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여자>를 읽고
레바논 베이루트를 배경으로 하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느낌의 공동체‘에서 함께 읽은 중동 소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불러왔다. 지적 호기심과 탐구에 적극적인 궁리 님은 중동의 역사에 대해 참고서적을 가져와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들의 공동을 채웠다. 덕분에 베이루트라는 도시가 중동의 파리라 불렸다든지, 레바논이 왜 전쟁터가 되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서점지기 버찌 님은 <빌러비드>, <자기만의 방>, <외로운 도시>를 소환해 고독과 예술의 힘을 역설했다. 주인공 알리야는 72세 혼자 사는 여성으로, 새해가 되면 새로운 책을 번역하는 게 일이다. 일 년을 꼬박 작업해 완성하고 나면, 상자에 담아 가정부용 화장실에 가둬 둔다. 남들은 쓸데없다고 여길 만한, 지극히 자기 혼자만의 충족을 위한 작업이다. 제목이 ‘불필요한‘ 여자인 건 그래서일까. <불안의 서>에서 페소아는 이렇게 말한다.
”탁월한 인간에게 어울리는 태도는 오로지 이것, 스스로 쓸모없다고 여기는 활동을 지속하는 것, 무익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 지극히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특정한 철학적 형이상학적 사유의 규범을 적용하는 것.“
이런 점에서 알리야가 수행하는 고독의 시간은 삶의 허무와 싸우고 내면의 풍요를 일구는 즐거운 시간이다.
섬세한 결을 지닌 소화 님은 이다희 번역가님의 단어 선정, 문장들에 감탄해 그 부분을 짚어주었다. 모임장인 애리님은 주인공이 하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곧 생명이 없던 작품을 살리는 일이라는 이야길 들려줬다. 자신만의 번역 결과물을 상자에 담아, 화장실에 두며 '관'처럼 느껴졌다는 표현이 소설 후반에 나온다. 이런 얘길 들으며 타로카드 20번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관에 있던 푸른 몸의 인물들이 천사의 부름에 만세를 부르며 일어서는 그림이다. 부름 혹은 구원.
내가 주목한 건 관계였다. 관계, 사람과의 연결감이 어떻게 구원으로서 작용하는지. 한나와 알리야, 엄마와 고양이, 알리야와 세 마녀의 관계. 인물들은 저마다 고립되어 있다. 한나의 죽음 이후, 알리야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며 산다. 하지만 과거 한나와 알리야의 관계는 어떠했던가. 한나와의 시간은, 이렇게 서술된다. 알리야가 일하는 서점에서의 일이다.
”한나는 구석에 있는 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소리 없이 뜨개질을 했다. 대바늘이 탁탁거리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일기를 쓸 때도 있었다. 조용한 가게 안에서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동안 나는 내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이것이 내 일의 본질이라고 한나는 생각했다. 배려심 많은 사람답게 내 곁을 지키되 방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 안에서 끊임없이 소생하는 은혜를 누리는 두 개의 고독이었다. 서로를 살찌우는 두 개의 고독이었다.“
알리야는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을 아는 이였다. 한나가 죽고 더욱 자신의 세계로 파고들었던 알리야의 서술은 400쪽이 넘는 내내 계속된다. 내면의 풍요는 알리야를 외로움 속에 두지 않고 고독의 즐거움을 안고 살게 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식구들, 특히 엄마가 자신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든가 연신 내리는 비 때문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생기면서 알리야의 고독은 흔들린다. 위태로운 서사를 따라가며 안타깝기만 했는데, 결말을 마주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관계에서 오는 연결과 돌봄, 연대는 좋은 문학 작품에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알리야와 이웃들을 잇는 데에도 문학은 유용했다는 것 또한 말하고 싶다.
죽은 것처럼 살고 있던 알리야를 살리는 두 맥락을 더듬어보자면, 하나는 문학과 예술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연결에서 오는 연대였다. 세상 쓸모없어 보이는 문학이, 이웃이 나를 살리는 아름다운 이야기. <불필요한 여자>는 예술과 연대가 더 이상 불필요한 게 아니며 것을 둘 다 사람을 살리는 일임을 역설하는 소설이다. 느낌의 공동체 안에서 우리 각자의 해석이 소설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파란빛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의 표지는, 내 안에서 관에 누워있던 파란 몸을 한 인물들을 연상시켰다. 그들이 벌떡 일어나듯이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여정을 거닐었다. 덕분에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줌으로 당겨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부디 그곳에 또 우리에게 이런 마음들이 가닿았으면 한다. 번역가님 글 속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과연 타인의 세상과 연결되려는 노력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유용한 노력, 쓸모가 있는 노력일까? 다시 말해 문학은, 예술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라비 알라메딘 지음, 이다희 옮김, <불필요한 여자>, 뮤진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