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안 좋아하는 사람의 빵 운명기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암요.

by 주연

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항상 빵이 있었다. 동네 빵집에서 파는 먹다 남은 맘모스 빵이나 땅콩 크림빵. 슈퍼에서 파는 보름달 같은 빵들이 말이다. 그러나 그 빵들은 날마다 빵을 먹는 가족 구성원들 때문에 늘 소진되었고 다른 빵들로 교체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동네에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지도 않았고 빵이 대중적이지 않을 때였는데도 그랬다. 그렇게 늘 빵이 있는 집. 그게 우리 집이었다. 문제는 내가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출출해져 간식을 찾다가도 바구니 가득 들어 있는 빵들을 이리저리 들춰보다 결국 말아버리는 사람이 나였다. 하지만 학교가 끝나는 순간부터 집에 가서 빵 먹을 생각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으니 동생이었다. 엄마는 평소 간식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 편이고, 아빠는 끊임없이 간식을 드시던 분인데 그런 아빠는 빵을 너무나 좋아하셨다. 동생에게 빵 유전자를 물려준 아빠는 동네 빵집에서 자주 빵을 사 오셨고 빵집에 들르지 못하는 날에는 슈퍼에서 빵을 그야말로 쟁여오셨다.


어렸을 때 아빠가 가끔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늦게 귀가하는 밤에는 우리를 위한 간식거리를 사 오셨다. 그런데 그 간식류들도 대체로는 빵이었다. 동네 빵집의 맘모스나 소보루빵, 각종 크림빵들, 겨울이면 동네 어귀에 있는 붕어빵이나 호두과자들. 다 내가 안 좋아하는 그러나 동생과 아빠에게는 필수간식이었던 빵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이바돔'이라는 이름의 동네 빵집이 있었는데 늦은 저녁 팔리지 않은 빵들을 술에 취한 아빠가 싹 쓸어오신 날도 있었으니 아빠의 빵사랑은 지극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 온 빵들은 물론 하나도 남김없이 두 명의 빵러버가 다 먹어냈다. 나는 서로가 서로의 빵을 먹을까 걱정하며 빵을 숨기는 그네들을 보며 빵이 저렇게 맛있나 싶었다.


사실, 그렇게 빵을 좋아하는 아빠와 동생은 늘 약간의 위장 장애를 달고 살았다. 엄마와 나는 빵보다는 매운 음식이나, 면류를 좋아했는데 위장에는 빵이 더 안 좋은 것일까? 나와 엄마보다 빵을 좋아하는 아빠와 동생이 더 자주 체하고 자주 소화 불량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빵을 줄이지 못했다. 배가 아파 소화제를 먹고 돌아서서 빵을 먹고 있는 동생이나 아빠를 보노라면, 빵이 왜 저렇게 좋은 것인지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는 매일 아침 빵식을 한다. 기껏 끓인 국과 약간의 반찬으로 아침을 차려도 밥보다 잠이 더 좋은 아이들은 먹는 둥 마는 둥인데 그나마 잼 바른 빵은 한 두쪽은 먹고 일어서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한 입이라도 더 먹여 보내기 위해 자꾸 아침을 빵으로 준비하게 된다. 또 빵을 준비하는 시간이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조리하는 시간보다 시간보다 훨씬 덜 들어 바쁜 아침 준비의 노고도 덜어주니 지금은 빵의 편리함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식사 빵을 자주 사다 보니 빵을 별로 안 좋아하던 나도 좋아하는 빵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혼할 무렵부터 우리 동네에 있던 쿠키나 구움 과자류가 유명했던 빵집은 사실 식빵 맛집이었음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다른 식빵과 달리 부드럽고 풍미가 좋아 식빵을 딱 한쪽만 먹던 우리 큰애도 이 빵집의 식빵은 와구 와구 먹는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차로 이동해야 하는 거리이지만 꼭 들러 식빵을 사 온다. 근 이십 년째 같은 자리에서 계속 쿠키와 빵을 굽는 빵집은 세련된 인테리어도 화려한 포장도 없지만 뚝심 있는 한우물 같은 느낌이라 존경의 마음이 인다. 또 집 앞에 제철 재료를 이용해 천연 발효종인 르방을 키워 저온 발효한 식사빵을 구워주는 빵집도 있다. 이 빵집의 치아바타와 시골빵은 우리 집의 인기 빵이다. 그러나 이 빵집은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만 영업하고 영업시간도 길지 않아 잘 맞춰 빵쇼핑을 가야 한다. 빵을 사러 가서 늘 식사빵을 골고루 집어가는 나에게 사장님은 이번 빵의 재료를 웃으며 설명해 준다. 내가 고른 빵에 대해 설명을 하며 한가득 웃는 그 사장님의 모습은 진짜 빵을 좋아해야만 나오는 미소다. 빵을 좋아해서 빵을 굽는 사장님이 만든 빵은 당연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싶다. 그런데 사실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빵집들도 빵맛이 아니라 빵집 사장님들과 빵집의 고유함을 좋아하다 보니 좋아진 것이었다. 사실 나는 빵 맛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빵맹이라고나 할까.

여행에서의 아침은 늘 빵식이었는데 이제는 일상에서의 아침도 늘 빵식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간식 상자에 가득한 빵을 보고, 현재는 맛있는 빵집에 둘러싸여, 매일 아침 빵을 차리는 나지만, 사실 여전히도 나는 빵이 아주 좋지는 않다. 물론 나 역시 아침에는 따뜻한 커피에 빵 한쪽을 먹는 날이 많지만, 빵을 보면 설레거나, 부러 빵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다. 이렇게도 빵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는 내 주위에 빵이 계속 있는 걸 보니 어쩌면 나는 빵순이는 아니지만 빵의 운명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그 운명에 순응하며 나도 빵의 세계를 좀 더 모험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월요일이라 집 앞의 작은 빵집이 열지 않는 날이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식빵 맛집에서 내일의 식빵을 쇼핑해 가야겠다. 오랜 시간 내 주변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빵들을 먹으며 빵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이제 조금씩 누려봐야지.

추러스도 빵으로 쳐주나요? 빵맹도 추러스+초코의 최강 조합은 압니다아


(@표지 사진은 지난 마드리드 여행에서 아침 조깅 후 먹을 식사 빵을 포장했는데 저렇게 예쁘게 싸주었다. 선물 같은 아침 식사를 했던 어느 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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