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오만 원으로 내 인생에 들어오려고?

by 조이아

고작 오만 원으로 충고까지 하려 그래?


카톡으로 '봉투가 도착했어요'에 엊그제부터 자꾸 보게 된 한자와 함께 오만 원이 왔다. 기꺼이 받기를 눌렀더니 이어지는 카톡, '현아, 중학교 때 선생님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아버님 소식은 정말 마음 아프다. 현이가 벌써 스무 살이구나.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고 걱정되기도 하네. 건강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은희.' 중학교 때 선생님이라니, 이 사람이 누군가 조금 생각해야 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이은희. 중1 때 담임.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그 쌤이 지나갈 때마다 코가 간지러웠다. 국어였고, 수업시간마다 뭔가를 쓰라고 귀찮게 했던 기억이 난다.

입학했던 처음에는 나도 조금 떨렸다. 종이 칠 때마다 다른 얼굴과 다른 목소리, 다른 글씨체에 정신이 없고 기운이 빠졌다. 3월의 하루가 다 차기도 전에 나는 중학교 시스템에 질려버렸다. 과목마다 준비하라는 것도 많고, 어느 시간에는 다른 건물로 가 있어야 했으며, 내 옆의 새끼들은 틈만 나면 나를 건드렸다. 지 아빠가 어디 교수라는 재우는 내 뒷자리다. 수업 시간에는 걔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지만, 쉬는 시간마다 걔 주변에는 따까리들이 붙어 시끄러웠다. 그날은 배도 고프고 전 시간이 수학 시간이라서 나만 안 걸렸으면 하고 있었더니 더 기운이 없었다. 3월, 홑바지에 교복 재킷은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엎드렸더니 책상 위 유리의 선득한 기운에 더 기분이 나쁘다. 등 뒤에서 다음 달에 체험학습을 간다나 여행을 간다나 하는 얘기가 들렸다. 내가 어떤 대목에서 빡이 돌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부모 관련 얘기가 들렸고, 난데없이 내 이름이 나와서 그냥 책상을 밀치고 걔한테 달려들었던 기억만 있다. 교무실로 불려 온 넷은 각기 다른 책상에 앉아서 있었던 일을 썼다. 나는 내 이름만 썼다. 다른 애들이 쓰고 말한 것을 종합해보자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갑자기 뒤돌아서 재우를 팼단다. 옆에 있던 둘이 양쪽에서 내 팔을, 몸을 잡아 뜯어말렸다고 한다. 그때부터였다. 담임쌤이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쉰 것은. 아니 어쩌면 그다음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학부모에게 통보를 하겠다며 우리를 교실로 보내고, 집에 전화를 걸고 나서부터. 아빠랑 통화가 쉽게 됐을 리가 없다. 받지를 않았을 테니까.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우시니?"

"밤늦게 오실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럼 밥은 할머니가 해주시고?"

"네."

이런 대화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부터 담임은 나와 대화가 끝날 때마다 혹은, 내가 교무실 문을 향해 돌아설 때마다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내 귀에는 그 작은 한숨이 그렇게 크게 들렸고, 그게 그렇게 싫었다.


자주 배알이 뒤틀렸다. 진짜로 아플 때도 있었고, 그냥 다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나는 교무실을 찾아가 조퇴를 시켜 달라 했다. 처음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다가 점점 쌤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쌤은 화장으로 자주 눈밑이 검었고, 나를 걱정하는 듯이 말했다. 쳇, 그 얼굴 뭐야. 웬 걱정이야. 아빠는 한 번에 전화를 받는 법이 없다. 집에 전화를 걸고

"할머니, 나."

하고 쌤한테 전화기를 주면, 쌤은 할머니한테 같은 말을 두세 번씩 해야 했다. 늘 애들한테 명령만 하는 쌤이 전화기를 들고 쩔쩔매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이 쌤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게 나 같아 우쭐했다.

"집으로 바로 가서 푹 쉬어."

그러면 나는 정처 없이 걷거나 진짜 아플 때면 집으로 가서 방바닥에 누웠다.


어느 날은 가족에 대해 이리저리 묻는 쌤을 빤히 들여다보며 짧게만 대답했다. 뭘 궁금해하는 거야. 엄마가 언제부터 없었는지? 아빠랑 나이차가 50년이라? 어떤 질문에도 속 시원한 대답을 안 하자, 이번에는 대놓고 한숨이다. 그래, 내가 속 얘기를 하나 봐라. 됐거든? 관심 끄세요.

한 번씩은 율무차 같은 끈적하고 따뜻한 차를 먹기도 했다. 그러면 그 몇 모금에 나도 말랑해져서
"쌤, 몇 살이에요?"

같은 질문도 했다. 이 이상한 쌤은

"백 살"

이란다. 뭐야. 애가 어린이집 다니고 그러면 30대겠지. 100살이 재미있나.


언젠가 6교신가에 배가 아파서 약을 받으려고 교무실에 갔다가, 재우 엄마가 온 걸 봤다. 담임 쌤이랑 창가 앞 테이블에서 얘기하는 중이었는데, 등을 지고 있어서 내가 온 걸 몰랐나 보다.

"현이 걔가 초등학교 때도 사고를 좀 쳤어요. 집에서 관리가 안 되니까."

"그랬어요? 학기 초에는 좀 폭력적인가 걱정스럽더니, 요새는 맨날 아프다고 와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날 때도 있고."

단내가 나? 그게 뭔데? 뭐? 나한테 냄새가 난다고? 그대로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쌤! 배 아파요. 약 주세요."

"어? 현이 왔구나. 뭐? 소화제 줄까?"

"현아, 안녕? 키 많이 컸네."

허둥대는 어른들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그런 어설픈 사람이 내 인생에 잠깐 있었다. 다 숨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 묻지도 못하면서 내 인생에 관여하고 싶어한 쌤.


2학년 때엔 휴직했댔나, 안 보이더니 그다음 해에는 왔다고 하더만 나는 다른 학교로 강전을 왔으니까 그 후로는 그 쌤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5년 만에 카톡을 보낸 거다.

엊그제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일하던 데서 왔다는 사람이 내 전화, 아빠 전화에 저장된 모든 번호에 그 소식을 알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며칠을 지냈다. 졸업하고 뭘 하고 지내나 고민하던 중이었고, 아빠는 갑작스럽게 갔다. 사고였다. 공사판에서 하는 일이 위험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못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손님은 드문드문 왔고, 아빠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내 손님은 거의 없었다. 졸업식도 한 마당에 담임이 올 리도, 슬슬 내 눈치를 보던 학교 애들이 올 리도 없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다른 애들은 취업을 하고, 공부를 한다는데 우리 집은 내 출발을 밀어주지도 않고 시작부터가 초상이냐 화도 났다. 그리고 이제 '우리 집'이라고 부를 게 없어졌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답장을 썼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세요?' 썼다가 다 지웠다. '누구세요?'도 썼다가 지웠다. 이렇게 아무한테라도, 그래도 내 걱정을 해준다는 사람한테 뭐라도 쓰고 싶었다. 이게 뭐예요? 왜 줘요? 묻고 싶었다. 그렇게 걱정이 되었다면 왜 이제야 연락을 주나 원망도 밀려왔다. 뭐야, 고작 오만 원에 나는 왜 이러나. 거지 같다. 이만큼의 호의에 내 불안과 두려움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겨우 오만 원으로 내 생활에 끼어들 수는 없다.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써야 되나. 오랜만에 듣는 다정한 말에 코끝이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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