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물들] 우울해서 빵 샀어? 책은?

기분 전문가, 빵 그리고 책

by 조이아

기온이 급작스럽게 오르면서 오후만 되면, 식곤증이 밀려온다. 중2들과 함께 하는 국어 시간 시를 읽었고, 소설을 읽는다. 준비한 수업을 졸려하는 학생들 앞에서 옅은 우울감을 느끼며, '우울해서 빵 샀어'가 생각났다. 이 테스트에 빵이 쓰인 이유는, 빵이 우리의 기분을 즉시 나아지게 하기 때문일 터. 수업을 하면서도 졸린 이 봄, 중학생들에게 내 수업이, 문학과 책이, 빵과 같은 존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울할 때 사는 게 초콜릿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빵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서.


빵은 즉각적인 포만감을 준다. 초콜릿 한 조각으로는 안 된다. 포만감이란 '넘치도록 가득 차 있는 느낌.' 물리적인 포만감 말고 정신적인 포만감을 우리는 언제 느끼는가? 멋진 자연 앞에서, 감동적인 그림 앞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가. 한 편의 소설 혹은 짧은 시 한 구절 또한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꽉 차오르게 한다.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을 때의 무아감은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느낄 때의 즐거움과 견주어 빠지지 않는다. 정신의 고양감을 문학은 준다.

빵은 먹기에 번거롭지 않다. 밥 차리듯 반찬이며 접시며 커트러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다. 문학 또한 그렇다. 즐기기 위한 필수 장비도 거의 없다. 책만 있으면 끝. 다만 주변에 나를 자극하는 스마트폰은 멀리 두어야 한다. 한 입 먹으면 그다음 한 입을 부르는 빵처럼, 문학 또한 그렇다. 그다음 그다음이 궁금해 계속 읽게 되는 쾌락독서, 당장 하고 싶지 않은가?

빵은 너무 많으면 냉동실에 저장해 두어도 된다. 책도 그렇다. 달리 특별한 저장법도 없다. 꽂아두고 쌓아두고 널어놓고 등등. 그러다가 날이 좋거나, 흐리거나, 기분상 끌리는 대로 집어 들기만 하면 된다. 해동도 필요 없다. 쌓인 책을 보면 뿌듯하다는 점도, 집에 빵이 가득 있을 때의 느낌과 다르지 않다.

빵이 주는 즐거움을 책 또한 갖추었다. 일단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소라 모양, 납작하고 질감이 느껴지는 표면과 다양한 곡선. 책도 그렇다. 표지의 아름다움과 물성이 책마다 다 다르다. 촉감도 좋다. 표지도 내지도, 넘기는 기분도. 빵이 주는 고소하거나 달달한 맛의 향연을 책 또한 선사한다. 단짠단짠을 갖춘 재미와 감동, 정보 무엇이든 골라 읽을 수 있다.


이렇듯 빵이 가진 미덕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빵 좋아하시는 분들께 일단 책을 두 권 권해 본다. 에세이를 좋아하신다면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 작가님의 <빵 고르듯 살고 싶다>를 읽어보시고,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화학공학 연구원이셨던 소설가 곽재식 작가님의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을 읽어보세요. 즉각적인 기분 전환을 보장합니다! 하고 느낌표를 붙여 말하고 싶지만, 그저 우리 집 책장에 여태 꽂혀 있는 아니 우리 반에 갖다 둔 책이라는 것이 반전. 그러니 아직 내겐 기분전환할 책이 남아있다. (사실 엄청 많이 쌓여 있는, 저는 적독가입니다.) 빵이 없으면 못 살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책이 없으면 못 살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를 즐겁게 하는 빵처럼 책과 문학이 우리의 기분을 나아지게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참고로 이 봄, 필자가 우울할 땐 빵과 책을 둘 다 골랐다는 걸 말씀드린다.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한 시간, 아담하고 편안한 카페에 들러 파운드케이크를 먹으며 독서하는 시간을 내게 선물했다. 장편 소설을 읽고, 책벗들이 쓴 단편 소설을 읽는 시간. 골치 아프던 업무라든가 집에 가서 곧 만날 중3 아들의 땀냄새 같은 것과 멀어진 채 다른 세계에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빵이 주는 위안도 컸다. 우울해서 빵 샀어, 라는 말과 함께 ‘우울해서 책 샀어, 힘들어서 책 읽었어‘ 이런 말도 유행하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