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뭐라도 쓰자!

by 조이아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다 왔다. 어떻게 하면 함께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작은 아씨들'을 봤다. 마주한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내가 선물했던 수첩은 아이의 예쁜 글씨가 적혀 내 손으로 돌아왔다. 예비 고3이 틈틈이 내게 편지를 썼는데, 내가 이렇게 안 쓰고 있음 안 되겠다.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늘 글을 생각하고 무슨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고,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거르면서 글을 써보고 싶다. 내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농인 부모와의 경험으로 영화를 만들고 책으로 써낸,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는데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거였다.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이야기,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목구멍까지 꾸욱 꾹 눌러놨다가 한꺼번에 팡 터뜨리는 기분으로 써 내려간 것 같다는 것! 내게는 그런 이야기가 무엇일까.



조는 팔릴 것 같은 이야기를 쓴다. 동생 베스에게만 들려준 유년시절 자매들의 이야기에 대해, 누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겠냐고 생각했다. 몸이 약한 베스는 자기를 위해 그 이야기를 써달라 하고, 조는 동생의 부탁을 마음에 담아둔다. 베스가 죽고 난 후, 메그와 에이미는 그간 조의 글을 궁금해한다. 별 거 아니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썼다고 말하는 조에게 에이미는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자꾸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가 중요해지는 거라고. 창작자에게 힘을 주는 말이었다.


내가 겪은 일들, 내 생각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내 생활이 글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가치 있는 글일 것이다.



지난번 썼던 글은, 문자메시지로 시작해서 카톡 메시지로 끝난 일화가 시작이었다. 몇 해 전 우리반이었던 아이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놀랐고, 코로나 여파로 장례식장에 가기는 망설였다. 그 아이를 알고 있는 동료선생님들은 모두 학교를 옮겼고, 난 고민하다가 문명의 이기인 카톡으로 전송하기를 이용했다. 결례가 될까, 고민하다가 보낸 것이었는데 퇴근길에 그 아이에게 온 카톡 메시지를 받고는 그저 반갑고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마침 듣고 있던 팟캐스트에 소설가가 나왔다. '김하나의 측면돌파', 박민정 작가 편. 소설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생처음으로 내 머릿속에 소설이 떠오른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수업 때문에 소설을 써보자며 이런저런 예시를 끄적거리기는 했지만, 그것은 당위에서 시작했던 것이고 이번에는 말 그대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렇게 써보면 재밌겠다!'


그날 밤,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안 되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술술 써 내려갔다. 어떻게 끝낼까 고민하는 게 즐거웠다. 이런 게 창작의 즐거움일까 혼자 갸웃거리면서 신나게 글을 써서 발행을 눌렀다. 평소에는 '작가의 서랍'에 저장을 해두고 몇 번 읽어보고 발행했는데 그날은 그냥 발행하고 싶었다.


간간이 라이킷 알림을 보면서 기쁨에 겨웠다. 내 글을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여기를 고칠 걸 후회도 하고. 밀려오는 기쁨과는 반대로 그다음에는 무엇을 써야 하나 부담도 되었다. 그래서 이전에 쓰던 글에 이어 써본다. 뭐라도 써야겠다고. 그리고 내가 쓸 수 있는 '뭐라도'는 내가 겪은 일이 될 것이다. 지금은 휴업 중인 학교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나와 함께 커가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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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작은 아씨들'이었다. 너무 아름다운 영화여서, 뭐라도 써보자고 끄적대다가 그것보다 먼저, 새로운 글에 소설 하나를 써보았고, 이제 다시 또 무어라도 쓰겠다고 써본다. 영화를 본 날 나는 조의 꿈까지 꾸었다. 남색 스커트에 노란색 바탕에 갈색으로 자잘한 꽃이 그러져 있는 블레이저에 가는 벨트를 한 모습의 조가 신나게 달린다. 그 이미지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편안하고 환한 기운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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