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의 컵,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할 때 그 사이엔 컵이 있다. 마주 보거나 같은 방향을 향해 얼굴을 두고. 타로 카드의 네 가지 원소 중 물은 관계를 의미하는데 컵으로 그려졌다는 게 새삼 신기하다.
집중하고 있는 관계는 아들들. 육아는 언제 끝나는 것인가. 이제 고3, 중3이 되는 아들임에도 알아서 크지는 않는다. 고3을 앞둔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 남편도 나도 눈치를 보게 된다. 방학임에도 학교 일정 대로 기숙사에서 지내는 큰애는 요새 유독 힘들어한다. 멀리 있는 아들에게 신경이 가있기는 하나 본의 아니게 아들을 섭섭하게 할 때가 생긴다. 자꾸만 늦잠을 자게 되는 이번 주, 이른 아침 ’엄마’하고 부른 톡에 대답 못한 것이나, 핸드폰은 충전시켜 두고 드라마 보다 잠든 밤엔 또 ‘엄마 아직 안 주무세요?' 건넨 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든 것. 아이가 핸드폰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어서 그때를 놓치면 시간을 흐르고 나는 그저 미안할 뿐이다. 요새 아들한테 엄마가 필요한 시기인가 보구나 생각하면서도 그 요구에 응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
아들과의 대화는 일방향으로 흐르는 건지. 큰애가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과 다르게, 둘째 아들한테는 자꾸 애걸한다. 대화 좀 하자고. 나도 방학, 중학생도 방학이라 함께 있는 시간은 긴데 소통하는 건 쇼츠만큼 짧다. 아침에 한 시간 정도를 깨우고, 점심을 같이 먹고, 또 저녁도 같이 먹는다. 그 사이사이 나는 뭘 먹고 싶은지 묻고, 영화라도 볼까 도서관 갈까 제안하고 연신 거절당한다. 아들들과 나의 관계를 보여주는 카드가 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가까이 다가오는 관계는 무시하는 상황이 요즘의 우리 같다. 각자 혼잣말을 하는 기분.
컵 카드가 말하는 물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형체가 달라지고 담기는 컵에 따라 달라지는, 흐르는 속성의 물이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것은 왜일까. 타로 카드에 컵에이스 카드가 나오면 괜히 기분이 좋다. 흘러넘치는 물 그림을 보면, 풍성한 감정으로 좋은 관계로 이어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커질수록 흘러넘치기 마련이고 마음 또한 숨기기 어렵다. 아들에 대한 내 마음도 그럴 거다. 중학생이나 된 아들이 이뻐서 자꾸 들여다보고 싶고 사랑스러운 만큼 내게 보이는 차가운 태도엔 속이 상하다. 그런데 엊그제 만난 동료에게 중학생 아들이랑 하루 종일 같이 지내느라 힘들다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들도 엄마가 방학이라 힘들 거예요.”
엄마가 방학이라 밥도 챙겨주고 좋은 거 아닌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정말 싫을 것 같다. 방학이라 신날 텐데 엄마도 방학해서 내내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아, 이 선생님 어떻게 알았지? 에이스 컵 카드처럼 물이, 애정이 흘러넘치면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구나. 엊그제 본 드라마에 나온 시가 생각난다. “다정이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아들에게 다정한 엄마이고 싶고,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이고 싶은 건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부모도 그에 대처해야 한다고 몇 년 전부터 되뇌고 있지만 또 다정한 모자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큰아들이 원하는 요구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남편은 몰라도 나는 알아차리는, 큰아들의 슬픈 표정. 뭔가가 잘 안 되고 있구나, 속상하구나. 그럼 내 마음도 긴장한다. 심각한 얘길 꺼내려나 걱정스럽고, 뭐라고 얘길 해줘야 하나, 내가 들려주는 얘길 싫어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남편이 출장 중이던 지난 주말 기숙사 데려다주던 차 안에서였다. 슬픈 표정을 발견하고, 나는 나대로 좋은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를 달래면서 가고 있었는데 누구도 핵심적인 대화는 시작하지는 못하는 상황. 아들이 먼저 마음을 털어놓았고, 안 그래도 밤운전은 조심스러운 나는 어떻게 아이를 달랠까 머리를 굴렸다. 주차해 놓고 말하고 싶은데, 그럼 아이 시간을 너무 뺏는 건 아닌가 싶어 망설였다. 길이 한적해지고야 말을 꺼냈다. 둘레둘레 다른 얘기에서 시작해 전하고 싶은 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온통 응원과 격려뿐이어서 보드라웠을 거다. 주차를 하고도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고 말았다. 편안해질 때까지 한참을 차 안에 머물렀다. 눈물 섞인 대화를 나누고 부담은 날아가고 개운함만 남았다.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일종의 환기 같은 게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이러니 아들은 해결할 일이 있을 땐 아빠를 찾고, 마음이 힘들 때 나를 찾는 것이겠지. (지난주에 남편 없을 때 아들이 엑셀 파일을 보내와서 깜짝 놀랐다. 실험을 위한 다양한 물품들을 주문해 달라고 해서 이런 걸 어려워하는 나는 쩔쩔맸다.)
아들들이 커가면서 관계에 대해 새로 배운다. 관계는 일방적이면 안 되는 것이며 쌍방향 소통이 상대가 요구하는 만큼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다시 안다. 컵을 함께 들고 기우뚱하지 않도록. 물만 흐르는 건 괜찮지만, 컵은 깨질 수도 있으니까! 둘째와의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나는 더 조심해야겠다.
오늘 본 전시에서 컵을 소재로 한 사진이 있어 한참을 감상했다. 작품 설명을 들여다보면서 제목을 읽고 놀랐다. <섬>이라니. 나는 컵에서 관계를 떠올렸는데 어쩜 이 작가는 섬이라고 의미를 붙였을까. ‘마음속에 외로움을 품고 살아가는 지금의 사람들 같기도 하다'는 작품설명 끄트머리도 인상적이었다. 누구나 외롭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명제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를 위한 다정을, 상대와 발맞추어가며 표현하자. 섬과 섬 사이 따듯한 감정을 두르고.
@ 드라마 <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나온 시는 김경미 시인의 <다정이 나를>
덧붙임) 컵 카드 중에 또 내가 좋아하는 카드는 3번 카드다. 함께 기뻐하고 축배를 건네는 그림. 이 카드는 좋은 친구들과의 시간을 떠오르게 한다. 아들 고민 그만하고, 친구들 만나 아들들 흉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