손가락을 움직여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비장애인 입장에서 보통 '물속'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곳이다. '듣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품고 시를 읽어서일까, 누군가의 마음이라는 깊은 물속. 그 속으로 조심스레 잠수해 들어가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스쳤다. 그건 어쩌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남편이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했다. 나는 "응, 맞아요"하면서 대답했지만, 눈은 스마트폰 속 인스타그램을 훑고 있었다. 남편의 이야기도 내 듣는 척도 평행선을 그렸다. 듣고는 있었지만 마음엔 닿지 않았다. 그를 무시했다는 걸 깨닫고 많이 미안했다.
아들연구소 최민준 소장님이, 두 손으로 아들 얼굴을 붙들고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해야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하시던데. 아, 나도 잘 들으려면 먼저 몸부터 달라져야 하는구나. 눈을 마주치고,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듣겠다'는 태도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듣기의 첫 번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듣는 건 귀로만 하는 일이 아니니까.
두 번째는 기억(기록)하는 것. 대화 속에서 알게 된 사소한 정보들, 예를 들면 친구의 생일,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 이름, 남편이 유독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 직장 동료가 손목을 다친 이유 같은 것들. 그런 이야기들은 들은 순간은 분명 집중했지만 신경 써서 기억 창고에 넣어두거나 적어두지 않으면 너무 쉽게 흩어져 버린다. 그래서 자주 적어야 한다. 기억(또는 기록)은 '당신의 이야기를 소중히 여겼어요'라는 대답 같다. 차 문을 열다가 손목을 삐끗했다는 직장 동료의 이야기를 흘려보내지 않고 잘 잡아두어야 다음에 마주쳤을 때 손목은 좀 나아졌는지 물을 수 있으니까.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여러 번 되묻지 않아도 되니까.
세 번째는 실천. 가끔씩 버럭 해버리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아이가 내비칠 때 그 말을 경청했고, 일기에 적었고, 반성도 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나는 여전히 잘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듣기는 귀로 시작되지만, 행동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닐까. 외투 좀 옷걸이에 걸어달라는, 아이를 향해 매일 반복되는 잔소리가 그대로 튕겨 나온 것이 바닥에 놓인 외투를 통해 너무나도 잘 보인다.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그건 진짜로 들은 게 아니란 걸 요즘 더 자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은...사랑. 때로 소리로 하지 못한 말, 표현되지 않은 마음, 혹은 말조차 포기한 침묵까지. 그 모든 것을 듣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 마음이란 열 길 물속보다 더 깊다고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그 깊은 곳으로 -때로는 어두울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기꺼이 들어가고 싶어진다. 겉으로 드러난 말보다, 그 말 아래 잠겨 있는 마음을, 표현되지 않은 단어들을, 머뭇거림의 결을, 침묵의 진심을, 당신의 깊은 곳까지 가서 듣고 싶은 마음이 여기 있다.
그렇게 물속에서도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마음을 향해 계속 헤엄쳐 가고 싶다. 언젠가는 소리 없이 말하고, 말없이 듣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듣는다는 건 사랑의 가장 조용한 방식인 것 같다. 게으르지만 진한 마음을 담아 오늘도 그 사랑을 키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