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을 읽고
책 제목이 나 같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학생들의 졸업식 날이 그랬다. 2년 간 마음 써온 아이들의 졸업이라 어쩌면 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졸업날이 되니 흥성거리는 기운이 어색했다. 여기가 내 자리다 싶은 안정감이 들지 않아 얼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라는 제목은 그날 내 마음에 박혔다.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다시 본다, 고전’이 엮인 책이다. 생소한 작가와 작품도 많았고 무엇보다 철학을 통과한 문학이어서 쉽지 않았다. 시인이 철학을 공부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 깊이 있고 더 알고 싶어,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늘었다.
서문에서부터 마음이 사로잡혔는데, 책 읽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읽을 때는 너무 좋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읽었는지도 모른 채 내가 밑줄 그을 만한 곳에 있는 밑줄에 놀랐다는 고백이라니. 내 얘긴가 싶었다. 학급문고로 갖다 둔 책을 정리하다가 이 책을 읽었던가 하고 들췄다. 내용이 새로워서 안 읽었구나 했는데, 읽다 보니 접혀 있는 데가 자꾸 나온다. 우리 집에서 이 책을 읽을 사람은 나뿐인데! 이렇게 되면야 읽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이렇게 까맣게 잊었는데! 읽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건 모든 독자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를 변화시키기는커녕 읽었는지도 모르는 나임에 놀란다. 시인은 이렇게 서술한다.
“내가 다 기억할 수 없는, 죽고만 싶었던 숱한 순간에 나를 살린 누군가의 문장들이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순간도 회복의 과정도 전부 잊었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다.” (중략)
“어쩌면 나처럼 평범한 대부분의 독자에게 독서란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서가 나를 살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적독가(책 사서 쌓아두는 사람)이자 독서애호가, 복수의 독서모임 참여자, 글도 쓰고 책도 엮는 내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큰 행위는 독서이므로. 무엇이 자꾸 내게 책을 소비하게 하는가? 책의 한 꼭지,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 편을 읽다가 알았다. 책은 일종의 예술로, 나는 책을 구입함으로써 작가와 편집자, 출판사가 공들여 만든 작품 한 권을 선물 받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선물>이라는 책은 선물의 순환 고리에 대한 개념을 서술한다. 내가 받은 선물을 또 다른 이들에게 선물함으로써 공동체 전체에 생기가 돌고 결속이 단단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예술 자체가 선물의 증여와 같은 속성을 지녔다고 한다. 재능이라는 단어가 GIFT니까, 자신의 재능을 작품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감상하도록 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선물이라는 거다.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책을 살 때마다 귀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므로.
이 기분을 나누고 싶어서 학급에 책들을 한 바구니 넘치도록 꽂아 둔다. 그림책도 있고, 에세이, 소설, 교양 도서도 있다. 그중 어떤 책을 누가 신나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 년에 한 권 이상은 분실되고(좋아서 가져갔으리라 생각한다, 예쁜 그림책과 내가 쓴 책, 소설 등이 사라졌다.) 학년말에 나눔 할 때면 소설 위주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그렇지만, 책을 준다고요? 책을요? 왜요? 하는 표정도 있다.)
좋은 책을 주고받는 기쁨은 서로의 책을 빌려줄 때에도 생긴다. 이 책의 가치를 아는구나 싶어 뿌듯하고, 읽고 얘기 나눌 수 있어서 흐뭇하다. 물론 내 주변의 독서 애호가와 그렇다. 이분들께 책 선물은 감탄을 자아내는 일. 다만 책에 대한 애정이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책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일이 여러 번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 타로카드에 관한 책 등 내게 유용했던 책들을 빌려주었는데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라 슬프다. 그들에게 유용하게 쓰였기를.
자연스럽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곁에 둔다. 독서모임을 꾸리고 참여하는 건 내게 가장 신나는 일. 한 학교에 근무했던 선생님들, 우리 학교에서, 책쓰기연수 후속 독서모임에서, 주수희와, 친구들과 같은 책을 읽고 대화한다. 작년부터는 버찌책방에서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자고 ‘깊이읽기모임’이 생겼다. 평론가의 책은 최근책부터 거슬러 올라가며 읽었는데 예전 책일수록 어렵게 느껴졌다. 같이 읽었기에 겨우 읽어냈고, 모임구성원의 다양하고 깊이 있는 감상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신형철 다음으로 읽기로 한 책이 바로 진은영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다. 우리들의 이름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제목 그대로 ‘느낌의 공동체’로 정했는데 딱 이 책의 <선물> 장에 그 단어가 나왔다.
“선물은 계속 돌아가며 사람들 사이에 결속감을 부여하고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하나의 경험에 대해 공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사회적 재난이 닥칠 때마다 알게 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공감하는 사이가 곧 이해할 수 있는 관계, 연대의 필요조건이 된다. 잘 모르지만 책에 소개된 모리스 블랑쇼가 말한 <문학의 공간>이 하는 일도 이와 닿아있는 것 같다. 문학은 타자를 향하므로, 문학을 읽는 것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고 공감하며 나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 그래서 나는 읽는 일을 사랑하며, 같이 읽는 독서모임을 좋아한다. 모든 독서모임이 문학의 공간이자 느낌의 공동체일 거라는 확신이 있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면 ‘용감한 독자’를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좋은 작가는(중략)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작가들은 진심으로 독자를 믿는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어떤 슬픔 속에서도 삶을 중단하지 않는 화자, 자기와 꼭 들어맞지 않는 세계 속에 자기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주인공을 등장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용감한 독자와 용감한 책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나 또한 세계와 잘 맞지 않는 인물로서 그런 인물들이 있는 문학, 책을 계속 알아보고 싶다. 그럼 끊임없이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겠지.
2026년 새 학교로 이동한다. 여전히 졸업식이나 학교 행사에 쭈뼜거리고 새 공간에서 긴장하는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용감한 독자가 되기로 한다. 이 세계를 좀 더 따뜻하게 가꾸고자 책을 사겠다고, 책을 읽겠다고, 함께 읽자고 손 내밀겠다. 새로운 동료들, 학생들하고도 책을 매개로 느낌의 공동체를 가꾸게 되기를.
진은영 시인님의 글 일부분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재능이 어디에서 흘러나오든 좋은 시와 그림, 음악과 영화가 지나가는 자리에는 늘 느낌이 생겨나고 정서적 유대 속에서 서로 접촉하는 공동체가 마술처럼 생겨난다. 아, 우리는 이 시, 이 소설, 이 음악을 사랑해. 우리는 함께하며 고통을 통과할 수 있어.”
@ “세계는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는 독일 시인 슈나이더의 문장이라고 서문에 쓰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